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25일 평양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는 모국어권 문학의 영토와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를 회복하려는 첫 발걸음이었다. 대회를 마친 고은(72) 남측 대표단장과 백낙청(67) 6·15 공동행사 남측준비위 상임대표를 25일 평양 개선문 근처의 금강산판매소에서 만났다. 김형수(46) 집행위원장이 배석했다.
-대회의 의의는.
△고은=별들의 시간으로 보면 티끌일지 모르지만 민족시간에서 보면 분단 60년은 긴 시간이다. 이 시간의 굴속을 지나 남과 북의 작가들이 함께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앞으로의 문학을 어떻게 전개시킬 것인가를 인상적인 이번 만남을 통해 완성했다. 두 개의 문학에서 하나의 문학으로 나가는 첫 걸음을 뗐다고 확신한다.
△백낙청=남측 작가들이 직접 와서 보고 경험한 것이 남북의 벽을 허무는데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비판적이 돼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벽을 허물지 못하고 비판하는 것과,벽을 허물고 비판하는 것은 다르다. 알면서 비판하는 것,정당한 비판은 무게가 실리기 마련이다. 정직한 작가라면 비판을 하다보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흔히 핏줄을 잇는다는 말이 있지만 비유를 바꾸자면 이제 피를 맑게 하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 건강검진에서 문제되는 혈액 수치를 정상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작가다.
-대회의 성과는.
△고은=난북 작가들이 만나서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그렇다고 분단시대에 쌓아온 문학적 성과를 자기 부정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은 분단시대 이래 이질화된 문학을 영위해 왔다. 장차 통일시대에는 분단시대 문학을 이질화 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문학이 창작된 시대로 보자는 것이다. 이를 딛고 다음 단계 문학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 문학의 신념이 때로 충동하거나 상호모순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문학은 이러한 갈등을 통해 새로운 문학의 형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2차 대회의 구체적 방안은.
△김형수=서울과 광주를 희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광주는 북측에서 공식적으로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앞으로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속도조절을 할 것이다.
-북측은 올해 안에도 2차 대회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형수=그런 제의를 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남측은 부정적 입장을 전했다. 커다란 행사를 1년에 두 차례 여는 것은 서로에게 힘들다.
△고은=겹잔치는 늘 벅차고 음식도 맛이 없어진다.
△김형수=내년 6월 열릴 아시아작가연대회의 등과 연계해 북측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참가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2차 대회는 내년 6월 무렵이 바람직할 듯하다.
-주체와 반미를 바탕으로 한 북측의 문학적 기반과 목표치가 남측과 상충되는데,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고은=반미는 전쟁 이후 북측에서 삶의 원칙이 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이 체제의 지도층이 반미를 관철하는 것으로만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주체’가 농성 체제에서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연대 선상에서의 주체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영원히 불변하는 것은 없다. 주체안에서도 내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백낙청=대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측과 절충한 선례가 얼마든지 있다. 공동 기관지 ‘통일문학’ 편집에도 절충의 묘를 살릴 것이다. 반미나 주체를 그대로 관철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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