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닭을 둘러싼 몇 가지 시선
이념 잣대 들이대는 세종도서 사업…문학의 미래는 곧 인간·국가의 미래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익히 알려진 시인 김수영의 유명한 명제다. 그렇다. 설 명절이 지난 이쯤에서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이란 게 도대체 뭘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순수문학'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해 싸움닭처럼 퍼덕이는 이 나라의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암담하기만 하다. 하늘을 올려다보기는커녕 땅바닥이나 헤집는 닭의 기분이랄까. "문단에서 순수-참여 논쟁이 치열했던 것은 1960년대였다.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망령이 무덤에서 되살아난 격이다."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영남대 명예교수) 선생의 개탄은 비단 문학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는 물론 시인 천상병 같은 무고한 피해자를 낳은 '동백림사건'이 당시 박정희 정권이 부정선거 시비를 무지르고자 조작한 사건임은 이미 역사로 증명되었다. "문화와 예술의 자유 원칙을 인정한다면 학문이나 작품의 독립성은 여하한 권력의 심판에도 굴할 수 없고, 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날의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의 소심증과 무능에서보다도 유상무상의 정치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김수영)
24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리는 한국작가회의의 '문학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토론회도 김수영의 이 말을 다시 한 번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지난 달 26일 공동성명을 낸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와 한국출판인회의(회장 윤철호)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문학도서 잣대 속에는 국가 기관의 사상 통제와 검열이라는 구시대 발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시대착오적 운영방침과 발상의 철회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달 문제의 규정이 포함된 '2015년도 우수도서(세종도서) 선정사업 추진방향'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문학 분야 도서 선정 기준은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문학 작품', '예술성과 수요자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 우수문학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작품', '인문학 등 지식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로 되어 있다. '세종도서'로 불리는 우수도서는 문학 분야와 함께 학술과 교양 분야 등 세 부문으로 되어 있는데, '특정 이념' 여부를 심사 기준에 포함시킨 것은 문학 분야가 유일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마치 입이 부리로 변해 모래나 쪼는 닭의 기분이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의 배후엔 김수영이 있고 결코 역사와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국민들의 눈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닭을 둘러싼 몇 가지 시선'이란 칼럼이라기엔 다소 은유적인 제목도 바로 이 눈으로부터 출발한다. 신년 기자회견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의 모습은 오만했고, 내용은 부실했다.
그러니까 이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는 참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지고 양극화는 극심한데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연말정산과 담뱃값 인상 파동은 '증세 없는 복지' 약속에서 복지는 사라지고 꼼수 증세만 남았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들이다. 특히 과도한 종북몰이는 역설적으로 박근혜정부가 다수파의 동의를 끌어내어 헤게모니를 유지할 능력이 바닥났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쯤 되면 콘크리트 지지율이란 평가는 이제 흘러간 얘기가 된 듯하다.
그래서 묻는다. 문학에 미래는 곧 인간의 미래, 지금 이 나라의 미래는 있는가? 보다 문학적으로, 콘크리트바닥에 사는 닭의 미래는 있는가? 답은 역사에게 맡기고 한 가지 명제만 던져놓자면 이렇다. 닭의 급소는 바닥에 있다.
기사 원문 링크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47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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