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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류외향-야만은 자본과 함께 온다
이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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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은 자본과 함께 온다
-미군기지와 대추리·도두리, 그리고 국가폭력



류외향



5월 4일, 그날의 광경을 떠올리지 않고 대추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분단의 그늘 속에서 전쟁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한반도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후 세대인 나로서는 전쟁이란 실재감이 전혀 없는 지나간 이야기거나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물론 어느 쪽이 선제공격을 하든 몇 년에 한번씩 전쟁 발발이 임박했다는 흉흉한 정보들이 흘러 다닐 때 어떻게 피난을 가야 할까에 대해 하룻밤 정도 고민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는 어떻게 만나 어디로 가야 할 것이며, 키우고 있는 개들은 어떻게 데리고 가야 할 것이며, 피난 보따리에 쑤셔 넣을 목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따위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공포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두려움은 야릇한 흥분을 동반했고, 일사천리로 풀려나가는 망상 속에서 나는 전쟁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망상 속에서도 결론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차세대 전쟁이라는 것을 뒤늦게 생각해 내고 이내 무기력해져 그만 망상을 접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날 일어난 광경은 그런 내게 전쟁의 완전한 실재감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것은 베트남전을 영화화한 허다한 영상의 한 장면을 닮아 있었고, 나는 마치 거대한 스크린 앞에 서 있는 듯했다. 그것은 그만큼 기이하고 낯설었고, 심지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대지가 숨통을 한껏 열어젖히고 생명의 기운을 힘껏 빨아들이는 만개한 봄날이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햇살은 눈부셨다. 산지가 거의 없는 평택, 시야가 넓은 수밖에 없는 그 너른 땅이 더욱 멀리까지 보이는 그런 아침이었다. 골목골목 걸어서 간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공중에 검은 물체들이 한 점 두 점 등장했다.

육중한 철조망 뭉치를 하나씩 매단 미군 헬리콥터였다. 그것은 우리가 있는 쪽으로 곧장 날아왔다. 점점이 등장한 헬기는 세 대 네 대로 늘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열 대를 넘어섰다. 우리는 어림잡아 열다섯 대는 족히 되는 헬기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대추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 설치작품 <파랑새>가 세워져 있는 동산이었다. 원근감을 제한다면 헬기의 고도와 우리의 시선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셈이었다.

나는 잠시 그것의 정체를 망각하고 감탄사를 연발해야 했다. 그리고 곧이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짙은 패배감이 엄습했다. 그것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실체였다. 패배감을 더욱 짙게 만든 것은 헬기가 목표지점에 착실히 떨어뜨려 준 철조망을 받아 295만 평에 달하는 넓은 들녘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설치한 한국군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절망이었다.

그날 나는 전경의 방패에 찍혀 머리가 터진 동료 작가를 병원에 실어 나르기 위해 일찍 대추리를 빠져나와야 했다. 전경들은 피 칠갑을 하고 쓰러져 있는 수십 명의 부상자들을 에워싼 채 서 있을 뿐 앰뷸런스를 부르지도 않았고 자신의 차로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차량도 농로마저 차단되어 몇 곱절은 더 먼 길을 돌아 병원으로 가야 했다. 나중에 본 사진에는 학교 운동장에 앰뷸런스가 네댓 대 대기하고 있긴 했었지만, 그것은 전시용이거나 전경 수송용이거나, 여하튼 2백 명에 가까운 부상자들에 비해 새발에 피도 안 되는 숫자였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달려왔지만,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은 완전 봉쇄되어 있었다. 대추리 바깥에서 열린 규탄집회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물었다. 괜찮냐고. 나는 절대 안 괜찮다고 대답했다. 몸이야 성했지만, 그날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답도 해 줄 수 없었다. 대추분교를 둘러싼 15천여 명의 전경들을 보는 순간 나는 헛웃음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숫자였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던 조선의 군사들과 성을 에워싼 왜군들의 수적 차이가 이랬을까.

대추초교는 담장이 없는 학교였다. 나무들이 담장을 대신하고 있었으니, 그 나무담장이 뚫리는 건 시간 문제였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시커먼 형제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왔다. 정말이지 댐이 무너지는 듯했다. 단 10분간의 대치상태로 긴장감이 팽팽했던 운동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던 나는 골목으로 이어진 비탈길로 도망쳤다.

