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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만에 신작소설 임철우씨 |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100년 역사 다뤄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역사는 컴퓨터 자판의 `삭제' 키를 눌러버리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얽힌 이야기를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 `봄날'에 담아냈던 중견작가 임철우(50·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씨가 이후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백년여관'(한겨레신문사 출판부)을 펴냈다.
이 소설은 영도(影島)라는 섬에 있는 백년여관을 무대로 일제시대,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때의 보도연맹 사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재에 이르는 10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상 중이던 작품을 쓰기 위해 영도로 가던 소설가 이진우가 도중에 시애틀에서 온 간질환자 요한 킴, 백년여관의 주인 강복수를 만나는 것에서 소설이 시작된다.
한국전쟁 보도연맹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기억상실에 걸린 입양아 출신 요한 킴이 영도에서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 제주 4·3사건 때 빨갱이로 몰린 부모와 동생을 잃은 뒤 사법시험에 붙었으나 연좌제에 걸려 좌절하다 여관을 차린 강복수, 오빠 문태가 베트남 전쟁에서 부상한 뒤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 밑바닥 삶을 거쳐 강복수의 아내가 된 허미자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임씨는 "아직도 6·25전쟁이나 5·18 광주항쟁이냐는 말을 주변으로부터 듣는 데, 심지어 5·18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과거'로 정리하면 끝날 사건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의 삶에 간여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학자들은 그 때 사건을 `역사'로 규정해버리지만 5·18의 상처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나는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주변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때 용감하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항쟁에 뛰어들었다가 직장과 가족을 잃고, 내면까지 황폐해져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데 과거의 사건이 마치 지금 죽어 없어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영도 주변을 떠도는 혼령, 강복수와 허미자의 아들이면서 자폐아인 신지가 바닷가에서 실종되었다가 푸르스름한 손들의 도움으로 살아난 일, 104년 만에 찾아온 개기월식날 굿을 열며 죽은 혼들을 위로하는 설정 등은 이 소설을 환상적 세계로 이끈다.
임씨는 "이전의 글쓰기가 모든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면, 이젠 소수라 할지라도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향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년 전 `봄날'을 쓸 때만 해도 사실의 극단까지 되살리려 노력했는데 이번 소설을 쓰면서 소통의 방식의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신화적 상상력을 작품에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970-80년대 소설은 독자에게 뭔가 말해야 한다는 작가로서 의무감과 중압감이 있었기 때문에 글쓰기가 힘들고 의식도 굳어 있었다"면서 "이제 소설의 무대인 현실이 변했고 독자도 변했으므로 당연히 글쓰기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자 하는 그의 창작태도는 최근 계간 `문학 판'에 발표한 단편 `칠선녀주'에도 나타나 있다.
그는 얼마 전 `대산문화'에 기고한 글에서 "대하소설 `봄날'을 완성하느라 10여년간 두문불출하는 사이 `그 해 봄'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었고, 주변에서 `아직도 그 얘기냐'며 동정하고 한심스러워했다"면서 "천박한 물신의 늪으로 곤두박질해버린 시대상황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정체불명의 그 골짜기를 생략한 채 지나치지 않고 몸소 걸어서 건너겠다"고 작가적 소명의식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번 소설로 `봄날'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다한 것같은 후련함을 느낀다"면서 "찬성하지는 않지만 (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한동안 못 썼던 단편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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