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자료

사진자료

영상자료

이전자료

이전자료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rss
조회 2181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칼럼] 박승옥-통일운동의 시각 전환을 위하여
이름 관리자
첨부 1014_060302141280569.jpg (39.4K)



통일운동의 시각 전환을 위하여


박승옥 | 시민발전 대표


1. 들어가며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나,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 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
마음 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 김구, <3천만 동포에 읍고함>, 1948.2.20.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통일이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당연히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그 속에 실현될 것이다. 공산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평등, 자유, 번영, 복지 이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통일과 대립되는 동안은 진정한 실체를 획득할 수 없다. 모든 진리, 모든 도덕, 모든 선이 통일과 대립하는 것일 때는 그것은 거짓 명분이지 진실이 아니다.
-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 1972.9., <씨의 소리>.

우리는 용이하고 실천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남북 간의 장벽을 점차 제거하고 구체적인 실적을 통해서 상호 간의 불신을 신뢰로 대체해 나가는 것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운영하는 길이며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
1. 조국의 평화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완화와 국제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
- 박정희, <평화통일외교 정책에 관한 선언>, 1973.6.23.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 2000.6.15., 남북공동선언문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남북을 가릴 것 없이 한민족에게 통일은 지상과제였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다 치떨리는 고문을 당하고 차디찬 감방에서 옥살이를 하는가 하면, 단지 북한을 방문했다는 사실 때문에 간첩으로 몰리거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통일운동 과정에서 남북 정권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통일은 당위이자 의무였다. 박정희도 김일성도, 시중의 장삼이사도, 극좌이건 극우이건, 교류협력을 통한 단계적 통일론이건 흡수통일론이건 간에 누구나 통일을 주장한다. 통일은 유전자처럼 한민족에게 내재되어 있는 염원이자 희망이었다. 198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KBS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분단현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통일의 필요성을 웅변해준 사건이었다.

굳이 이산가족의 아픔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분단은 한민족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가 강제로 한민족을 둘로 갈라놓았다는, 분단의 피동성과 비자주성이야말로 그 어떤 사회과학 용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통일의 당위성을 얘기해주는 첫 번째 까닭이었다. 때문에 한국전쟁 이래 통일운동은 끊이지 않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사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한반도에 세워진 것은 한국민의 자주독립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군사정부였다. 그 결과 1950년 6월에 어림잡아도 근 4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한 피의 동족상잔인 한국전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한국전쟁 이후 남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의 사회주의 체제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상대방 체제의 붕괴를 통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극단의 적대정책을 펼쳤다. 말로는 평화통일을 천명하고 있었지만 북은 혁명의 전국화 전략을, 남은 공산정권 타도 전략을 취하였다. 남북의 정권은 이를 빌미로 또 극도의 반공주의, 극도의 반미주의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해 왔다. 적대하면서 공생하는 기이한 독재의 공범자들이었다. 물론 이런 전략의 뒤에는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남북의 정권은 꼭두각시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각기 미국과 소련의 대리인이었다. 특히 이런 외세의존과 식민성은, 주체를 강조하면서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높이고 있던 북한 사회주의 정권보다 미 대사가 총독으로까지 지칭되던 남한 군사독재정권이 더 심했다. 분단체제라는 표현은 이같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극명하게 설명해주는 용어였다.

1970년대까지 전후복구에 성공한 북한 사회주의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상징하듯 가난과 부패에 찌든 남한보다 인민들의 생활과 경제력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앞서 있었고, 이때까지 통일공세는 주로 북한 쪽에서 이루어졌다. 통일정책 또한 체제경쟁의 하나였고, 북은 그 경쟁에서 우위에 서 있었다. 무장병력을 남한에 보내면서 남조선 해방전략의 무장투쟁 노선이 등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들판의 불길처럼 고조되어 가기만 하던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을 제어하고자 하던 미국의 강한 요구에 따라 남한이 근대화, 산업화 전략을 취하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하면서 1970년대를 지나자 상황은 역전된다. 그리고 급기야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더욱이 남한이 체제경쟁의 승자였고, 당연히 통일공세의 주도권은 남한 정권으로 넘어왔다. 주석궁을 탱크로 밀어버리자던 선동구호가 상징하듯 남쪽 일부에서 무력사용을 통한 북한정권 붕괴론, 북한 민주화론, 북한 흡수통일론이 나오는 것 또한 똑같이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이같은 남북 군사독재정권의 적대적 공존을 위한 통일정책의 허구성을 깨면서 새로운 통일운동의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운동은 평화통일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는 반통일 범죄행위의 기초를 허무는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인민의 민주주의 기본권과 일상생활을 피폐하게 만드는 분단체제를 허물어뜨리는 민주화운동은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통일운동이었으며, 민주주의야말로 각종의 통일운동이 꽃피울 수 있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었다. 1960년 4.19혁명 직후의 통일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의 승리 이후 분출되었던 남북교류와 통일운동은 이를 입증한다.

