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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우찬제-상상하는 작가의 눈 여전히 신뢰한다
이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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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작가의 눈 여전히 신뢰한다


우찬제



지금, 우리 소설은 위기인가? 이런 질문은 무척 진부하다. 소설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으랴. 그러나 최근 10여년 이상 계속돼온 소설 위기론에 대해 새로운 성찰이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정보·소비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위력 앞에서 누구라도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불연속적인 것과 연속적인 것인 얽히고 설킨 나날의 삶은 존재의 불확정성을 가중하고 있으며, 파시스트적인 속도로 질주하는 문화 변동은 문화 지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여겨질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퍽 곤혹스럽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문제적 국면의 심연을 성찰하여 진정한 이야기를 펼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벼운 유목민들이며 혼돈을 즐길 줄 아는 신세대들은 많은 새로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공감을 확산시킬 서사전략 구안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존의 작가주의는 새 지평을 마련하지 못한다. 전업 작가들은 많지만, 대중과 상품의 경제학에 연루되면서, 진정한 작가의 아우라는 뒷걸음질친다.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감각에 충동적으로 이끌리는 독자들이 많다. 신문학대중은 대중 자본주의의 경박성에 편승하면서 좋은 작품과 좋지 않은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고 거칠게 소비한다. 여기에는 문학 교육의 문제가 폭넓게 개재한다. 새로운 문학대중은 문학의 반성적 기능을 무시한 채 눈앞의 감각적인 스펙터클만을 소비하려 든다.

그럴 때 문학 읽기를 통한 영혼의 신장이나 진정한 감각의 계발, 혹은 새로운 세계관의 발견은 아득히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러나 진정한 소설사는 일반적 흐름을 위반하는 자리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법이다. 언제나 문학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역사적 실체였다.

세계문학사에서 늘 ‘어떤’ 문학의 위기는 있었고, 그 순간에도 ‘다른 어떤’ 문학은 위기를 기회삼아 새로운 문학사적 전기를 마련하곤 했다. 또 하이테크(high-tech) 시대에 로테크(low-tech)적인 문학의 속성이 역설적으로 문학을 위기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적잖은 위안을 준다. 작가 샐먼 루시디도 하이테크 시대의 뉴미디어에 의해서 문학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의견을 비판하며 소설을 옹호한 적이 있다.

문화 예술적으로 격동기건, 안정기건 간에 항상 좋은 문학은 소수에 불과했고 또 소수의 관심사였다. 그렇다면 늘 있어왔던 다수의 위기의 문학을 한탄할 게 아니라, 소수의 진정한 작품을 찾아내고 올바로 가치 평가하고 해석하고, 또 많은 신문학대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방법적 전략이 더 온당할 터이다.

가령 최근의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중혁, 박민규, 이기호, 한유주 등의 젊은 소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소설의 활로를 증거한다. 특히 접속 시대의 새로운 경험과 감성을 전복적 위반의 담론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는 여전히 위기란 곧 위험한 기회라는 역설, 그리고 문학 자체가 역설의 힘으로 생존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또 거기에 기대고 싶다.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험 세계나 일어날 수 있는 가능 세계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이야기하는 존재인 작가의 상상의 눈을 신뢰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21세기에도 소설은 인식과 스타일 양면의 아름다운 조화를 통해 위기를 넘어선 생존을 거듭해갈 것이다. 변화와 지속을 중층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인식의 눈과 그것을 새로운 감각의 스타일로 창조할 수 있는 예지의 종합, 바로 이것을 통해 21세기 소설은 새로운 진로를 알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 2006년 6월 19일]



우찬제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1987년 '감금의 상상력과 그 소설적 해부학'으로 중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평론 활동 시작. 2006년 현재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지은 책으로 <욕망의 시학>, <상처와 상징>, <타자의 목소리>, <텍스트의 수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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