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우리는 테러를 비난할 입장이 못된다"

[오마이뉴스 2004-07-10 16:10]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 오수연 반전평화위원장이 반전평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반전·평화를 원하는 작가들이 촛불을 들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이인휘)'는 9일 저녁 7시 30분부터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반전평화, 거리시화전 및 시낭송의 밤'을 열었다. '우리는 장미를 노래하고 싶다'를 주제로 작가 및 학생·시민들 100여 명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이날 자유실천위원회는 "전쟁은 인류의 근본적인 도덕을 말살하는 페스트요, 파병은 세계 양심인류에게 치명적인 독균을 매개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며 "우리(작가회의)는 지금껏 견지해왔던 전쟁반대 파병철회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문학 고유의 가치를 살려 반전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심 사회세력에게 기운을, 국민들게는 문학적 감성으로 '꺼트릴 수 없는 촛불을 지키자'고 외치고자" 행사를 추진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시인들은 "거리에 뒹구는 아픈 말들을 거두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이 아니겠느냐?"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파병 앞에 붙은 어떤 수사도 인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시화전이 열린 광화문 교보문고 앞 거리에는 이상국, 자카리아 모아메드 등 국내·외 시인 34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 가운데 김수열 시인은 이라크 파병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인의 절망을 이렇게 썼다.

"한 끼니 밥도 되지 못하는 네가

한 방울의 물도 되지 못하고

한 방울의 피는 더욱 될 수 없는 네가

하물며 저 절절한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Your life is important,

My life is important, too

Really, I don't want to die, please!

꽃다운 젊음 하나 지키는 못하는 조국에서

더 많은 젊음을 총알받이로 보내야 하는 조국에서

너를 부여안고 눈물 흘린다 한들

풀 한 포기 키워내겠느냐

꽃 한 송이 피워나겠느냐

그러니, 시여

차라리 죽어버려라"

('시여, 차라리 죽어버려라' 전문)

"파병 앞에 붙은 어떤 수사도 인정할 수 없다"

▲ '이라크여, 이라크여'를 낭독하고 있는 김창규 시인.

ⓒ2004오마이뉴스 조호진

이날 작가회의 산하 반전평화위원회' 오수연(소설가) 위원장은 '민족문학작가회의 반전평화 선언문'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을 확정하여, 정부는 마침내 국가를 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려들게 하고 말았다"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방적으로 테러를 비난할 입장이 못된다. 점령군 미군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그 반동으로 이라크 내 과격 집단들을 강화한 죄가 있기 때문이다"고 원인을 짚었다.

오 위원장은 특히 "우리는 우리 나라가 '실전 경험'을 위해 다른 나라에(베트남) 군대를 파견할 정도로 호전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해야될 일은 추가 파병이 아니라 이미 파병된 의료, 공병대의 신속한 철수, 이라크인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사과"라고 촉구했다.

이날 정희성(시인), 강은교(시인 : 소설가 이경자 낭송), 김창규(시인), 안상학(시인), 손세실리아(시인), 황규관(시인), 문동만(시인), 송경동(시인) 등이 시낭송에 참여했으며 김재영(소설가)의 산문 낭송도 함께 진행됐다.

이날 '저문강에 삽을 씻고'의 정희성 시인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이라크 전쟁을 예견했다면서 자신의 시,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를 낭송했다.

"큰 전쟁이 날 거라고들 했다

세상 참 더럽게 돌아간다 생각하며

간디 박물관에 들어섰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 죽었을

간디의 벗은 몸을 보았다

소금을 만들기 위해 행진하던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세상을 선사시대로 돌려놓기 위해

미국의 야만주의자들이

사막의 모래톱 더 잘게 부수고 있는 이 순간

바스러진 모래알 틈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고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날씨 탓만이 아니다

나는 너무 많은 옷을 입고 있다"

목사이기도 한 김창규 시인은 '이라크여, 이라크여'라는 시를 통해 미국을 규탄했다. 또한, 전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인의 아픔을 다음과 같이 외쳤다.

"어머니도 어쩌지 못하는

죽음의 공포와 테러의 현장 이라크

비오듯 쏟아지는 폭탄세례를

거부할 수 없는 팔루자에서

아메리카 군대의 잔혹한 고문과 살해

더러운 전쟁을 일으킨 악마 미친 부시

아메리카 속국 한국 군대를 파견 한다

나는 안다 베트남에서

우리 형님들이 저지른 만행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불태우고 죽인 과거를

머나먼 티크리트 붉은 피의 강물을 보고도

이라크여, 이라크여

파병을 막지 못했다

온몸으로 저항했으나

바그다드의 참상을 알고도 막지 못한 파병

내 무릎 끓고 눈물 흘리며 사죄한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아메리카

로마처럼 비참하게 멸망할 날 있으리라

세계 인민의 적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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