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문화예술결산>-④문학

[연합뉴스 2004-12-13 05:09]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올해 문학계는 장기침체 국면에 빠져든 `문학 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서사문학의 시대가 갔다"는 선고를 받은 지 이미 오래된 소설계의 몸부림이 더 욱 처절했다. 올해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산문학상을 휩쓴 젊은 작가 김영하 는 사선을 뚫고 나아가려는 우리 소설문학의 전위대였다. 그는 장편 `검은 꽃'을 비롯 해 `오빠가 돌아왔다' `보물선' 등 재치있고 경쾌한 단편으로 몸을 가뿐하게 한 뒤 무겁고 칙칙한 문단 분위기를 뛰어넘고자 했다.

50대 중반에 들어 뒤늦게 작가의 대열에 뛰어든 김훈도 죽어가는 서사문학의 불 씨를 되살리는 전위대 역할을 했다. 3년 전에 발표한 장편 `칼의 노래'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김훈이 올해 초 발표한 또다른 장편 `현의 노래'는 가야금 명인 우륵의 삶을 통 해 작가 자신의 심미적 예술관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칼의 노래'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작가 특유의 사변적 문체는 예술가 소설의 색다른 경지를 열어보였다. 그는 단편 `화장'으로 올해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함으로써 침체된 문단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삼십대 초반의 김경욱이 단편소설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제37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고, 시부문에서도 젊은 시인 박정대가 소월시문학상, 문태준이 동서문학상과 노작문학상, 김기택이 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런 현상은 `젊은 피'를 수혈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문단의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소설가 장정일이 젊은 감각에 맞는 `삼국지'를 발표해 이문열과 황석영으로 양 분된 `삼국지'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역시 젊은 작가 김탁환은 임진왜란을 새 롭게 해석한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개작해 내놓아 문단 전체에 새로운 기운을 돌게 했다.

창비가 주관하는 제19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북한작가 홍석중의 장편 `황진 이'가 선정된 것은 남북문학교류의 활성화에 따른 상징적 `사건'으로 꼽을 만하다. 홍석중은 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자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인 북한의 현역 작가이다.

창비는 북측 작가동맹의 제의에 따라 13일 금강산에서 상금 1천만원 등을 수상 자에게 직접 전달함으로써 남북문학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북한소설 `황진이' 는 남한 독자들의 감각에 맞게 편집돼 두 권짜리 책으로 출간돼 있다.

중진작가 김용성이 장편 `기억의 가면'으로 김동리문학상과 요산문학상을 잇따 라 수상해 건재를 과시했고, 윤흥길은 소설집 `소라단 가는 길'로 대산문학상을 받 아 정통 문학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문학의 위기'가 운위된다고 하나 중진작가들의 무게있는 작품은 지속적으로 생 산됐다. 김원일은 연초에 소설집으로는 12년 만에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을 냈다. 서정인은 연작소설 `모구실', 이청준은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 한승원은 소설 집 `잠수거미', 박완서는 장편 `그 남자네 집'을 발표하며 작가의 소명을 지켜나갔 다.

중견작가들의 창작실험도 계속됐다. 정찬은 서구의 신화와 종교의 세계를 파고 든 파고든 문제작 `빌라도의 예수'를 발표했고, 강석경은 5년 만에 장편 `미불'을 냈다. 대하소설 `봄날'의 작가 임철우는 일제시대 이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현대사의 아픔을 환상적 기법으로 녹여낸 장편 `백년여관'을 6년의 공백 끝에 내놓았다.

1980년대 운동권 작가 정도상은 연작소설 `실상사'를 냈고, 박상우는 소설집 ` 사랑보다 낯선', 원재길은 소설집 `달밤에 몰래 만나다', 이순원은 장편 `스물셋 그 리고 마흔여섯', 김형경은 전작장편 `성에', 윤대녕은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 김 하인은 장편 `유리 눈물', 이명행은 장편 `사이보그 나이트클럽' 등 개성있는 작품 을 내놓아 우리 소설문학을 풍성하게 했다.

공지영은 베를린 체류경험 등을 소재로 삼은 연작소설 `별들의 들판', 전경린은 역사소재 소설 `황진이', 배수아는 장편 `에세이스트의 책상', 권지예는 첫 장편 ` 아름다운 지옥', 윤성희는 두 번째 소설집 `거기 당신?', 조경란은 소설집 `국자 이 야기', 정영문은 장편 `달에 홀린 광대' 등을 통해 좀더 성숙해진 문학세계를 드러 내 보였다.

