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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황석영-남북민중, 더이상 강대국 인질 될 수 없다
이름 관리자
첨부 200604180025.jpg (82.2K)



남북민중, 더이상 강대국 인질 될 수 없다
북은 자제하고 미국은 대화에 나서라



황석영


지난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은 동북아에 또 하나의 세계적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조지 부시로 상징되는 미국의 보수적 패권주의자들의 일방적인 오만과 극단주의가 얼마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야말로 미국의 이익에 서서 생각해 보더라도 중동을 비롯한 요즈음의 세계를 돌아보면 미국의 정책이 온건주의와 협상과 타협에 의하여 평화롭게 세상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국가와 개인들을 얼마나 곤경에 몰아넣었으며, 그 대신에 대립과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경론자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고 결집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북한과 미국의 기나긴 협상과 불신의 과정은 길게는 한국전쟁 시기부터 그리고 짧게는 쏘련과 동구권이 붕괴된 90년대부터 돌이켜보아야 한다. 내가 89년에 첫 방북한 뒤, 91년에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김일성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이제 세상은 변했습니다. 우리가 구름 위에 살지 않고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있는 한 우리도 변화를 해야겠지요. 이제 통일을 앞세우기 보다는 민족적 이익을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정당으로서 연방제(1국가 2체제) 안에서 정치적 세력으로 남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지요."

이런 말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전략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사회적 '변화'와 이념의 '이행'에 대한 북한의 생각이 나름대로 진심이었다는 것을 최근까지의 북한의 행적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큰 사건만 짚어 보더라도 90년대 이후 북한은 개방과 변화를 위한 안전보장으로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끈질기게 요구해 왔으며 미국은 처음에는 협상에 임하지 않다가 94년 1차 핵 위기를 겪게 된다.

이때 미국은 한국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쟁 시나리오를 확정하고 개전 직전까지 갔다가 취소한다. 그리고는 협상에 임하여 제네바 합의를 이루게 되는데 그 내용은 북은 플루토늄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는 원자로를 동결하고, 미국과 한국 일본은 협력하여 플루토늄 생산 가능성이 없는 경수로 2기를 건립해주며, 그 기간 동안 에너지 보상으로 50만톤의 중유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94년 남북 정상회담 시도에 뒤이어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과 획기적인 6·15 선언은 남한의 '햇볕정책'이라는 평화공존 정책의 한 결실이었다. 이는 남한만의 노력이 아니라 당시의 미국 클린턴 정부의 전향적인 대북 정책도 큰 뒷받침이 되었으며 스스로 변화 생존해 보려는 북한의 정책 변화도 한몫을 했다.

6·15 선언에서 획기적인 부분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하나는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완전한 통일이 되기 전에 남의 국가연합과 북의 연방제라는 1국가 2체제로 나아가자는데 합의한다는 것이었다.

그 표현은 이른바 '느슨한 연방제'라고 표현되었다. 이후에 서로간에 생긴 믿음으로 무엇보다도 북한은 비무장지대 경계선 너머에 있는 금강산 관광을 개방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최전선의 등 뒤 배후를 내놓은 것으로써 '평화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휴전선 이북의 전방도시인 개성과 해주를 남한의 기업과 북한 노동력이 협력하는 '공업단지'로 조성했으며 남북의 철도를 잇고 유라시아 철도를 이어서 분단된 한반도의 매듭을 풀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약속과 계획들이 진행될 때마다 가장 큰 장애 요소는 이른바 '국제적 요인'이라고 애매하게 표현되는 미국의 방해와 간섭이었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가야만 6·15 공동선언에서 천명된 평화통일을 향한 이행기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전회담의 당사국이었던 북한과 미국의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을 진심으로 원했다. 국제사회는 햇볕정책의 입안자이며 이러한 변화를 끌어냈던 한국 대통령 김대중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으로 지지를 표명했던 셈이다.

2001년 미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조지 부시가 새 대통령으로 등장하면서 이 모든 노력들은 냉전시대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는 대 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선언하고 북한과 이란 이라크 등의 나라들을 '악의 축'으로 선언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연이어 이라크를 침공한다.

이라크가 알카에다의 배후이며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침공의 이유였지만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에 대하여는 '악의 축'에 속한 나라들은 언제라도 선제공격을 할 수가 있으며 그 공격에는 물론 핵 공격도 포함된다고 여러 차례 공표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욱 엄중하게 북한을 압박 봉쇄해 나갔다. 여기서 평화체제로 이행하려는 한국 정부의 여러 가지 노력들은 난관에 부딪쳤다.

한국은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을 완화하기 위하여 괴로운 가운데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요구에 순응해왔으며,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입장을 대북정책의 강온으로 조정하는 한편 북한의 관계정상화와 변화에 대한 간절한 요구들을 무시하고 방임했다.

내가 작년에 '남북작가회담'을 위하여 오랜만에 방북했을 때 나는 북한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을 비교적 광범위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일일이 밝힐 수는 없으나 90년대부터 15년이 넘도록 진행된 북한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가 있었고, 유엔에서 지적했듯이 북한 주민 300만 정도가 영양실조와 치료 가능한 가벼운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었다.

