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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홍기돈-노신(魯迅)과 요즘 한국정치
이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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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魯迅)과 요즘 한국정치


홍기돈



인생이 한순간에 누추해지는 것은-386정치인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임현치(林賢治)의 〈노신 평전〉(김태성 역, 실천문학사)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노신의 지적에 깊이 공감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 문장을 통하여 역사의 어떤 패턴이 막연하게나마 느껴졌던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문단의 젊은 작가들은 죽음으로 경사하는 의식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었다. 나는 그 까닭을 사회학의 관점에서 설명해 왔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사(前史)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사회를 인식하고 줄기차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참혹한 좌절감만을 끌어안게 된 그들의 기억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991년의 분신 정국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제 몸에 스스로 시너를 쏟아 붓고 불을 붙여 분신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모든 것을 내걸고 극단적인 대결을 펼쳤던 셈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꿈은 타락한 사회의 견고한 장벽에 부딪쳐 그저 맥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 세대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노동을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 어른이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존재, ‘철’이 든 존재가 아니던가. 허나, 이 세계는 견고하면서 동시에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질서로 작동된다. 그들 젊은 세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회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의식이 그들 사이에 팽배한 것은 당연했다. 사회의 바깥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펼쳐져 있기에 사회 바깥을 꿈꾸는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죽음의식으로 덧칠하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었다.

아마 1920년대 전반의 이탈리아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람시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낡은 것은 멸해 가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을 때 위기가 온다.” 그래서 나는 작품 분석에서 이 문장을 몇 번 인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노신의 발언 역시 이 위에 그대로 겹쳐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의 어떤 패턴이란 이를 가리킨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1980년대의 성과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발판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자 했다. 스스로를 ‘386세대’라 지칭하는 정치인들이었다. ‘386세대’란 단어에는 어떠한 정치적 지향도 들어있지 않다.

‘긴(급)조(치) 세대’라는 단어와 비교해 보라. 시대와의 길항이 거세된 앙상한 말장난일 뿐이다. 또한 80년대의 성과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욕망이 그득하게 배어난다. 그래, 군사정권과의 투쟁은 당시 대학교에 다녔던 사람들만 전개했었나. 왜 스스로를 특화시켜야만 했던가.

386세대임을 자처한 정치인들은 ‘새로운 것’(그람시)이랄까 ‘새 길’(노신)을 모색한 바 없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넙죽 절을 하였던 선거를 마친 국회의원 낙선자를. 이러한 풍경 또한 하나의 상징이라 이를 만하다. 노골적인 충성 경쟁과 줄서기가 그들의 생존 전략이며, 생존 전술이라는 말이다. 자,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미국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 요구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 하였다. 대학 시절 “이 땅 모든 악의 근원은 미국입니다”라고 주장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지금 평택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평택을 동북아 지역 군사 개입(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전략 실현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벌이는 노력이다.

386정치인들은 침묵을 통해 이런 현실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다. 이맘때 쯤 농활을 가면서 ‘농민가’를 부르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대동제 때면 마이크 잡고 풍악 소리에 맞춰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라고 목소리 높이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노신의 이런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이어받는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배반하여 아무도 못 가도록 군홧발로 짓밟아버릴 때, 인생은 한순간에 누추해지고 만다.”


우리 시대의 ‘아Q’들을 어찌할 것인가(上)-'노빠’ 정서의 이해

「아Q정전」(阿Q正傳)은 노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예컨대 「아Q정전」에 나타나는 혁명당에 대한 비판의식은 1911년의 경험과 이어져 있다. 1911년 원로혁명가 왕금발(王金髮)은 드디어 혁명에 성공하였다. 그는 노신을 산회초급사범학당(山會初級師範學堂)으로 위임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왕금발이 내세웠던 혁명의 항목들은 별로 실행된 게 없었다. 〈노신 평전〉(실천문학사, 2006)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입성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왕금발은 수많은 신흥귀족들과 한가한 인사들에게 둘러싸여 대 도독의 위세를 드러내면서 친신들을 구성하고 사치스런 생활에 빠지는 등 일락에 젖어들었다. 노신은 당의 이런 상황을 ‘아문에 있는 인물들은 처음에는 포의(布衣) 차림으로 들어와서는 열흘이 못 되어 날이 그다지 춥지 않은데도 전부 장포(長袍)로 갈아입었다’라는 말로 비아냥거렸다.”

