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들 만남은 격식 어긋나도 양해”
김성수 교수의 북한 민족작가대회 참관기
남북작가들간 의형제 맺기도… 통일문예운동 희망 엿보여
[내일신문 2005-08-01 오후 2:06:09]
김성수(성균관대 교수, 평론가, 북한문학 전문가)
=>“백두산 천지서 일출 보며 손잡고 외친 만세, 잊을 수 없어”
‘화해’ 원칙에 양측 경직성 크게 해소 … 다른부문 교류에도 적용될 것
‘수령론’ 실체 보며 북한에 대한 평소 반감 다시 확인한 참가자도 많아
성균관대 김성수 교수가 북한 민족작가대회 참관기를 보내왔다. 북한문학 전문가인 김 교수는 “이번 방북에서 ‘엄청’ 달라진 북한 당국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며 “남북 양쪽 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을 보였다”고 이번 대회를 평가했다.
이번 대회는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편집자주
6·15선언 공동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남측 대표단 일원으로 평양, 백두산, 묘향산에 다녀왔다. 무엇보다도 7월 23일 새벽 백두산 천지에서 남과 북 해외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 극작가 150여명이 손에 손을 잡고 서쪽으로 지는 보름달과 동으로 뜨는 일출을 맞이하며 만세를 불렀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백낙청, 고 은, 황석영 등 남측 대표와 홍석중, 오영재, 남대현, 김병훈 등 북측 문인, 김학렬(재일동포), 이언호(미주 대표) 등이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장군봉 중턱에서 민족작가대회의 성과를 재확인하고 ‘백두산의 새벽’ 축제를 치렀다. 합의사항으로는 남과 북, 해외 문학인들의 공동 조직으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고 기관지 ‘통일문학’을 발행하며 ‘6·15통일문학상’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작가대회 개폐막 연회와 백두산, 묘향산 행사 일정을 통해 북측 김정호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김병훈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장을 비롯하여 그동안 문학작품으로만 만났던 홍석중, 오영재, 남대현, 장혜명, 김 정, 박세옥, 송찬웅, 백 하, 리호근, 김청남, 박경심 등 북측 시인, 소설가들과 인사하고 사진,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짬짬이 대화와 촬영이 가능했다.
소설 <임꺽정> 작가 홍명희의 손자이며 <황진이>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근한 홍석중, <어머니의 노래>로 남쪽 이산가족에게 유명해진 오영재 시인, <청춘송가>로 잘 알려진 안동 출신 남대현 소설가, <해주 하성에서 온 편지>로 유명한 김병훈 소설가 등과 친해져 오고 가면서 간간히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심지어 <군바바>의 김혜성 소설가, <따르자 받들자 6·15>의 황원철 작가와는 형 동생 삼자고 통일을 다짐하고 돌아왔다.
방북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남북관계, 통일문학을 오래 공부해온 전문가로서 기대 이상으로 희망적이라고 하겠다. 남북 양쪽 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부했던 북측 사회와 작동시스템에 대한 걱정과 우려, 아무 것도 결정된 것 없이 시시각각 결정사항이 달라지는 기왕의 남북교류사업 실행과정의 예민함에 대한 온갖 기우는 이번 대회에서 상당량 해결되었다. 6.15 5주년 행사 이후 양측 간에 커다란 화해 원칙이 공유된 탓인지 양쪽의 경직성이 상당히 풀렸던 것이다. 앞으로 다른 부문 교류에도 이 원칙이 적용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작가들과의 만남만큼은 격식에 다소 어긋나도 널리 양해가 된다는 위원장의 특별 배려가 있다는 기사도 흥미로웠다. 그때문인지 장군 중엔 똥장군도 있다는 불경스런 발언이나 입·출국 때 만취불성된 문인조차 허용하는 파격이 있었다.
우리 쪽도 거대한 동상이나 혁명사적비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소 닭 보듯> 지나쳤다. 남측을 대표하는 이들 다종다양한 작가들이 돌아와서 솔직하게 복잡다단한 느낌을 쏟아낸다면 그동안 단절상태에서의 무시와 무관심보다는 화해 교류에 긍정적인 구실을 할 것이라 여겼으리라. 한마디로 통일문학예술운동의 앞날이 희망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렇지 않은 반증도 없지 않다. 북을 잘 모르고 처음 간 분들, 특히 신문, 인터넷 매체에 나오는 유명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의 방문 소감문들을 보면 적잖은 분들이 평소의 반북성향을 재삼 확인하고 올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수령에 대한 끝간 데 모르는 신성시와 온갖 사회주의적 관료주의 작태에 질릴 만도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에서도 수령(김일성 주석), 장군(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는 수령론의 실체가 이미 봉건제 치하의 왕을 넘어서 제정일치적 신성국가 차원으로나 이해될 정도였다. 가령, 만경대 생가, 백두산 밀영이나 삼지연 대기념비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충분했기에 충격이 없었지만, 사전 정보가 부족했던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 수령관의 김일성 랍상(밀랍인형)에 대한 북측의 신성시 정도는 그 정도가 심해 충격이었다.
주민들에게 죽은 김 주석이 <살아계시다>를 실감하게� 만드는 신화화 장치가 워낙 견고하여 신화를 역사로, 다시 일상으로 만드는 통치시스템과 그를 철저하게 뒷받침하는 문화예술적 장치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측 사람들에게 북을 이해시키고 화해시키기도 어렵겠지만 북측 사람들에게 그것이 인형임을 납득시키는 불경을 저지르면서 이쪽을 이해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체감했다. 만나는 북측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여러분들 사회의 일목요연함, 자기완결성만큼이나 우리 쪽의 다양성도 인정해달라고, 조금이라도 공통점을 찾아보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은 원로 1급 작가나 민화협(기관원) 사람 정도나 알아듣지 조정협, 리창식, 김철민, 김혜성 등 3급 작가들이나 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 경우든 자기들의 지난 문학사나 문예연구사에 대한 폭넓은 정보가 남쪽의 소장학자만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타까웠다. 자기 사회의 지난 역사와 미래에 대한 정보가 태부족한 채 강고한 외부세계와 맞서는 그들에게 착잡한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영채 평론가 말대로 평양에서의 <단 하루가 3년 같다>는 소회가 실감난다. 통일과 통일 이후의 사회문화적 통합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느낀 만큼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음은 물론이다.
기사전체보기
|
관련 언론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