한편 남한의 년간 음식 쓰레기는 현재 15조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남북 동족끼리 지척에서 겪는 이러한 끔찍한 불균형을 두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서방식 휴머니티'를 논하고 있는게 아닌가. 올 여름에도 나는 이번에는 북한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만주 국경 지대를 한 달 동안 취재하면서 여러 가지 참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지경이 되도록 버티고 있는 북의 지도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너져버리고 해체되어 버린 수많은 변방 마을의 선량한 가족들에 대해서 분노와 안타까움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북한의 어느 지식인이 나에게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어느 민족에게나 여러 가지 면모가 있을 수 있지요. 성난 얼굴, 싸우는 얼굴, 즐거운 얼굴, 다정한 얼굴. 그중에서 분단된 조국의 이북은 성나서 싸우고 자존심 지키는 악역만 감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남도 그 덕을 본 게 있을 거요."

다시 생각해보면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간 많은 책임은 압박과 강경 봉쇄로 일관한 미국의 현정권에게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무서운 반인권적 범죄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봉쇄와 압력의 또 다른 수단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05년 정체되어 오던 북핵 문제에 조그만 변화의 돌파구가 열렸던 것은 베이징 6자회담에서 합의의 방안이 나왔을 때였다. 표면상으로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관계국은 경수로 제공 문제를 토의한다는 것이었고 북한과 미국은 상호 주권존중과 평화공존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었다.

내막으로 북한의 요구는 '행동 대 행동'으로서 단계적 조치를 서로 취하자는 것이었으나, 미국은 향후 3개월 동안 핵폐기를 실행하고 국제사찰단의 검사를 받은 뒤에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것이 종래의 '선 핵포기'와 다름이 없다고 반대했으며 미국은 이어서 증거도 없는 위조지페 사건을 만들어 경제 봉쇄로 들어갔다. 북한은 수백만이 굶어 죽은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을 다시 현재의 급박한 상황에 빗대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하자고 선언하면서 드디어 미사일을 쏘게 되고 핵실험이라는 막바지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주변에는 주한 주일 미지상군뿐만 아니라 수시로 바다와 공중을 넘나드는 전술핵을 탑재한 미군 함정과 비행기들이 일상적인 군사훈련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핵보유국이다. 일본은 수백개의 핵을 몇 달 안에 제조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플루토늄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논리대로라면 북한에 뒤이어 일본, 남한, 대만 등이 차례로 핵무장을 하게될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이 핵실험을 해왔으며 미국은 1030번, 러시아 715번, 프랑스 210번, 영국 45번, 중국 45번, 인도 3번, 파키스탄 2번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200여기의 핵에 대해서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으면서 핵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이라크에 대해서는 대량살상무기 운운하며 초토화 시켰다. 그것도 국제사찰단의 대량살상무기를 조사한다는 명목의 사찰이 벌어진 직후에 안심하고 침공한 셈이다. 그러니 북한으로서는 생존권 보장 없는 '선 핵포기'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북한의 이유가 있는 핵실험 선언을 살펴보자. 그것은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방어적 대응조치이며, 핵 억제력으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핵무기 철폐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과 핵을 이전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서 협상할 것이며,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이 목표라는 것이다. 미국과의 직접 협상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 당장 핵을 전면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까지의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대북 압박정책을 그치고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야하며, 한국 정부는 외세에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반전평화를 정책으로 내걸고 그야말로 미국과 북한의 잘못을 대등하게 비판해야 한다. 동아시아에서의 반전평화운동은 한국 시민을 포함한 주변국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반세기 이상 계속되어온 냉전의 박물관인 한반도와 남북 민중은 더 이상 강대국의 정치 군사적 인질이 될 수 없다. 우리가 가시밭길을 헤쳐서 온 길이 바로 여기까지였고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북한은 더 이상의 물리적 행동을 자제하고 미국은 직접 대화에 나서라.



[오마이뉴스 2006년 10월 13일]

*2년간의 영국 체류를 거쳐, 올 2월부터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63)씨가 최근 북한 핵실험과 이어진 급박한 국내외 정세에 관련한 기고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이 글은 이탈리아 매체인 < La Republica >에도 번역돼 실릴 예정이다.

글을 보낸 황씨는 "외국독자들을 염두에 둔 글이라 북한 핵문제에 관한 그간의 과정을 세세하게 서술하는 것이 중심이지만, 그 경과를 한 번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 출생. 고교시절인 1962년에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등단하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희곡 '환영(幻影)의 돛'이 각각 당선되어 문학 활동을 본격화했다. 1974년 첫 소설집 <객지>를 냈으며, 대하소설 <장길산> 연재를 시작하여 1984년 전10권으로 출간하였다. 중국에서 <장길산>, 일본에서 <객지>, <무기의 그늘>, 대만에서 <황석영소설선집>이 번역.간행되기도 했다.

1989년 동경·북경을 경유하여 평양 방문.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 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한다. 이해 11월,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제4회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1990년 독일에서 장편소설 <흐르지 않는 강>을 써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다. 1991년 11월 미국으로 이주, 롱 아일랜드 대학의 예술가 교환 프로그램으로 초청받아 뉴욕에 체류했다. 1993년 4월 귀국, 방북사건으로 7년형 받고 1998년 사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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