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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손홍규의 로그인]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이름 관리자



중학생 시절 새로 부임한 국사 선생님은 고향이 광주였다. 선생님의 말투에는 남도 억양이 두드러져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밥은 묵었냐? 너 으디 가냐? 이렇게 서로에게 흉내 내며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여자선생님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광주가 그리 먼 지역도 아니건만 타관 출신을 만날 일이 드물었던 그 시절 국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경계 바깥을 상기시키는 존재였으며 언젠가 방문해야 할 미지의 도시를 우리 내부로 옮겨놓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 즈음은 바로 5공청문회가 열리던 때였다. 그때 중학교에 다니던 사람들 모두 똑같이 경험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교실마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으로 청문회를 시청하게 해주었다. 그 텔레비전이 모형이 아니라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청문회는 아직 어린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요령부득이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나직한 수군거림과 상기된 얼굴에서 이른바 역사를, 구체적인 역사를 목격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알았다.

국사 선생님이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는 걸. 그게 눈물 흘린 자국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걸. 다시 화장을 해도 금세 번져버릴 게 뻔해 맨얼굴로 퇴근하며 운동장을 터벅터벅 가로질러 걷던 그 젊은 국사 선생님의 야윈 어깨가 얼마나 고아해 보였던지. 우리는 국사 선생님의 말투가 순식간에 정겨워졌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국사를 공부한 그이에게는 청문회가 어떤 의미였을까.

청문회는 끝났지만 오월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학살자들은 일가를 이루어 살고 진실은 여전히 묘연하다. 어딘가에 쓸쓸히 암매장된 시민을 언제쯤 찾아낼 수 있을까. 오월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20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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