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인과의 만남, 우리는 실정법을 어겼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8-02 11:27]

김형수 민족문학 작가회의 사무총장(자료사진)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백 발짝을 혼자 앞서가도 수백 사람이 뒤를 따라 걷지 않으면 길이 되지 않아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하 남북작가대회)’에 참가하며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사무총장이 남겼던 말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이기도 한 김 사무총장을 7월 28일 마포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번 남북작가대회와 근황에 대해 들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작가회의 3층 한 구석 집무실에는 에어컨 대신 작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큰 행사를 치른 피로감 때문인지, 김 사무총장의 얼굴을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남북작가대회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민족문학의 임무는 모국어 문화권 회복이 기본” 이번 남북작가대회에 대해 “모국어 문화권 회복이 절실한 가운데 치러진 최초의 만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머리를 연 김 사무총장은 준비과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 문단은 이미 남한의 작가회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며, “남과 북의 문단의 토양은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즉, 남한은 작가회의와 문인협회 등 그 문인조직이 다양하고, 더구나 그 문학적 필드를 매체가 주도하며, 매체에 따라 정치적 기반이 다른데 비해, 북한은 조선작가동맹에 단일하게 뭉쳐있다고 그는 말했다. 또 그 동안의 남북문학인들 간 소통 과정을 소개하면서, “남북문인 교류 초기에는 굉장히 멀고도 간접적인 소통 다시 말해, 남한의 문인들이 한겨레신문 등의 매체에 의견을 표하면 북한의 문인들이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화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서 80년대와 90년대 남북문인 교류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김 사무총장은 지난 2000년 8월 문익환 평전 취재를 위해 김 사무총장과 정도상, 문성근 씨 등이 방북했을 당시, 북측의 고위급 인사를 만나 남북작가대회의 성사를 강조했고, 2004년 서울에서 열린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15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를 통해 재차 남북작가대회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남북작가대회의 매개체는 늦봄 문익환 선생” 이 과정에서 김 사무총장은 북측에 “남북 문단의 주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은 서로에게 감정의 앙금이 없으며, 6·15 정신은 (남과 북이) 서로 일부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소통하는 것”과 “작가회의만의 조직이 아닌 남한 문단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을 꾸릴 것”이며, “그 조직은 조별로 편성되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북측에 대한 결례를 최소화 할 것”이라고 강조하여 비로소 남북작가대회를 위한 준비회담이 열리게 되었다고 당시의 비화를 전했다. 기본적으로 북한 측은 남한 측이 주장했던 남북작가대회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고 술회한 김 사무총장은 이번 대회의 주요 성과 중의 하나인 ‘6·15 민족문학인협회’ 구성에 따라 발간하기로 한 ‘통일문학’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통일문학의 발행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북한 측은 조선작가동맹이라는 단일한 대오로 조직화 되어 있는데 비해 남한은 ‘개인’의 비중이 너무 크다”고 다소 우려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남한문인들과 북한문인들 간의 협상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기본 바탕에는 “남한 문인단체에 대한 북한 측의 신뢰가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6 ·15 통일문학상’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 이번 남북작가대회에서는 5개항의 합의문을 도출했다. 합의문 중, ‘6 ·15 통일문학상’ 제정 및 운영에 대한 질문에 김 사무총장은 “해외동포 문학인의 ‘6 ·15민족문학인협회’ 적극 참가와 잡지 ‘통일문학’의 발행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전제하며, “(그것에 비해) ‘6 ·15 통일문학상’은 민족문학인협회가 주체가 되는 만큼, 남과 북이 동일한 숫자로 참여하는 형태가 된다고 전제할 때 오히려 쉬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동포 문학인의 적극 참가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남북작가대회는) 남측 문단의 대표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해외동포 문학인들이 대표성을 얻으려면 (그들이) 한반도보다 더 많이 분단되어 있는 만큼 통합의 작업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민족문학의 주요 테제 중의 하나인 ‘모국어 문화권’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어 문화권은 그 대표성이 서울문단과 평양문단으로 나누어져 있는 만큼 통합의 주체 역시 서울문단과 평양문단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실정법을 어기고 있다” 이번 남북작가대회의 성과 중의 하나인 황석영(남), 홍석중(북)의 공동창작이 다소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며, (두 분이) 그동안 살아오는 과정에서 무수하게 고민했던 것들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 김 사무총장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은 현 실정에서 결국 우리는 여전히 실정법을 어기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라고 우회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기도 했다. 또 북한 작가들의 개별적인 남한 방문 가능성에 대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잘라 말한 김 사무총장은 “북한은 (아마도) 독일을 공부했을 것”이라며, “통일 전 동독 내부에 존재했던 체제비판적인 작가들의 경우,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서독의 출판시장에 끌려다녔고, 정작 장벽이 붕괴하자 이번에는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버림받았다”고 지적한 후, “북한은 이러한 과정을 잘 알고 있다”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사라진 동독문학의 전철을 북한문학은 결코 따라가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소총수가 필요한 때” 지난 1980년대 후반 백남룡, 남대현 등의 일군의 북한작가들의 작품이 남한에서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이후 북한작가들과의 작품교류가 뜸해졌는데, 작가회의에서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끌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작가회의 자체의 집행력은 매우 미약하다”고 전제한 후, “지금 남한의 문학에서 필요한 것은 거대한 조직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한 명의 소총수”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우리는) 민족문학적으로 보고 있고, (그 타겟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며, “작가회의는 소총수여야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문학의 성장동력은 다름 아닌 가치지평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 김 사무총장은 “우리 문학에는 아직 하나의 동력이 남아 있으며, 그것은 바로 ‘통일’”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정부, 문화정책이 있기는 한가” 이번 남북작가대회에서 새로이 논의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 동안 남북작가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왔던 논의를 구체화시킨 것 이외에 새로운 논의를 할 겨를이 없었다”는 김 사무총장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 전반에 대해 “참여정부의 등장은 정치의 승리가 아니라 문화의 승리이자 문화적 지평의 확장이 그 탄생동력”이라며 “국민의 정부가 문화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고 그것에 주력했다면, 참여정부는 보다 확장된 문화의 확산에 주력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참여정부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민도, 지향점도 없다”고 비판한 김 사무총장은 “지도자가 문화라는 것에 대해 충분한 고민이 있음에도 이것이 참여정부 내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전체 조직원들과 지도자 사이에 괴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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