입으로만 요란하게 혁명을, 개혁을 떠드는 이들이야 역사에 흔히 나타난다. 그런데, 비극적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세력을 좇아 무조건 긍정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이들의 정서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노빠들은 이의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노빠의 일반적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노빠들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자신들만의 희생으로 진척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즉각 튀어나온다. “세상 좋아졌다. 옛날 같으면 너희 같은 놈들은 당장 구속됐어. 세상이 좋아지니까 겁을 상실하고 까불고 있어.”

글쎄, 참혹한 세상을 이 정도로나마 바꾸는 노력을 그들만 했던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386 정치인’들을 보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민주주의 성과에 대한 배타적 독점 욕망은 그들의 속성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구속만 피할 수 있다고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이게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절대 척도는 아닌 까닭이다. 노동자가 분신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은 이러했다.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것을 보면, 대통령의 의식구조와 노빠들의 의식구조는 거의 일치하는 듯싶다.

둘째, 노빠들은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고 포용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준다. 완전히 독심술(讀心術)하는 수준이다. “복잡한 상황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을 제대로 좀 이해해라.”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고독한 지도자’라고 강조하는 방식으로 화답한다. 이러한 교감이 반복되면서 독심술과 고독은 점점 증폭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물론 노빠의 독심술 능력은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고독한 결단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단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야만 한다.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는 그 무엇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논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잘못되었다. “대통령이 결정했으니까 이해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판단했으니까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말이다.

셋째, 노빠들은 거대한 적을 설정하여 스스로 합리화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회창이 집권했으면 분명히 상황은 더 좋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이러한 연장에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으면 “한나라당 2중대”라거나 “딴빠”(한나라당 지지자) 등으로 매도하는 습성도 드러낸다.

이에 따라 그들은 언제나 민주 세력이 선택해야 하는 단 하나의 대상만을 설정하게 된다. 물론 그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안티조선’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조선일보〉와 긴밀하게 밀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눈 감아 버린다. 이 순간 〈조선일보〉는 동지이기 때문이다.

부등식을 들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눈에 명쾌하게 들어온다. 그렇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왜곡이 개입하게 마련이다. 미군의 평택 이전 과정을 보라. 우리 정부는 상당히 굴욕적인 자세로 미군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그렇다면 이회창이 집권했을 경우 “그것 가지고 되겠습니까, 이것마저 가져가세요.”라고 덤까지 바쳤으리라 전제해야 하는데, 글쎄, 과연 누가 여기에 동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부는 그 내용을 꽁꽁 숨겨왔다. 이회창이 집권했을 경우 ‘뻔뻔하게’ 그 내막을 국민들에게 들이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현 정권의 선택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과정과 내용을 숨겨왔으니 대추리, 도두리의 주민들과 제대로 대화하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은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군 병력을 투입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물론 노무현 대통령 또한 할 말이 있을 게다. “난 몰랐다. 세상에 대통령도 모르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가.” 정부의 어떤 계획이 시중에 회자될 즈음 대통령은 그러한 식으로 사실을 여러 번 부정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수보다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중에 떠돌던 얘기들은 실제로 거행되었다. 나는 여기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을 들은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빠들은 ‘거대한 적’이라는 수렁에 빠져 스스로를 긍정하기에 바쁜 것 아닐까. 한나라당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열린우리당이 지지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까닭은 여기서부터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아Q’들을 어찌할 것인가(下)-'노빠’ 정서의 이해

노빠의 기본적인 정서를 이렇게 살펴보면, 노신의 「아Q정전」을 파악하기는 한결 용이해진다. “우리 시대의 아Q”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빠와 아Q는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일견 비참하고 우습게만 제시되는 아Q의 의식과 행동이 나름의 설득력을 확보하고 생동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Q정전」에서 노신은 “나는 아Q의 성명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다.”라고 명시하였다. 이름을 찾기 위한 노력을 백방으로 쏟았지만, 어떻게 해도 ‘Q’의 정확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Q는 자신의 이름이 지워진 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도 스스로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Q의 ‘아(阿)’자 한 자만은 매우 정확하다는 점이다. 억지로 주워 붙였다거나 빌려 쓴 것과 같은 약점이 전혀 없으므로 고금 역사에 통달한 학자들 앞에서도 거리낄 것이 없다.”

아Q의 ‘아(阿)’자처럼 노빠의 ‘노(盧)’자 한 자만은 매우 정확하다. 그렇지만, 아Q의 ‘Q’가 불분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빠’는 하나의 경향을 가리킬 뿐 정확한 이름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빠’는 주체의 자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내어주면서 비로소 차지하게 되는 이름인 까닭이다.

