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아이/장 수남


그 해 늦은 가을 초저녁이다.
시끌시끌한 비좁은 달동네 꼬마 녀석들은 둘 셋 짝을 지어 병정놀이에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한 참 신 바람나게 설친다.
얘 야 밥 먹어라. 해가지면 어미는 자식을 찾고 자식은 어미 품에 잠든다.

형님 우리 바람 한번 쐬러 나갑시다.
기분도 그렇고 한번 나가봅시다. 동네 슈퍼 평상마루에 걸터앉아 소주 몇 잔 마시던
형과 아우는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내일아침 열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시외로
나가기로 약속하고 해질 무렵 헤어졌다.

이튿날 아침 우린 큰 등산 가방에 제각기 가벼운 옷차림으로 낚싯대 울러 메고 집을
나섰다. 이곳 부산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서부경남 쪽으로 마냥 달려 마지막 도착한
곳이 경남 하동 역이였다.
앗 참 내가 잠시 잊었구나. 소개 할 분이 있다.
나와함께 가는 그분은 이웃에 사는 내겐 제일 가까운 맏 형님뻘 되는 오랜 친구로서
군 생활도 함께하고 지금은 조그만 개인사업 하나 경영 하다 부도를 맞고 집에서
허성세월 보내는 무일푼 백수건달 이다.

우리가 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해질 무렵이었다.
우린 이곳이 초행이다. 마침 섬진강을 안고 지나간다는 버스 한 대를 찾아냈다.
무작정 올라탔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영문도 모르는 강물은 어둠속을 유유히 흐르고
흘러 얼마쯤 지났을까 차는 강변에 멈춰 섰다.
강변에 자리 잡은 초라한 마을 섬진강 벗 삼아 조개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평화롭고 조용한 작은 어촌마을이다.
할머니 한 분이 내리신다. 우리도 뒤따라 내렸다.
나는 무엇을 묻고 싶었다. 할머니는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마을 안쪽으로 사라지신다.

누구의 이야긴즉 이곳은 경상도 강을 건너면 전라도라 한다.
우선 지형을 파악해 놓고 강둑에 텐트를 쳤다. 그때가 바로 시기적으로 보면 음력
시월 보름쯤이었을까 만삭이 다된 보름달이 발갛게 떠오른다.
 
달빛 흐르는 숲
은빛 물결 넘칠 때
강가에 내려앉아
꽃바람 찾아오면 짝을 짓는다.
 .
흰빛 비늘 속삭임은
황홀한 입맞춤
아름다운 옛 이야기
달빛 그림자 꽃 피우면
수즙은 섬진강 발갛게 태운다.

밤잠을 설치고 새벽 강줄기 따라가 보았다.
잉어가 뛰어논다.
햇살 젖은 나룻배한척이 강가에 넘실넘실 우릴 기다리고 춤을 춘다.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아름다운 세상 끝나는 세상은 아니겠지.
강 건너 모래알들이 건너오라 마중 나올까 반짝 손 짓 한다.
내가 너에게 찾아왔노라 큰 소리로 외쳐 보았다.

이젠 강을 건너야 한다.
님 은 간곳이 없고 긴 밧줄만 강둑에 매달려 경상도 전라도 가로질러 강물에 반쯤
걸쳐놓고 사공은 돌아올 줄 모른다.
어디 갔을까.
우린 나룻배에 몸을 싣고 두 손으로 힘차게 밧줄을 잡아당겼다.
눈부신 아침햇살 물줄기 가슴으로 휘어 갚는다.

강 건너 전라도 땅 강둑에 두 번째 텐트를 쳤다.
낚싯대 허공을 그리고 긴 줄 물줄기 가르며 수심 깊숙이 가라않는다.
어찌된 일인가.
새벽에 뛰어놀던 고기는 잉어가 아니고 어미숭어 떼가 살란 기에 알을 낳기 위해 강물
찾아 올라왔단다.
고기는 좀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따가운 햇살만이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놓고 강변에
해는 저문다.

힘차게 떠오르는 두 번째 아침햇살
아침 식사 메뉴는 김치라면 그래도 맛은 꿀맛이다.
라면국물에 소주 한잔 걸쳤다.
형 우리 한수 멋지게 합시다.
그래야지 어젯밤 꿈도 좋았는데 월척 한번 해야지.
시간은 많이 흘렀다.
‘긴급 속보 물고기 해외 출장 중
꿈은 사라지고 갈 길은 멀다 호출 섬진강 아이‘

넌 누구니?
아침부터 어느 낯선 아이가 우리 곁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너 아라 와봐라.
아이는 냉큼 온다.
너 어디사니?

아이는 서글서글하니 말을 잘 한다. 얼핏 봐서는 중학교삼학년 정도는 되는 아이 같다.
작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 하고 단 두식구서 밭농사 조금 짖고 이웃
마을에 사는 아이라 한다.
그럼 너 여기 왜왔니? 할머니 하고 일하기 싫어 나왔단다.
이런 놈 봤나 큰일이구나.
아버지는 안계시고 어머니는 부산으로 돈 벌러 가셨단다.