2000년 6.15선언 이후 오늘날의 통일운동은 주체와 대상,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난날의 다분히 이론투쟁에 가까운 논쟁을 벗어나 교류와 지원, 협력을 토대로 하는 다양한 활동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지금은 논쟁다운 논쟁이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 남북 정부 차원의 활발한 교류협력에 견주어 민간의 통일운동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기아와 대량탈북 사태에 직면하여 민간이 보여주었던 활발한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과 교류협력 지원사업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그 활력과 의제선정 능력은 지금은 적잖이 떨어져 있는 상태로 평가되고 있다. 때문에 새롭게 민중참여형, 사회통합형 통일운동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변화된 현실에 걸맞게 통일운동 또한 변화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하는 근본의 질문을 다시 던져보아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통일을 희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북한에 석탄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어떤 통일을 위한 지원인지, 그것이 올바른 지원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예전과 달리 20대 가운데 5명 중 1명은 꼭 통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기도 한 현실(서울신문, 2005.7.18.)이라면 모든 통일은 선하다는 명제에 대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근본의 도전을 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진단이 필요하다. 지금의 양극화된 남의 현실을 그대로 북에 복사하는 자본주의 통일이란 결코 바람직스러운 통일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북의 기아와 왕조군사독재 체제를 그대로 남에 복사하는 통일이란 언어도단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현실에 처해 있으며, 우리는 어떤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가.


2. 피크오일이라는 거대 해일이 다가오고 있다

- 석유정점과 진보, 경제성장, 산업사회, 석유문명의 붕괴

화석연료 에너지가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철, 아연, 구리 등 천연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있다. 그에 따라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값싼 석유공급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석유를 기초로 무제한의 성장과 진보를 이룩했던 석유문명도 침몰 직전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마디로 피크오일(Peak Oil, 전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타이타닉 침몰 5분 전과도 같은 석유정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3가지 견해가 있다. 비관론(2007~2010년에 석유정점), 절충론(2015~2020년에 석유정점), 낙관론이 그것이다. 1956년 미국의 킹 허버트는 처음으로 미국의 석유생산이 1966~1972년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허버트의 예측대로 실제 미국은 1970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석유생산이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세계 석유생산이 언제 정점에 도달할 것인지가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오늘날 석유학자들과 석유 관련 전문가들 대부분이 비관론에 서 있으며, 석유업자들과 미국 에너지청 등만이 막강한 소수로서 낙관론의 입장에 서있다. 최근 절충론이나 낙관론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비관론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석유정점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현대 자본주의 문명은 화석연료 문명, 즉 석유에 중독된 문명이다. 현대산업의 원동력은 값싼 석유이다. 20세기 들어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석유는 자동차문명 사회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석유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노마드니 관광산업이니 하는 오염과 낭비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초인 자동차, 철도, 배, 비행기 등 값싼 운송도 값싼 석유가 있기에 가능했다. 현대농업 또한 씨앗, 논밭 갈기, 풀 제거, 가을걷이, 보관, 운반 등 모든 과정에 석유가 투입되는 석유농업이며, 의식주 모든 것을 석유에너지로부터 얻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90%는 석유 없이는 만들지 못한다.

인류는 수억 년 전에 만들어진 자연의 보물인 석유를, 그리고 각종 천연자원을 단 몇 백 년만에 마구 퍼내어 쓰고는 그 쓰레기로 마구 내다버리고 있다. 이는 미래 세대의 저금통장을 몽땅 털어먹는 도둑질이자 미래를 소비하는 파렴치한 범죄행위이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즉 슬기로운 동물이라기보다는 재생불가능한 쓰레기 만드는 동물, 눈먼 소비중독의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정확할 듯싶다.



▲ 그림 중 아랫쪽 박스 안에 그려진 도표는 연도(서기)에 따른 석유 소비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이 도표를 석유가 생성된 시기까지 연장해서 그리려면 왼쪽으로 17km만큼 종이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인류는 오직 한 번 석유를 쓰고, 오직 한 번 금속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지구가 더웠던 시기에 만들어진 석유가 지상으로 다시 나오면서 다시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상식이다. 때문에 현대 석유문명의 붕괴는 필연이며, 제6의 멸종 또한 현실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말미암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는 이미 현실로 닥치고 있다. 남북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어 투발루라는 나라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히말라야 빙하가 녹으면서 머지않아 인도 북부지역은 농업이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프리카 사막지역과 중국의 사막은 너무나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알래스카의 동토가 녹으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있기도 하다. 카트리나의 재앙이 바로 기후변화의 상징임에도 세계 석유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미국은 석유소비를 줄이지도 않고 심지어는 교토의정서에 비준조차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근대 산업문명은 진보와 발전이 아니라 재앙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압축근대화는 자랑스런 발전의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와 자연이 파괴되고 자유인들이 상품노예가 되어버리고 만 재앙의 자살골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수출 중심의 한국경제는 대외의존도가 70%를 넘고 있다. 당연히 석유공급이 끊기거나 제한되면 한국경제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며 그 피해는 먼저 노동자와 농민, 빈곤층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 뻔하다. 지금까지 풍요를 자랑하면서, 때로는 북한을 경멸하며 해오던 북한 지원도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3. 북한이라는 '가까운 미래'