캄보디아 체류경험을 소설로 엮은 유재현의 `시하눅빌 스토리', 등단 5년 만에 낸 소설집으로 다양한 형식실험이 돋보이는 이기호의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 장편 `장밋빛 인생'으로 2년 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던 정미경의 첫 소설집 `나 의 피투성이 연인', 중진작가 한승원의 아들인 한동림의 첫 소설집 `유령' 등도 문 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명랑은 장편 `나의 이복형제들', 서성란은 소설집 `방에 관한 기억', 이응준 은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 전혜성은 소설집 `소기호 씨 부부의 집나들이', 오현종은 소설집 `세이렌', 한차현은 장편 `왼쪽 손목이 시릴 때', 송은일은 장편 `도 둑의 누이', 김도언은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고은주는 소설집 `칵테일 슈가', 박정애는 소설집 `죽죽선녀를 만나다'를 통해 색깔있는 작품세계를 보여 줬다.

시는 서사문학의 위기와 거의 무관하게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며 자기자리를 지 켰다. 오히려 문학의 위기상황이 시의 끈질긴 생명력을 자극한 형국이다. 상업출판 의 영향을 소설보다 적게 받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시집이 쏟아져 나왔다.

원로시인 황금찬은 서른세 번째 시집 `조가비 속에서 자라는 나무들', 홍윤숙은 열다섯 번째 시집 `지상의 그 집'으로 노년에도 시들지 않은 시혼을 정갈한 언어로 보여줬다. 고은은 올해 장편 서사시 '만인보'를 20권째 냈다.

김지하는 아홉 번째 시집 `유목과 은둔', 신달자는 열한 번째 시집 `오래 말하 는 사이', 문정희는 열 번째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김혜순은 여덟 번째 시 집 `한 잔의 붉은 거울', 하종오는 열 번째 시집 `반대쪽 천국', 고재종은 일곱 번째 시집 `쪽빛 문장', 박진숙은 14년만의 세 번째 시집 `혜초일기', 김윤배는 장편서사시 `사당 바우덕이', 정호승은 여덟 번째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을 상재했다.

이시영은 시집 `바다 호수'로 백석문학상을 받았고, 이에 앞서 지훈상과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많은 한 해였다.

농부시인 최창균은 등단 16년 만에 첫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로 주목 받았는가 하면, 정철훈은 세 번째 시집 `개같은 신념'에서 야성의 힘찬 언어로 문명 사회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1980년대 노동문학을 주도했던 백무산 시인은 삶을 성찰한 `길 밖의 길'을 냈고, 초현실적 감각을 지닌 박상순은 `러브 아다지오', 박주택은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공광규는 `소주병', 유홍준은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문혜진은 `질 나 쁜 연애', 박규리는 `이 환장할 봄날에', 원재길 `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 조용미는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배용제는 `이 달콤한 감각' 등으로 시단을 풍요 롭게 했다.

올해 8월 말 분단 후 처음으로 평양과 백두산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작가대회가 남북의 정치상황이 경색돼 무기연기된 것은 매우 아쉬웠다. 대회를 추진한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내년초에 행사를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의지를 갖고 있어 주목된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11월 18일 서울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 겠나'라는 제목으로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남북작가대회가 연기된 반면 임헌영 조남현 등 국내 문학평론가들은 12월 11일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총련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과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비록 일본에서 열렸지만 이념으로 막혀 있는 남북 문학인들 사이의 벽을 뚫은 소중한 자리였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소설가 방현석과 평론가 박철화는 중앙대, 시인 안도현은 전주 우석대, 시인 남진우는 명지대 교수로 가는 등 작가들의 대학진 출도 눈에 띈 해였다. 반면 중진작가 박범신은 창작을 위해 명지대 교수자리를 떨치 고 나왔다.

소설가 황석영은 2년간 영국 런던대에서 수학하기 위해 지난 4월 영국으로 떠났 다. 중진작가 김주영과 이문열은 각각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봄호로 창간됐던 문학전문 계간지 `파라 21'이 2년 만에 종간됐고, 구상 김춘수 김상옥 등 우리 시단을 지켜온 원로들이 올해 잇따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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