그리고 비탈길을 오르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단 5초 만에 운동장은 새까맣게 뒤덮였다. 나는 순간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말문이 막히다 못해 벙어리처럼 어버버거리고 있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학교 건물 안으로 쫓겨 들어간 일행이 머리에서 피가 난다는 전화를 걸어오기 전까지 나는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는 신화 속의 인물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붙박여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쫓겨 들어가 몇 시간째 대치하며 저항하는 동안 군인들의 철조망 설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200여 명의 부상자들이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를 받는 동안 마지막까지 남아 저항하던 여학생들이 끌려나와 경찰서로 실려 갔고, 그러는 동안 대추분교는 완전히 무너졌다. 전경들에게 가로막힌 할머니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통곡하는 동안 무너지는 학교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은 경찰 간부들은 희희낙락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행정대집행은 끝났다. ‘여명의 황새울’ 작전은 대성공이었고, 그날 저녁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윤광웅 국방장관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대추리와 도두리는 고립된 섬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 두 번의 불법적인 검문을 당해야 하고, 한국군이 강제 접수한 농경지는 철조망과 구덩이로 초토화되었고, 전경들이 밤낮으로 그 텅 빈 땅과 군인들을 지키고, 주민들은 눈앞에 제 땅을 두고서도 가지 못한 채 하루하루 시름 많은 날을 견디고 있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인권이 향상되었다고 떠든다. 내 귀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권력과 자본이 있는 곳에는 민주화도 있고 인권도 있겠다. 그러나 힘도 빽도 돈도 없는 곳에는 민주화도 없고 인권도 없다. 한국의 전의경이 5만이 넘는다고 하던가. 그 어디에서도 정부 사업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대의사를 표명할 수가 없다.

구성원들에 대한 이간질과 눈속임 공청회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한 목소리를 내려고 모일라치면 전의경들을 내몰아 싸움질을 시킨다. 그 어린 전의경으로 하여금 할아버지뻘 되는 농민을 죽이게 한다. 대추리는 이 모든 독재적이고 비인권적인 국가권력이 집약되어 활개를 치는 곳이다. 인간의 존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 시대 야만의 결정판이다. 5월 4일 그날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이 세 명이나 나와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카메라 한 대 들려 있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담겨간 인권 유린의 현장은 공식보고된 적이 없다.

미군기지가 왜 평택으로 모여드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국민들이 대부분이다. 한미FTA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밥그릇도 위협받는 수준이므로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어서며 위기의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평택만의, 아니 평택 중에서도 조그만 시골 마을만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핵폐기장이 들어서려고 했던 부안처럼 님비 현상쯤으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당신네들이 희생하면 나라가 조용해진다,라면서 말이다. 정말 그럴까, 평택에 한반도의 미군기지가 집결하면 나라가 편해질까. 이것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문제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는 무관하다고 우기는 국방부의 거짓 선전과 정부와 국방부의 기관지가 되어 버린 대다수 언론들의 왜곡·은폐·편파 보도의 위력탓이다.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부시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을 세웠다.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세계 어디라도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유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더 이상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는 붙박이군이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재 미국이 가장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는 동북아시아 국가는 바로 중국이며, 평택은 미군에게는 최적의 요충지인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에 미군이 절대적으로 주둔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북한 때문이고, 북한의 공격에 방패막이 역할을 미군이 잘 해줄 것이라 믿어왔지만, 적어도 이제는 미군 스스로 그러한 임무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더 크고 강한 미래의 적을 상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역시 전략적 유연성을 관철시키기 위해 지난 5월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고 중동 지역까지 장악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고자 오키나아 현에 있는 해안도시 헤노코에 기지를 건설하려고 한다. 이 헤노코의 주일미군 기지에는 한반도에 무력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가장 신속하게 투입될 부대가 주둔하게 된다. 헤노코는 곧 일본의 평택이며, 평택은 곧 한국의 헤노코인 것이다.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같은 사태를 맞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투쟁의 닮은꼴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헤노코 주민들은 97년부터 10년째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해상 시위를 시작한 지도 3년째이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4년째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으며, 670일 넘는 촛불집회를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있다. 헤노코 주민들은 오랜 투쟁에도 지치거나 힘든 기색 없이 꿋꿋하다. 무엇보다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시의원과 시장이 함께 싸우고, 오키나와 전체 주민들이 뜻을 같이한다. 주민과 활동가들이 몇 년 동안 해상 초소를 점거해도 일본 경찰이 연행하거나 구속하는 일은커녕 강제로 끌어내는 일조차 단 한 건도 없었다. 일본군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지정하는 해괴한 짓은 더더구나 하지 않았다. 이들 시위대에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부터 팔십이 넘은 노인네들까지 섞일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진압이 전혀 없기 때문인 것이다.

헤노코 투쟁은 시위 10년 만에 조금씩 성과를 얻고 있다. 미군은 해상에 미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안을 폐기하고 뭍에 짓겠다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고, 주민들은 너네 본토에다 지어라,라며 다시금 투쟁의 끈을 조이고 있다. 평택 시장이 지지해 준다면, 평택 시민들이 도와준다면 우리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너네 본토에나 지어라고.