- 쿠바와 북한의 전혀 다른 선택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북한과 쿠바에는 값싼 석유공급이 한순간에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두 나라의 현재는 전혀 정반대이다. 한쪽은 식량부족과 기아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민들이 굶주려 죽는 끔찍한 사태를 맞았을 뿐만 아니라 여지껏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인민들의 탈주 사태가 계속되면서 선군정치라는 이름 아래 총칼로 체제 붕괴를 막는, 급기야는 핵실험까지 감행하며 위기탈출을 모색하는 극도의 군사주의 정권, 공포정치 독재정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쿠바는 지속가능한 유기농으로 전환해 식량의 자급자족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문명에서 현대화된 농업국가로의 전환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명공학이 아닌 첨단 바이오테크놀로지 사회이며, 인구수로는 라틴아메리카의 2%에 불과함에도 과학자 수로는 라틴아메리카의 11%에 이르고 있다. 겨우 10여 년이 넘는 기간에 무엇이 이같은 차이를 낳았는가.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쿠바에 있던 소련인들이 전원 철수했다. 이와 함께 석유를 포함해 연간 60억 달러 가치로 평가되는 각종의 지원이 끊기고 말았다. 쿠바의 국내총생산(GDP)은 한순간에 85%나 줄었고 석유소비는 절반으로 줄었다. 1993년에는 미국 달러화에 의한 거래를 허용하고 관광산업을 개발하는 한편 해외에 있는 쿠바인들에게 송금을 간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식량위기에 직면한 쿠바는 1991년 9월 특별시기를 선포하면서 소비에트식 산업화 모델을 폐기하고, 트랙터와 화학비료 대신 가축을 이용한 유기농업 사회로 차근차근 전환해갔다. 또한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개인 식량생산을 허용했다. 쿠바의 구호는 단순했다.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는 시계를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오늘날 쿠바의 식량생산은 자급률이 거의 100%에 이른다. 특별시기 이전에 30%에 불과했던 식량자급률과 견주면 가히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식량공급은 충분하거나 남지는 않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데 적절한 정도를 유지한다. 물론 특별시기 이전과 같은 화석연료 에너지 투입 없이 그같은 식량생산을 이룩한 것이다. 쿠바 인민들은 본의 아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육식은 이틀에 한 번에서 2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녹색혁명 작물인 밀과 쌀 생산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채소 생산은 꾸준히 증가했고, 쿠바 사람들의 식물성 단백질 섭취도 증가했다. 이전에 쿠바 사람들은 살찐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으나 이제는 살찐 채소를 즐긴다.

특히 도시 농업의 발달은 쿠바를 방문하는 수많은 농업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위기 이후 쿠바는 도시민들의 탈도시를 지원해, 수많은 아바나 시민들이 농촌으로 돌아갔다. 농부는 누구나 농업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농부의 소득이 일한 만큼 증가하면서 이런 물결은 더욱 거세졌다. 오늘날 쿠바 농부들은 1달에 200~400페소를 번다. 농장관리인 임금이 360페소, 지방의 의사가 500페소를 버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수준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사와 농부의 소득 차이가 15 대 1인데 쿠바에서는 이 비율이 3 대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쿠바는 무엇이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은지를 과거에서 배웠다. 트랙터를 소가 대신했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가장 저렴한 '에너지 다이어트'를 실현한 셈이다. 교통운송 분야만 보더라도 쿠바에서는 모든 사람이 운송수단을 공유한다. 쿠바의 운송수단은 값싼 대중교통수단인 카멜, 트럭, 버스, 자전거, 마차, 심지어 노새까지 다양한데, 필요한 운송수단은 간단히 징발된다. 교통혁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의 문제이다. 경쟁할 때보다 서로 협력할 때 문제가 해결된다는 진리는 쿠바에서 아주 극명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서구의 기준으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에너지 사용이란 관점에서는 가장 효율이 높은 방법을 쿠바는 채택하고 있다. 쿠바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미국의 1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쿠바에서는 새로 짓는 주택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주택이 리모델링된다. 높은 에너지가 드는 시멘트 건물은 거의 공급되지 않고 있다. 쿠바 인민들은 미국 사람이 비해 4분의 1 정도 되는 면적의 주택에 거주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67%가 대부분 사실상은 은행 소유인 자가주택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쿠바인들은 80%가 자신의 집을 갖고 있다.

특히 쿠바의 의료와 교육 수준은 특별시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향상되었다. 쿠바는 의료와 교육, 문화 정책에 역량을 투입해 이미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볼 때 가장 뛰어난 의료, 교육,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쿠바의 무상의료와 무료교육은 쿠바의 음악, 춤과 함께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게 어색할 정도이다. 쿠바의 1개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15명이며, 문맹률은 미국 수준이다.