앞에서 열거했던 노빠의 특징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나는 이렇게 판단했으니까 대통령을 지지한다.”의 방식으로 사건을 이해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결정했으니까 이해한다.”라는 상황 판단이 그들의 사고 구조이다. 이라크 파병과 같은 결정을 내렸어도 노무현 대통령이 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은 그래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민간인에게 군 형법을 적용하여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동조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작품의 말미에는 혁명에 연관되었다는 혐의로 인해 아Q가 ‘옷자락이 긴 사내’ 앞에 서게 되는 장면이 제시되어 있다. 노신이 강연에서 언급했던 ‘장포(長袍)로 갈아입은 인물들’을 떠올린다면 ‘옷자락이 긴 사내’가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가늠하게 된다. 바로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섰던, 지금은 입으로만 혁명을 떠들어대는 세력의 상징인 것이다.

옷자락이 긴 사내가 아Q에게 멸시하듯 말한다.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아Q는 그 앞에 꿇어앉은 모양새다.

“노예근성을 타고난 놈 같으니…….”
과거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여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서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렇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노무현 정권이 탄압하는 상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추리에 다녀간다는 이유로 귀가하던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연행을 당하지 않았는가.

아Q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정신승리법’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정신승리법’이란 것은 결함을 은폐하고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아Q의 대응 방식을 가리킨다.

“예컨대 이마에 가득 부스럼 자국이 있으면서도 ‘부스럼[癩]’이란 말을 꺼리고 심지어 이 글자와 음이 같은 ‘뢰(賴)’ 자를 전부 생략하여 말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머리가 빠진 것을 가리기 위해 대머리를 상징하는 ‘광(光)’ 자와 ‘량(亮)’ 자, 심지어 ‘등(燈)’, ‘촉(燭)’ 같은 글자도 전부 피했다.

또한 남에게 얻어맞고서도 ‘아이가 어른을 때린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자기기만의 태도로 실존을 대하다 보니 문제의 본질로 들어갈 수 없었고 영원히 문제의 외피에서 맴돌면서 일종의 가상공간에서 생활했다. 희극적 태도로 비극을 연출한 것이었다.”(〈노신 평전〉)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마치 저희만 나서서 이룩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하여 세상이 바뀌었다고 전제하는 것도 심각한 오류이다. 거대한 적을 세워두고 자신들의 잘못과 무능을 합리화하고 오히려 자찬하는 태도 또한 아Q의 ‘정신승리법’과 비슷하다.

노빠의 ‘정신승리법’이 유지되는 한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가기 힘들 것이다. ‘정신승리법’으로 만들어지던 아Q의 환상 세계가 실세계와 단절되었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성찰 없는 자기 정당화가 현실과 쉽게 공존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조금이라도 상승한다면 과연 누가 박수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강남의 땅 부자들이 보내는 갈채가 아닌지,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극우보수 세력의 지원이 아닌지, 미국만 쳐다보는 노란 가면을 쓴 하얀 영혼의 환호가 아닌지, 비정규직 양산에 만세 부르는 이들의 찬가가 아닌지.

아마 그 정도만 된다면 노빠들은 노무현 대통령 앞에 무릎 꿇은 자신의 꿈을, 열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그러한 자각은 빠를수록 좋다.

노신은 아Q의 이름 추적이 실패하고 나서 이런 말을 남겨 두었다.
“나는 그저 ‘역사 연구와 고증에 기호가 있는’ 호적(胡適) 선생의 제자들이 새로운 단서를 많이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내 이 「아Q정전」이 그 때에 가면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아Q가 제 이름을 찾는 날 「아Q정전」의 존재 의미가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다. ‘노빠’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린 이들은 제 이름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내가 쓰는 이런 글이 무용해지기를 바라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노무현 정권 어디부터 일이 꼬인 것일까 -'바보 노무현'이라는 신화