헤노코의 상황이 그저 부러울 따름인 대추리 주민들은 외롭고 참담하다. 주민들은 5월 4일과 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국가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돕겠다고 손을 내민 사람들을 빨갱이네 외부세력이네 호도하며 강제 연행과 구금과 구속을 일삼는다. 주민 대표와 인권단체 대표를 구속하고, 경찰에게 조금만 항의해도 닥치는 대로 연행을 한다. 그 속에는 열세 살의, 열여덟 살의 미성년자도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주민들마저 마을에 들어가지 못해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자야 했다. 경찰은 청와대에서 대추리까지 평화 행진을 한, 주민 아닌 사람들이 함께 탔다는 이유로 주민들 수십여 명이 탄 차량을 밤새도록 막아섰고, 주민들은 나흘 동안을 걸어 내려온 주민 아닌 사람들이 고맙고 안쓰러워 따뜻한 밥 한 끼와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자 끝끝내 같이 들어가야 한다며 함께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다.

5월 4일, 뜬눈으로 밤을 지샌 2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주먹밥과 김밥을 봉지에 담아 일일이 나눠주던 주민들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그 광경만큼은 광주항쟁과 다를 바 없다고 회상한다. 어떤 무리들은 외부 반미세력에게 세뇌당한 주민들을 그만 놔주라고도 한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정작 세뇌당한 것은 주민이 아니라 우리 외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곳에 가서 그들의 지난한 역사를 듣고 넓디넓은 들판을 걸어보고 죽어도 논두렁을 베고 죽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느낀 사람이라면 세뇌당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주민들이 그곳에 남아 있지 않다면 이 싸움은 진즉에 끝났을 것이다.

김지태 이장님이 구속되고 문정현 신부님이 단식농성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대추리·도두리 할머니들이 청와대로 삼보일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머리 허연 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어 속죄의 몸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심사가 과히 좋지 못한 상태로 삼보일배를 지지하러 간 나는 할머니들이 첫 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울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그런데 나의 솟구치려는 울음을 막아준 것은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겹겹이 둘러싼 채 길을 막았고, 할머니들은 세 걸음도 못 간 채 엎드린 자세 그대로 붙박여 있었다.

나는 삼보일배가 시작되자 맨 앞줄에 서 있던 전경 한 명이 주춤거리며 등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들이 엎드려 있는 동안 그 전경은 혼자 뒤돌아서서 다른 전경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그것이 정부의 자세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적어도 그 정도만이라도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정부 말이다. 아무리 힘 센 미국이 강압적으로 요구해도 국민들의 고통과 눈물 앞에서는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날 줄 아는 그런 정부의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것이다.

헤노코 주민들은 정부와 싸우지 않는다. 정부를 넘어 미국과 싸울 뿐이다.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정부이지만,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헤노코 주민들을 그 어떤 형태의 공권력으로도 제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국민의 요구를 전달하며 난색을 표명할 줄도 알기 때문이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부득불 정부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과 미군에게 이미 두 번이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적이 있는 주민들은 이제 다시는 그런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겠다고 한다. 한 마디 항변은 고사하고 아침밥 먹던 숟가락 내동댕이치고 몸뚱이만 가지고 쫓겨나온 사람들이다. 독립도 하고 전쟁이 끝났어도 그들은 나라 없는 설움에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다.

이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고, 왜 당하는 사람만 계속 당해야 하느냐고, 할 말은 해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난생 처음으로 공권력이란 것과, 그것도 2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권력이란 것과 맞닥뜨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오장육부가 떨리고 사지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뜩하셨다. 나라가 또 우리를 버리는구나,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과 상처로 밥을 넘길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으셨다. 21세기 문민정부에게도 버림받은 주민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물러설 수가 없다. 이제는 생존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짓밟히고 꺾이고 난도질당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시궁창에 빠진 존엄을 되찾는 길은 끝까지 싸우는 것밖에 없지 않겠는가.

평택과 헤노코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죽고 사는 일이 달린 문제라는 말이다. 먹고 사는 일이 달린 한미 FTA와 죽고 사는 일이 달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은 모두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 세계 통일을 위한 것이고, 전 세계 인구의 상위 2퍼센트가 98퍼센트의 고혈을 빨아먹는 미래를 건설하는 데 거치적거리는 모든 인간들은 그만 죽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순순히 협조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한다. 그래, 그럴 것이다. 순순히 협조하면 목숨까지도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다. 미군의 해외침략 전초기지가 될 평택. 미군의 계획대로 기지 이전이 완료된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정부의 야만성을 매일같이 겪고 있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실천문학 2006년 가을호]



류외향 1973년 경남 합천 출생. 1996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 <꿈꾸는 자는 유죄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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