쿠바는 세계 인구의 82%를 차지하는 제3세계에서 가장 상위 수준의 의료, 교육, 식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유아사망률은 미국보다 낮고, 평균수명은 미국과 같다. 1인당 의사 수는 미국보다 많다. 의사들도 바로 이웃집에 있고,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한다. 오히려 돈 없으면 치료도 못 받고 먹지도 못 하고 외롭게 죽어가야만 하는 정글자본주의의 삭막한 미국보다 훨씬 나은 사회안전망을 갖춰놓고 있다. 쿠바의 의사들에게는 의료는 소명이지 돈벌이 사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새겨져 있다.

물론 쿠바에는 문명의 이기들과 상품들이 많지 않다. 그나마 자동차같은 경우 낡고 오래된 것들이어서 수도인 아바나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매연에 오염되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녹화하는 녹화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으며,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대체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높은 수준의 하이테크 기술 대신 지속가능한 적정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햇빛발전이나 바람발전같은 대체에너지도 대규모 단지가 아니라 소형 체제로 개발되고 있다. 이처럼 쿠바의 모든 정책은 그 초점이 개인이 아닌 지속가능한 사회에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쿠바는 지구 산업문명의 미래를 앞서서 일찍 경험하고 있다. 이런 삶의 변혁이 또한 쿠바 인민들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도 자본주의 세계화를 향해 맹목으로 질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 그렇게 강요하는 미국의 투표율은 정작 50%선에 불과하지만 쿠바 유권자들은 95%가 투표에 참가한다. 그것도 미국의 거짓 선전과 달리 선거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그 이전보다 더 거세게 쿠바를 봉쇄하고 쿠바 체제의 붕괴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쿠바는 미국의 바로 코 밑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했기 때문이다. 쿠바의 국방비는 12억 달러(2004년)이다. 인구 1100만에 군대는 육군 3만8000, 해군 3000, 공군 8만 등 총 12만1000 명이다. 생각해보라. 인구가 2억이 넘고 한해 국방비가 5181억 달러(2005년)로 세계 국방비의 52%를 차지하며 각종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150만의 세계최강 군대를 보유한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쿠바는 바로 눈앞에서 순식간에 그야말로 석기시대로 돌아갈 만큼 초토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쿠바에 침략하지 못하고 있는가. 북한은 물론 한국의 통일운동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결단코 미국의 위협과 봉쇄는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100만이 넘는 북한군(북한주민 수는 2300만 명)과 선군정치, 수많은 아사자와 되풀이되는 식량위기의 재앙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북한경제의 현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과 평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떤 시각이나 평가에 앞서 북한경제는 이미 평가가 무의미할 만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경제는 아직도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야말로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에 급급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심지어 북한 사람들 스스로도 인정한다. 1990년과 2004년을 비교했을 때 북한의 농업 비중은 27.4%에서 26.7%로, 중화학공업 비중은 25.6%에서 11.8%로 변했다고 한다. 이 수치 또한 별 의미가 없을 뿐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역설이긴 하지만, 쿠바의 경우가 웅변하고 있듯이 북한이 에너지 과투입의 범죄사회인 선진공업 사회가 아니라 에너지 자립과 식량 자급을 기초로 자립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립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북한 또한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 이후 쿠바와 마찬가지로 석유에너지 투입 중단으로 농업생산력이 급속히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은 기존의 석유농업에 집착해 현재와 같은 재앙의 기아 상태를 자초하고 말았다. 기존 주체농업의 계단식 논 확장과 난방용 벌채로 산이 벌거숭이가 되면서 해마다 홍수사태가 반복되고 이는 또다시 더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하게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북한이 한때 남한보다 잘사는 나라였으며 사회주의의 기지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인식되기도 했다는 것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는 최악의 굶주림과 아사자, 대량 탈북사태란 현실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체제붕괴의 위협 앞에서 북한 정권은 더더욱 군대를 앞세워 국가 유지를 꾀하고 급기야는 핵실험의 모험까지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 이하이며 쌀을 제외하면 5%도 되지 않는다. 석유가 공급되지 않으면 한국 또한 북한이나 쿠바와 같은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피크오일은 최소한 우리에게 식량위기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예언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북한의 현실이 머나먼 남의 얘기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우리의 미래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4. 자립경제, 민족경제가 대안이다

- 자립경제 체제로의 새로운 패러다임 확립을 위하여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자립경제의 힘은 공룡과도 같은 미국의 어떠한 제재와 압력에도 끄떡없는 쿠바의 현재에서 너무나 극명하게 부각된다. 우리는 흔히 자유무역 경제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전략이 그저 신자유주의 분쇄라는 구호밖에 없다면, 그것은 조총을 가진 일제 군대에 맞서 궁궁을을 부적을 외우는 짓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경제학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세계화는 피할 수 없으며 한미 FTA도 언젠가는 체결해야 하지만 그 속도와 내용이 문제라고 궁색한 반대의 논리를 편다. 실제로 과연 그럴까.