어떤 사회에서 지도자는 사람이 아닌 추상적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그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이런 현상이 종종 발견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났던 독일 국민들의 히틀러 숭배가 대표적인 예이다. 김일성 주석이나 박정희 전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에서 파악된다. 사실 파시즘의 징조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나타나는가. 인간이란 존재가 원체 나약하기 때문이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 아이는 부모와 동일시하면서 기준과 가치를 체득해 나간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무)의식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도자에 대한 과잉집중(hypercathexis)을 통해 스스로의 자아를 지우고 이상화된 대상(자아 이상, ego ideal) 속으로 빠져든다. 동일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동일화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분명하다. 그들은 지도자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바친다. 지도자의 결단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며, 비판의식이 결여되고 견제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이를 퇴행으로 간주했다. 그는 ꡔ집단심리학ꡕ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종류의 원초 집단은 그들의 자아 이상이 놓일 자리에 동일한 하나의 대상을 두고 있고, 결론적으로 그들의 자아 속에서 서로를 동일시하는 수많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나는 대통령에 대한 노빠들의 독심술을 언급하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암시 감응성’(suggestibility)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그리고 거대한 적을 설정하는 경향을 지적하였다. 이는 전염성(contagion)이 통용되는 최면적 질서(a hypnotic order)가 가지는 배타성에서 말미암는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배타적 독점 욕망도 살펴보았다. 이는 ‘3김 정치’ 이후 한국 정치가 유포하고 있던 위기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인 노무현’을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 대선 기간 노무현 후보의 출현과 진출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노무현 후보는 다음 네 가지 면에서 한국정치의 희망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확고한 결집을 이끌어 내었다.

한국정치의 희망 그리고 드라마 주인공 같았던

첫째, 그는 민주화의 영상과 겹쳐 있다. 청문회 때 맹렬하게 분노하여 명패를 움켜쥐던 모습이 국민들에게 반민주 세력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노무현은 87년 6월항쟁의 기억을 자극하는 바 있었다.

둘째, 그의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한국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박탈감을 조장하는 커다란 요인 가운데 하나가 학연인데, 이로써 그는 이 땅의 구조적 모순과 맞서는 자리로 나서게 되었다.

셋째, 호남 지역에서의 지지를 동력으로 삼았으니 지역차별과 공존하기가 어려웠다.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광주에서의 지지를 기억해 보라. 여러 가지 정치적 요인이 있었지만, 부산 진출을 시도하다가 번번이 좌절한 이력도 여기에 큰 역할을 했다.

넷째, 애초 정치권 내에서 그의 기반은 취약하였다. 국민들의 직접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과정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같은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패한 정치권에 칼을 들이 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여기서 싹트게 된다.

자,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노무현 후보의 상징에 열광하였겠는가.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각성이 되었고, 낡은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판단한 이들이다. 지역차별, 정치권의 부패한 풍토, 학벌체계의 폐쇄성 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극적인 노무현 지지자로 나섰다. 생각해 보라. 타락한 현실을 눈 뜨고 직시했던 사람일수록 고통이 크고, 위기감은 넘쳐나지 않았겠는가.

당선된 직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서 노신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람시의 언급도 그 위에 포개어 놓는다. “낡은 것은 멸해 가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을 때 위기가 온다.” 맹목적이기는 하지만, 고통과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노빠는 ‘레드 콤플렉스’에 빠진 부류와 크게 다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것일까. 내가 보건데,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난 직후부터이다.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써 그는 한 편의 신화를 완성하였다. 그는 부패한 기득권의 배척과 맞서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한 과정의 극적인 전개는 영웅담의 기본적인 구조와 유사하다. 영웅적인 서사가 현실 위에 구축되는 양상이니 감동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신화를 거부하는 데 존재 근거가 있다. 그리고 현실의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영웅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부터 권력은 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인격화된 권력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독불장군으로 나서게 되었다.

거부하지 못한 신화와 나르시스의 깨진 거울

이렇게 전개된 최근의 정치 현실은 먼저 한국 사회에 불행이다. 그리고 대통령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어느 순간 홀로 남겨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의 곁을 떠나는 이들을 확인하게 될 때, 그가 느끼게 고독은 겉잡을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영웅의 나르시시즘은 깨져 버린다.

“그는 자신 이외의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로 이러한 자기 사랑의 나르시시즘적인 자질이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연재를 마치며 두 가지만 확인하도록 한다.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여 이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매 순간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제 영웅의 시대는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이성의 몫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고야, <로스 카프리초스> 연작 제43번 참조)

두 번째는 권력을 파악하는 데 여유를 가지자는 것이다. ꡔ사기ꡕ(史記)의 「육가전」(陸賈傳)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말을 타고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을 타고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는 법이다.” 선거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권력의 운영은 이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결절 지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동반되어야만 한다. ‘바보 노무현’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간과되었다.

그러니 정녕 민주주의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레디앙 2006년 5월 13일]



홍기돈 1970년 제주 출생.1999년 「작가세계」신인상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 당선작은 '그림자로 놓인 오십 개의 징검다리 건너기 - 한강론'. 연구서로는 공저인 <탈식민주의를 넘어서>가, 개인 평론집으로는 <페르세우스의 방패>, <인공 낙원의 뒷골목>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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