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여야 합의 과거사법안은 밀실타협 산물"
대학교수·작가·변호사 등 714명, 올바른 과거청산법 제정 촉구 선언

▲ 김세균 민교협 상임의장 등이 15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올바른 과거청산법 2월 제정을 촉구하는 한국사회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할 예정인 '과거사청산법'이 정치권의 밀실타협에 의한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진보진영의 각계 지식인들이 올바른 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학교수·작가·변호사 등 각계 지식인 714명은 1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올바른 과거청산법 2월 제정을 촉구하는 한국사회 지식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에 이르는 동안 많은 국민이 겪었던 비극과 고통을 외면해왔다"며 "우리 지식인들 역시 유족과 관련단체가 진상규명에 나서는 동안 방관자로 머물러 있었던 점에 대해 깊이 자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국민 대다수는 과거청산법의 통과를 지지하고 있지만 지난해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법안의 논의조차 거부했다"며 "지난해 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안'은 명칭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정치권의 밀실 타협에 의한 생색내기 통과는 안된다"고 양당의 법안처리에 반대했다.

이들은 특히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세력에 의한 테러 등'도 조사하자는 정치권 일각의 요구 역시 과거청산의 근본취지를 훼손하여 과거청산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지식인 선언 기자회견에는 이이화 과거청산범국민위 공동위원장,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 김세균 민교협 상임의장, 이인휘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오종록 한국역사연구회장, 장완익 민변 과거청산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지식인 선언에는 이해동 덕성학원 이사장과 임옥상 화가를 비롯해 강경선 방송대 교수 등 대학교수 302명,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등 연구자 41명, 소설가 공선옥 등 작가 290명, 강기탁 변호사 등 법조계 74명 등이 동참했다.

이창수 과거사청산 범국민위 정책실장은 "유족들이 지난달 24일부터 여의도에 천막농성을 시작했으나 경찰이 막아 구 한나라당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며 국민의 관심을 호소한 뒤 "16일 국가인권위에서 올바른 과거청산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각계를 대표해 참석한 인사들의 발언 요약이다.

이이화 과거청산범국민 공동위원장 "과거사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될 예정인데 이 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 여야는 잘못된 과거사를 진상규명하고 청산하려하기보다 미봉적으로 처리하려는 것 같다. 인권과 민주화를 존중하는 지식인들이 올바른 과거사청산법 제정을 천명하고 나선 것은 정치권의 잘못된 타협을 중지시키기 위해서이다."

주종환 동국대명예교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기보다 국민의 눈을 가리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한나라당을 수구반동세력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이 개혁정당인가 의문을 품고 있다.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정당과 타협하며 국정을 운영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미래를 여는 정치를 할 때다. 과거사법은 국민의 요구에 맞게 제정되어야 한다."

김세균 서울대교수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학생회에서 군부독재에 협조한 교수 50인 명단을 공개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명단에 오른 교수 몇 명을 만났는데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측은해 '명단 발표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두환 군부정권이 안정된 81년, 명단에 오른 교수들이 자기 세상이 온 것처럼 기고만장 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명단공개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대에서는 군부독재에 협조한 교수들의 명단발표가 있었는데 그후, 교수사회 분위기는 혁신되었고 반복되는 일은 없었다."

이인휘 자유실천위원장 "정신적 뿌리가 황폐해지고 어디에도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담하게 된 것은 이승만, 박정희 등의 잘못된 권력 때문이었다. 이들 정권의 탄압에 의해 의문의 죽음이 이어졌고 못된 것들이 사회를 점령했다. 과거사를 적당히 털지 말고 제대로 풀어서 우리 민족정기와 정신이 뿌리 내리는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

오종록 한국역사연구회장 "과거사청산을 앞두고 자기 정파에 불이익이 닥칠 것을 생각해 과거청산을 막아내고 쉬운 길로 가려는 지식인들이 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가 밝혀낼 것이다. 정치인과 언론인 등은 엄정하게 과거청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장완익 민변 과거청산위원장 "국정원, 경찰, 국방부 등이 자체적으로 과거사 진상조사를 하면서 진상규명 대폭 축소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 등은 자체 진상조사를 끝난 뒤 진실규명위원회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인 근거도 책임소재도 없이 내부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루 빨리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조사를 해야 법적 근거와 책임이 가능하다. 진실규명위원회의 발족을 늦추려는 움직임에 대해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김동춘 성공회대교수 "일제치하 강제동원 법안이 통과돼 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법의 문제가 많다. 의문사위원회의 경험을 볼 때 과거청산법이 졸속으로 통과되어선 안된다. 과거청산법에 대한 국민지지가 60% 이상 높게 나왔다. 열린우리당이 법안 처리를 국민에게 약속했고 대통령도 공언했다. 법안을 미루면 부담이 될 것이다."

2005/02/15 오후 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