이미 지적했지만 자본주의 산업문명은 그 존립 기반인 석유와 천연자원의 고갈로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 세계화 또한 명백히 지속불가능하다. 다만 시간이 문제이다. 때문에 산업문명의 붕괴가 목전에 다다른 지금 유일한 대안은 지속가능한 햇빛농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자립, 식량 자립을 이룩하는 자립경제 체제로의 전환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자립경제, 민족경제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힘 있는 대안이다. 단순히 한미 FTA에 반대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자립경제로의 확고한 전환이라는 시각과 함께 실제 이를 실천하는 프로그램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때이다. 한국의 산업과 수출경제를 천천히 착실한 전환 프로그램과 기획에 따라 자급자족 농업을 중심으로 한 자립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것만이 산업문명 붕괴에 대비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사실 자립경제, 민족경제는 196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경제개발계획을 수립, 실행할 때 내세운 주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바 세계화 시대가 왔다는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자립경제란 말 자체도 사라지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념으로 폐기되고 말았다. 식량과 에너지의 자립 기반이 없는 민족경제가 얼마나 사상누각의 허구인지는 쿠바와 북한의 예를 다시 들지 않아도 상식에 속하는 문제임에도 그렇다. 우리의 선조들은 불평등한 토지소유와 농업생산의 변화, 인구의 변화,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때때로 굶주림과 전쟁과 사회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속가능한 농업을 기반으로 자립경제 체제를 수천 년 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근대화, 서구화라는 전도된 석유중독의 가치관 아래 근대 이전 한국의 농업사회를 은연중 정체된 사회, 심지어는 수치스러운 기아와 궁핍의 역사로 폄하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극단이 이른바 어처구니없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로서, 이들은 근대가 만들어낸 누런 피부, 흰 가면의 뒤틀린 식민의식을 지닌 노예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도 지속가능 사회, 자립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자립농업으로의 전환과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유기농을 확대하고 재생가능에너지의 보급 확대를 뜻하는 게 아니라 사회체제 자체의 전환을 뜻한다. 석유가 20세기 초에 16억이던 인구를 65억으로 늘려 놓았다면, 석유가 없는 지구는 더 이상 이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다. 저출산이 재앙이라고 호들갑떠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빙하가 눈앞에 닥치는 줄도 모르는 채 파티에 여념이 없는, 눈먼 석유중독자들이다. 남한의 4700만, 남북한 합쳐 7천만 인구는 석유로 인한 과잉인구이며, 오히려 이것이 재앙일 수 있다.

사회체제의 전환은 자립농업의 확립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북한에게도 남한에게도 다른 길은 없다. 그것도 석유에너지를 투입하는 죽음의 농업이 아니라 현재의 햇빛에너지를 사용하는 생명농업으로의 전환, 지역자치와 지역자립 공동체를 재생하는 소농경제의 확립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와 함께 에너지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해, 바람, 물, 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하는 에너지민주주의 체제, 즉 분산형 에너지체제로의 전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실천해야 한다. 현재 해, 바람, 물, 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다만 석유중독이 문제일 뿐이다. 당장 자동차 중독과 이에 따른 도로 문제, 운송, 관광산업 등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세계화에 반대한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세계화의 물결을 거슬러 배를 멈추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19세기 말 조선인들이 숨어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시베리아나 만주의 울창한 숲도 사라지고 없다. 아마존을 비롯해 지구상에 이제 그런 곳은 남아 있지 않고, 자본주의 세계화의 갈퀴 손가락은 도처에서 중독성 페르몬을 뿜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우리에게는 산업문명과 석유문명의 중독증을 하루라도 빨리 치료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자본주의 세계화를, 그 중에서도 자원착취 가속화의 최악의 범죄행위인 나쁜 세계화를 극복해야 생존이 가능하며, 언젠가 반드시 부닥치게 될 세계화의 추락을 준비하는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당장 폐쇄경제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지금 당장 원자력 발전소와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중지시키고 자동차도 폐차해버리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석유중독과 폐쇄공포증에 걸려 있는 관료와 전문가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다가오는 자원고갈에 대비하는 새로운 사회전환 기획의 준비에, 풀뿌리 인민들이 밑에서부터 이런 생태순환형 자립사회로의 전환운동에 나서야만 한다는 말이다.

자립경제의 확립은 민주주의의 완성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지역자치와 자립체제에서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오늘날의 대통령이란 제왕과 다름없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할 때 하루평균 4억3천만 원을 썼다. 부시를 24시간 보호하는 경호원은 자그마치 5천 명이 넘는다. 2003년 말 부시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는 영국경찰 5천 명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방탄차량 수십 대와 기타 장비를 운반하는 데에만 보잉 항공기들이 수십 번 왔다갔다해야 했다. 미국도 처음에는 이렇게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인구가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점차 시장의 확대와 함께 국가권력의 중앙집중화를 통한 지배를 관철하면서, 정치인 매수와 협잡을 통해 자본권력이 비대해지기 시작하면서 대의제 (선거)민주주의는 왜곡되기 시작했고, 민주주의가 풀뿌리 민주주의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다.

