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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 시장과 타협 종용하는 건 한국문학에 대한 모욕”
-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ㆍ‘문학의 공공성과 표현…’ 문인·문화부 토론회
▲ “세종도서 사업이 추구하는 문학의 보편성과 공익성은
작가 탄압수단 악용 가능성”
▲ “국가 경쟁력 기여 요구는 문학 역할 계량화하려는
시장주의적 관점 드러내”
▲ 문인들 조목조목 쓴소리에“행정편의 였다” 사과에도
문학과 예술 본질에 대한 정부의 철학 부재는 여전
“절박한 심정으로 왔습니다. 15년간 낸 책 6권 중 4권이 세종도서 같은 사업에 선정돼 도서관에 들어가 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의 매뉴얼이 바뀌면 앞으로 제 책은 도서관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백가흠 소설가)
“문학은 장담하건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일하러 가야 하는데 밤에 백가흠 작가 소설 읽고 나면 ‘왜 돈 벌러 가야 하지’ 생각이 들죠.”(신용목 시인)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학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문인들과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의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12월 문화부는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저서를 우수도서에서 취소했고, 이후 올해 세종도서 문학부문 우수도서 선정 기준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 조항을 넣는 방안을 검토하다 물의를 빚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문화부 측은 세종도서 논란에 관해 해명·사과했지만, 문학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정부의 철학 부재는 쉽게 메워질 게 아님이 확인됐다. 김일환 문화부 출판인쇄산업과장, 고명철 문학평론가 등이 발제와 토론을 맡았고 문인과 출판계 인사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고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김태년 의원실이 주최했다.
‘문학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란 주제로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문인 등 토론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김 과장은 “사업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념’ ‘순수문학’ 등 표현이 나왔고, 그 언어의 역사성을 무시한 채 행정편의적으로 쓴 것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세종도서 사업이 추구하는 ‘보편성’과 ‘공익성’의 뜻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신용목씨는 “‘보편성’은 정권이 기획한 가치이고 문학은 특수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며 “엄친아나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면, 우리 의식의 저 깊은 뿌리는 이제 삶의 다양한 방향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인 최자웅씨는 “작가들이 처절하게 이야기하는 ‘특수성’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것을 정책담당자들의 교양 정도는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기준(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을 예로 들어 우수도서의 ‘보편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백가흠씨는 “정부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는 작가들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고, 사람들의 상상력마저 제어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읽혀 불쾌하다”고 밝혔다.
문인들은 정치 검열을 연상시키는 ‘순수문학’ 조항보다 ‘국가경쟁력에 기여’ 부분에 더 많은 우려를 표했다. 문학의 역할을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하는 시장주의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김 과장은 “도서관에서는 해외 인기 번역서나 베스트셀러를 요구하고 있다. 세종도서 사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급 도서의 이용률이 높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명철씨는 “이는 한국문학에 대한 모욕적 문학정책”이라며 “시장과 타협한 문학이란 낯익은 세계와 불화하지 않은 채 지금, 이곳에 안주함으로써 근원적 성찰은 소멸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꿈꾸기를 원천봉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씨는 “문학도서 이용률이 왜 낮아졌는지에 대한 성찰이 (문화부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건 이용률이 높아서가 아니라, 몇 사람이라도 사막을 벗어나고 싶을 때 오아시스에 닿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부의 예술 지원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씨는 “예술가는 가난한 삶을 살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보편적인 성공과 다른 길을 사는 사람들”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된 문화 지원책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씨는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는 건 ‘베풂’이 아니라 ‘당위’라고 밝혔다. “문학을 이처럼 왜소하게 만들고 예술 향유를 상업적 차원으로 획일화시킨 것이 바로 ‘국가’입니다. 모국어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영혼을 삭제하며 처세와 성공을 부추겼고, 청소년들에게 경쟁을 강조하며 마침내 옥상으로 내몰았으며,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가치를 기꺼이 폄하하게 만든 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입니다.”
기사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4212713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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