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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염무웅-하나의 문학사를 향하여
이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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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학사를 향하여


염무웅 | 문학평론가, 영남대 독문과 교수



며칠전 대산문화재단에 들렀다가 갓 출간된 책 한권을 받아들고 돌아와,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대강 훑어보았다. '강경애 탄생 100주년 기념 남북 공동논문집'이라는 표제가 붙은 《강경애, 시대와 문학》(랜덤하우스 2006)은 여러가지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사 연구의 역사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만한 업적이다.

나 개인에게 강경애는 문학소년 시절이었던 1950년대 말경 백수사(白水社)판 《한국단편문학전집》에서 백신애의 <적빈(赤貧)>과 나란히 수록된 그의 <지하촌>을 읽고, 거기 묘사된 너무도 처절한 궁핍의 기억으로 아련하게 남아 있다. (1958년 염상섭의 서문을 머리에 얹고 세권으로 출간된 이 선집은 아마 해방후 이 방면 최초의 기획출판일 것이다. 대상작가의 선정에서뿐 아니라 활자체와 지질, 장정 등 체재 면에서도 아주 공들인 책이었다. 곧이어 나온 민중서관의 《한국문학전집》과 신구문화사의 《전후세계문학전집》에 대응하여 전후세대 작가들을 추가한 다섯권짜리 증보판이 1965년에 간행되었는데, 오늘날 대학도서관 같은 데 소장된 것은 모두 이 증보판이다.) 그러니까 이상경 교수의 수고로 장편 《인간문제》(창작과비평사 1992)가 손에 들어오기까지 강경애는 나에게 거의 잊혀진 작가였고, 그후에도 그의 문학사적 중요성에 각별한 주목을 돌리지 못하였다.

남북한 공동 문학연구의 결실

이번에 출간된 논문집 《강경애, 시대와 문학》은 무엇보다도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의 연구자들이 함께 평론을 집필했다는 사실, 즉 남과 북의 문학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단일한 연구공간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실증했다는 데에 획기적인 의의가 있다.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해외의 다수 문인들이 평양과 백두산 등지에서 민족작가대회를 개최하고(2005.7.20~25) 이어서 그 작가대회의 결의에 따라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음(2006.10.29~30)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런 공개적인 행사와 별도로 남측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소장 김재용)와 북측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소장 고철훈)가 2004년부터 합동으로 중국 뻬이징에서 비공개 학술쎄미나를 진행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첫해에는 김소월, 다음해에는 현진건, 이렇게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문인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있었고, 2006년에는 강경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처럼 공동논문집을 발간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쉽기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고 초장부터 순풍에 돛단 듯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당연히 각오해야 한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것 아닌가. 이 작은 출발점에 오는 데만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이 지불되었던가, 그리고 그동안의 여정이 얼마나 지난했던가를 떠올리면 우선 축하부터 하고 볼 일이다.

돌이켜보면 해방과 더불어 강제된 미·소의 남북 분할점령은 그대로 남북의 정치적 분단으로 귀결되었고, 이 과정에서 문단 또한 분열의 길을 밟았다. 문단의 분열이 곧 문학 자체의 분단으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에 걸친 냉전기간 동안 남북의 문학은 분단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각각 반쪽짜리 문학사의 틀 안에 유폐되어왔다. 그 결과 남북의 문학은 민족의 전통을 창의적으로 계승하는 데서나 세계문학과 활달하게 소통하는 데서나 각각 그 나름의 제한과 왜곡을 겪고 상처를 입었으며, 그리하여 국민문학으로서의 온전함과는 거리가 있는 내재적 불구성을 지니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사실주의, 남한의 리얼리즘론의 명암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남북한 문단에서의 리얼리즘(사실주의)론의 운명과 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제대로 된 북한의 문학이론서를 처음 접한 것은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실 편 《우리나라 문학에서 사실주의의 발생, 발전논쟁》(사계절 1989)인데, 김시업 교수의 해제에 따르면 북한 문단에서는 1957년부터 이 문제에 대한 학술토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어《사실주의에 관한 논문집》(과학원출판사 1959)으로 묶여졌고, 1960년부터 63년 초까지는 토론이 더욱 활기를 띠어 많은 이론가와 연구자 들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문학에서 사실주의의 발생, 발전논쟁》은 이러한 성과들을 총괄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조직된 토론회(1963.3.27~30)에서 발표된 논문들 및 토론 참가자 몇사람의 글을 추가하여 엮은 것이라 한다.

오래전에 읽은 기억을 가지고 말한다면, 당시 북한 문단과 학계에서의 사실주의 논의는 일제시대 우리 비평계의 핵심적 문제의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일뿐더러 그것을 유구한 민족문학의 전통에 이론적으로 접맥시키려 노력한 시도로서, 같은 시기 남한 문단의 부박한 실존주의 유행이나 비현실적 전통논의와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60년대 후반부터 북한 문단에서는 이런 토론의 활기가 급격히 쇠퇴하는 반면, 마치 그 쟁점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70년대 이후 남한 평단에서는 리얼리즘론이 문학적 논의의 중심으로 진입한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20년 동안 민족문학론과 결부되어 전개된 한국문단의 리얼리즘론은 같은 기간의 한국 민주화운동이 그러하듯 국제적 명성을 얻기에 충분한 폭과 깊이를 획득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라,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오늘 이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도 리얼리즘도 생기와 실체를 상실하고 환멸의 감정만이 온 천지에 자욱하지 않은가.

북측의 문학연구에 대한 새로운 기대

다시 책으로 돌아와 보면, 한겨울 덮인 눈 아래 새움이 돋듯 미미하게나마 희망의 조짐이 자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남북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같은 주제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고, 그들이 남북한 전체 동포를 잠재적 독자로 상정하여 한권의 책에 실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온전한 문학공동체의 복원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된다.

한편, 북측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전반적으로 공허한 정치구호와 상투적인 수사가 많이 사라지고 작품의 구체적 실상에 입각하여 이론을 끌고나가려는 자세가 보이는 것도 반가운 변화이다. 가령 <해방전 프로레타리아 문학과 강경애의 소설>이라는 글에서 한중모 연구원은 강경애 초기소설의 부족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상 창조에서 성격과 생활의 논리가 잘 관철되지 못하여 사건 진전이 이치에 닿지 않고 이야기를 억지로 꾸민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이로부터 사상이 형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러나오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153면)

어쩌면 이런 부분은 굳이 리얼리즘론까지 끌어댈 필요도 없는 문학적 상식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의 통용이야말로 건강의 증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대단히 흥미있게 읽은 것은 일제시 검열로 '붓질 복자'된 작품을 복원한 판본과 북한의 복원본을 비교한 한만수의 논문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남북의 문학이 더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종류의 걸림돌을 넘어야 할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이 논문이 제기한 문제에 남북이 합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강경애 소설의 원본확정에 그치지 않고 통일문학사 구성의 기본원칙을 정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확인이 될 것이다.



[창비주간논평 2007년 1월 16일]


염무웅문학평론가, 영남대 독문과 교수. 6·15민족문학인협회 공동대표. 저서로 《모래 위의 시간》《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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