서구민주주의의 시원으로 이야기되는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선거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단언했을 때 그들은 이처럼 인민의 주체적 참여가 없는 권력의 위임이 무엇으로 귀결되는지를 우려했던 것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선거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게 풀뿌리 민주주의가 활성화되고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지역자립과 자치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이런 풀뿌리 차원에서 인민들과 지역사회를 재조직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진보이념이었는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1980년대까지 사회주의는 진보이념이었다. 민주화운동세력의 상당수가 사회주의를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진보이념으로 받아들였고, 근대화의 완성이 주요한 목표였다. 1990년대의 시민운동까지도 사회발전과 진보, 번영과 강대국 지향이 기본이념이었다. 이런 근대이념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고, 명백한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평등과 착취의 근절, 사회정의의 이념까지 틀린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또한 사실은 자본주의와 똑같은 발전과 성장의 이데올로기로서 낡은 자연착취 이념, 지속불가능한 보수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발전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는 우연성이 결정하고 그리하여 역사에서는 사람이라는 주체의 선택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결정요소이다. 역사에서 진보란 없으며 단지 사회는 변화할 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산업화 전략 선택은 우리 사회를 지속불가능한 사회로 귀결시켜 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통일운동은 이처럼 낡은 진영론, 즉 보수/진보의 낡은 이분법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사실 지금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에 대한 보수/진보의 구분이 매우 어렵게 혼재되어 있거나 의제별로 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황우석 사태와 생명공학 문제에 대한 견해에서 알 수 있듯 보수/진보의 잣대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과 새로운 자립경제 체제로의 전환은 이처럼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현재가 미래를 까먹고 있는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필요로 한다.


5. 통일운동의 시각 전환을 위하여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

오늘날 한국은 국내총생산 7875억 달러(2005년)로 세계 12위에 올라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6291달러로 세계 29위에 이른다. 우리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아도 과연 한국사회는 풍요가 넘치는 대량소비의 선진 산업사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북한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조금만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성장과 발전을 구가하는 남한사회 풍요의 실상 또한 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 노동자들, 300만에 육박하는 차상위 빈곤층, 아직도 움막이나 동굴 속에서 살고 있는 극빈층, 아파트에서 자식과 함께 뛰어내리는 빈곤자살자 등. 우리 사회의 극단에 가까운 양극화는 과연 한국사회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인지 의심케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경제성장을 하고 개발을 하고 수출을 하고 GNP를 늘리려 그렇게 피와 땀을 흘렸는가.

다른 그 무엇에 앞서 이제 우리는 경제성장률과 GNP를 따지는 쓰레기 근대경제학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사실 이미 경제학은 숫자더미라는 암세포에 파묻혀 경세제민을 잊은 채 죽어버린지 오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고 석유전쟁으로 죽어도 경제학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마존 밀림이 사라지고 빙하가 녹아도 경제학은 전혀 쳐다보지도 않는다. 때문에 그런 경제학은 쓰레기통에 넣어 불태워버리는 게 차라리 낳다.

한쪽에서는 석유를 너무 많이 먹어 비만 때문에 살빼기 산업이 기승을 부리는 반면, 한쪽에서는 석유가 너무 없어 굶주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남북의 현실은 바꾸어야 한다. 오늘의 현실은 한국 사회운동의 전환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의 전환도 요구한다.