시간은 흘러 오후 세시가 넘었다. 아이는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어느새 우리는 조금 가까워졌다. 나무도 해오고 쌀도 씻고 밥도 하고 잔 심부름도 잘
한다. 밤이 찾아와도 아이는 집으로갈 생각을 안 한다.
할머니 손자 놈 얼마나 기다리고 계실까.
그 놈만 믿고 사는데 그럼 누굴 또 믿고 기다릴까.
속마음은 아이가 가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아이는 말을 꺼낸다.
아이는 집에 간단다.
그래 잘 가라 그럼 그래야지.
할머니 모시고 착하게 잘 살아라.
아니다 그게 아니다. 아이는 잠시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아저씨 저 우리 집에 단감나무가 있는데 집에 가서 단감 따올게요.
이런 놈 봤나.
한참 후에야 아이는 돌아왔다. 잠바아래 동여 메고 바지 빈주머니 단감 잔뜩 채워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이일을 어찌할꼬.
단감은 크고 달고 맛있었다. 침침한 달빛 벗 삼아 셋이서 돌아앉아 먹는 재미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밤 깊은 하늘 비좁은 텐트 안에는 내일을 약속하고 셋은 깊은 잠에 빠졌다.

강바람은 새벽을 흔들고 우릴 깨웠다.
상쾌한 아침이다. 어제 잡힌 녀석들 매운탕 요리 맛은 천하일품이다.
소주 한잔 곁들이니 세상은 모두 우리 세상이다.
서서히 낚싯대를 다시 던졌다. 아니 벌써 미끼가 다 떨어졌구나. 어찌할꼬. 여기서
하동읍내 까지는 걸어서 세 시간 정도는 걸린다 한다.
그러니까 사오십리 길은 충분히 되는 것 같다. 이곳 버스도 하루에 두 번인가 세 번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한 차시간도 모르고 시간 맞춰 나갈 수 도 없다.
떡밥을 만들기로 했다. 라면을 끓여 반죽을 하고 물속에 던져 보았다.
고기는커녕 물은 물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논다.

이때
아저씨 제가 읍내 다녀올까요?
아이는 내 얼굴만 살핀다. 반가운 소리다.
아니다 안 된다.
그 먼 곳을 네가 어떻게 혼자 가니.
안 되지.
아저씨 괜찮아요. 제가 다녀올게요.
한참 망설이다 그럼 다녀올래.

나는 미끼(떡값) 천원 왕복차비 이천 원 모두 삼천 원을 주고 읍내로 보냈다.
그때가 열시쯤 지났을까. 오후 세시가 넘고 네 시가 다되어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차를 타고 오면 도착하고 남을 시간이다.
미끼보다도 아이 걱정이 먼저 앞선다. 무사히 돌아와야만 한다.
햇살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짙은 밤안개가 자리 잡고 아이를 기다린다.

아이는 돌아왔다. 반가움보다도 애태운 심정이 나를 노엽게 한다.
아직 어리다보니. 오면서 장난도 치고. 소등도 한번 만져보고. 연못에 돌도 던져보고.
발로 바윗돌도 한번 차 봤겠지. 나도 그 나이쯤 어릴 때 생각난다.
할아버지께서 심부름을 시키셨다.
읍내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조그만 시골 양조장이다.
할아버지는 약주를 즐겨 드신다. 소주 한 병 사러 집을 나섰다.
아침에 간 놈이 해질 무렵에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댓 병 소주 한 병이 반쯤
비워져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사건은 마무리가 안 된다. 할아버지께 많은 꾸중을 들었다. 물론 아버지도 용서를
안 하신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 내가 마신 술이 아닌데. 술병 옆에 차고 논에 메뚜기
잡으러 들어간 기억은 잊지 못한다. 나도 그놈만큼 웃긴다.

그날 저녁 우린 밤낚시를 즐겼다.
고기는 적지만 바라는 만큼 잡혔다.
내일이면 철수한다. 이젠 모두 끝내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아이가 눈치 챘다. 가엽다 깊은 밤 아이는 말이 없다. 잠을 이루지 않는다.
새벽에 잠깐 눈 부치고.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강둑에 올랐다.
아이도 따라 오른다. 내 옆에 안는다.

아저씨 저 부산 되려가 주세요.
아저씨 따라 갈 겁니다.
누가 내 뒤통수를 내리치는 것 같다.
어찌할꼬.
나 부산가 서 우리엄마 찾을 겁니다.
인마 큰일 난다.너 부산가면 인신 매매단 한데 잡혀간다.

엄마 찾아 간다는데 어떻게 말릴까. 속으로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내가
인신매매단도 아니고. 도저히 말을 못하겠다. 내가 싫다하면 아이는 얼마나 실망하고
마음 아파할까. 엄마 찾아간다는데.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야 너 떠나면 할머니는 누구하고 사니?
너 떠나면 할머니 외롭고 불쌍하지 않니?
아이 눈에선 눈물이 글썽거린다. 나도 가슴이 무너진다. 아이는 또 말이 없다.
아침햇살 뜨겁게 피어오른다. 바쁜 시간 재촉하듯. 우린 짐을 빨리 꾸렸다. 강가에
나룻배에 몸을 싫었다. 늘어진 밧줄이 탱탱해진다. 강 건너 아이야 우리 언제 만나지?


제목 // 섬진강 아이

섬진강 나룻 터 긴 밧줄 잡고
흘러간 아이는
추억의 연인되어
손 흔들고 들려주는
이별의 눈물은 강줄기 메아리
친다.

아이야 큰소리로 외쳐봐라
가슴으로 파고드는
섬진강 아이 맑은 영혼
별 빛 흐르는 밤에 너에 이름
아름답게 들려 줄 꺼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