한국 사회는 이제 두 계급만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산업화 초기에 인간 이하의 비참한 노동자의 삶을 뒤바꾸기 위해 나타난 사회주의 혁명론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라는 계급구분은 한국사회에서 이미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사회는 프리케어리어트(Precariat, 불안정 계급)와 비프리케어리어트(경영자, 자본가들조차 불안한 세상이므로 안정계급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로 구분될 만큼 삶의 안정이 파괴되어 버리고 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변화된 상황 속에서 한국의 사회운동과 통일운동은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대다수 인민들, 불안정계급의 삶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불안한 노동, 불안한 건강, 불안한 도시공기, 불안한 식품, 불안한 주거환경, 불안한 교육, 불안한 교통, 불안한 물가, 불안한 남북관계, 불안한 유가 등 온통 불안하기만 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회운동과 통일운동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통일운동의 근본이념은 성장과 번영, 민족주의로 통일된 강대국의 상을 기본으로 하긴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운동은 대중동원을 통해 극단의 레드컴플렉스와 반공이념 아래 군사독재정권의 통일론 독점을 깨면서 남북한 사이에 교류협력이 시작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시민운동 진영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이는 통일운동과 사회운동의 외연을 심화, 확장시켰다. 특히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간 민간교류와 협력의 확대는 전쟁위협을 일반 인민들의 의식에서부터 허무는 한반도 통일의 초석이었음이 서해교전 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 핵실험 사태에서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남북 정부의 통일론이나 통일방안, 통일정책은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정착을 가로막아 왔다. 그런 측면에서 민간교류의 활성화는 운동으로서의 통일,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보여주고 실천한, 통일운동의 값진 성과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통일운동은 일부의 반미투쟁 집중론과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이 서로 교차하면서 정부의 교류협력 확대, 보수층의 흡수통일론, 북한 민주화론과 북한 타도론 등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북한정권의 경직성까지 더해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주의 시각이건 민족해방 시각이건 민중해방 시각이건 통일운동의 실천과 내용을 살펴볼 때 상호교류 이외에는 그다지 뚜렷한 진전이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북한 핵실험을 놓고 자위권 운운하는 이른바 통일운동 내 이른바 자주파의 주장은 민간 통일운동의 퇴행과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과 옹호, 찬성하는 것은 다르다. 이른바 자주파는 북한과 함께 미국 및 친미 극우세력과 적대하면서 공생하는 관계를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모든 악은 미국이라는 반미환원주의는 극단이며, 이는 북한이 악의 축이라는 미국 및 남한 극우세력의 반북환원주의와 마찬가지로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이는 전혀 평화를 소망하는 일반 인민들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니 맹목의 숭미세력과 반미세력은 둘 다 실제로는 통일운동을 방해하는 세력들이다.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냉전체제가 탈냉전체제로 전환되면서 한반도 통일운동은 평화운동과 결합하게 되었다. 1994년 미국의 북폭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시민사회에서 반전평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북한의 식량위기가 알려지면서 북한 돕기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평화운동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한반도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은 사실 민주화운동과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의 운동이었다. 국제관계의 민주화까지 포함하는 평화운동은 한국에서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시민사회운동, 지역자립과 자치의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운동 등 모든 차원의 운동에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 간의 국제관계에서 힘의 정치는 평화의 정치를 늘 누르고 있다. 평화의 정치는 사실 이상론으로 폄하되기까지 한다. 평화에 대해 어떤 이들은 무리생활을 선택한 인간 본성의 공격성까지 언급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실현불가능한 인간관계의 이상으로 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의 부재 또는 세력균형과 평화를 동일시하는 사고는 서구의 근대를 기획하고 실천한 주류 지배자들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서구 자본주의 근대화, 산업화는 그 본질상 침략을 전제로 한다. 현실주의와 평화란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인디언 학살, 태즈매니아 원주민 학살을 비롯한 무수한 제노사이드와 원주민 추방의 역사는 서구 백인의 문명이 얼마나 폭력과 살인에 물든 시뻘건 가짜 평화인지를 입증한다. 비민주주의 국가에 민주주의를 심어주기 위한 폭력과 침략은 정당하다는 민주평화론도 그 변종이다. 미국의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그 명분은 이 민주평화론이었고,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주석궁을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 근거는 이 민주평화론이었다. 전쟁이 곧 평화인 셈이다. 북한 또한 착취계급의 평화와 평화의 교란자들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얻는 진정한 평화, 곧 정의의 전쟁을 구분한다. 정의의 전쟁과 민주평화론에 입각한 이라크 침략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억압받는 사람들의 폭력은 정당하다는 명제 또한 참으로 힘든 고뇌와 깊은 근원의 의문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지만 도착된 명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폭력과 이스라엘의 폭력은, 그리고 미국의 핵과 북한의 핵은 결국 동일하다. 모든 폭력과 전쟁은 정의라는 말로 미화하든 평화라는 말로 미화하든 폭력이고 전쟁일 뿐이다.

베트남식 무력통일은 우리가 택할 통일방식이 결코 아니다. 독일식의 급격하고도 한쪽이 한쪽을 흡수통일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방식도 아닐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무조건의 평화통일만이 우리가 택해야 할 통일방식이며, 이는 또한 실현가능하다. 한국의 통일운동은 그 본질상 평화운동이며 자립경제 체제로의 전환운동,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지역자립과 자치운동은 그 본질상 평화운동일 수밖에 없다. 남북의 대치상태와 적대관계는 사실 그동안 동북아시아의 불안요인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평화의 장애요인이기도 했다. 남북의 통일을 통한 강한 민족주의 국가의 탄생은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질서의 불안요인을 더욱 커지게 할 우려가 크다. 민족주의 일변도의 통일 주장이 자칫 평화와 민주주의에 저해가 된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때문에 오히려 자립경제와 지역자치의 민족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통일운동은 동북아 평화질서의 초석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평화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한 수사이긴 하나 위험한 주장이자 공허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선평화론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평화와 통일은 선후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한국의 통일운동은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 모두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사회가 결코 될 수 없으며, 우리는 동시에 남북한의 체제를 극복하고 전환하는 통일운동, 사회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의 체제를 자립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로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의 전환과 농업의 전환을 중심으로 놓고 보는 발상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식량 자급과 에너지 자립을 통한 지역 자치와 자립이야말로 자립경제의 핵심이다. 가족농을 중심으로 한 생태농업은 식량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법일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도시의 수많은 불안정계급을 흡수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간산업이기도 하다. 북한에 대한 지원 또한 이런 시각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사랑의 무연탄 보내기 운동 등 북한에 석탄을 지원하는 것은 마약중독자가 당장 죽어가고 있다고 인도적으로 마약을 주사하는 짓과 마찬가지이다. 비료를 지원하고 경수로를 건설해준다거나 원자력과 화석연료 중심의 남한 전기 몇 백만 kW를 지원한다는 것도 같은 차원의 지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의 증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이 자립과 자치의 시각에서 재검토될 때 통일운동의 내용이 보다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다. 교류는 서로의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물길을 바꾸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은 햇빛발전과 바람발전, 소수력과 바이오가스 시설 지원으로 전환해야 하며, 식량지원은 비료가 아니라 나무 심기와 유기농 지원이 되어야 한다. 일부에서 이미 이런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통일운동은 더욱 이를 핵심사업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재생에너지 지원은 재생에너지 산업의 기반이 구축되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농민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은 새로운 브나로드 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식량자급 체제로의 전환, 에너지 자립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상의 진정한 통일운동이다. 북한의 노동자, 농민과 교류하고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과 북 각각의 지역자치와 지역자립의 토대가 없는 교류와 지원은 정세변화에 따라 언제든 중단될 소지가 많은 임시방편의 교류와 지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분단체제론이 강조하는 것도 이런 측면일 것이다.

이제 통일운동은 국가에서 사회로의 시각전환이 필요하다. 자립경제 체제는 국가의 시각보다 사회의 시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기획은 튼튼한 지역사회의 토대가 있을 때 힘 있게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정부주의를 신념으로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전환의 기획이 없다면 그것은 대안 없는 신념에 불과할 뿐이다. 자립경제와 민족경제는 이런 지역자치를 토대로 비로소 국가에 대한 기획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국가가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해온 억압과 착취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허구이자 이데올로기인 국익을 밑에서부터 허무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자립경제로의 전환은 기존의 산업세력과 정치인들이 실천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른바 전문가들, 과학자들, 정치인과 관료 등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석유중독자들이다. 마약공급자들과 마약중독자들에게 마약 없는 사회를 만드는 사업의 책임을 맡길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감옥과 치료가 필요할 뿐이다.

요컨대 우리는 자유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함께 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한반도에 만들어야 한다. 남북을 함께 아울러 의식주를 고루 나누는 지속가능한 자립경제 체제로 전환시키는 일은 우리의 풍요, 우리의 도둑질에 대한 속죄이자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그나마 생존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생명보험일 수 있다. 통일운동과 사회운동은 이같은 자립과 자치, 평화와 전환의 촛불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나둘 켜야 한다.


[황해문화 2006년 겨울호]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분류 제목 파일 날짜 조회
857 칼럼

  한국작가회의 출범선언문

2007.12.12. 2378
856 칼럼

  김형수-예술委의 위기와 예술의 위기

2007.07.20. 2655
855 칼럼

  송경동-꿈꾸는 자 잡혀간다. 이 땅에서는

2007.05.31. 2333
854 칼럼

  백낙청-‘경제주권’ 챙긴 뒤 당당히 만나라

2007.03.30. 1879
853 칼럼

  고명철-‘사회적 공공성’을 지닌 기초예술정책이 절실하다

2007.03.22. 1976
852 칼럼

  박석무-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이 나오랴

2007.03.06. 2154
851 칼럼

  염무웅-하나의 문학사를 향하여

2007.01.17. 2288
칼럼

  박승옥-통일운동의 시각 전환을 위하여

2006.12.08. 2182
849 칼럼

  백낙청-북한은 마치 없는 듯 남한만의 선진화 추구는 불가능

2006.10.26. 2031
848 칼럼

  황석영-남북민중, 더이상 강대국 인질 될 수 없다

2006.10.20. 2023
847 칼럼

  이명원-괘종시계 태엽을 감으며

2006.10.11. 2628
846 칼럼

  류외향-야만은 자본과 함께 온다

2006.09.01. 2205
845 칼럼

  도정일-"행복=소유÷욕망"인가

2006.08.07. 2222
844 칼럼

  우찬제-상상하는 작가의 눈 여전히 신뢰한다

2006.06.26. 2565
843 칼럼

  홍기돈-노신(魯迅)과 요즘 한국정치

2006.05.13. 3001



1 /2 / 3 /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10개]

 

(07245)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44길 9, 2층 한국작가회의 _ 전화 02)313-1486-7, 02)313-1449 / 팩스 02)392-1838
이메일 hanjak1118@hanmail.net(사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