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독일적군파를 다룬 영화 한 편을 관람했다. 방에 처박혀 책이나 읽고 글줄이나 끼적이는 게 전부인 나로서는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광주항쟁을 다룬 한국영화들을 관람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미 내 안에 극단적인 소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처럼 스스로를 분석하고 있는 이 순간의 나를 나 또한 신뢰할 수가 없다.

이 영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머리 속에 펼쳐졌다. 끔찍한, 파괴적인 등등의 형용사와 이념의 과잉, 좌익소아병, 극좌와 극우는 쌍둥이다, 테러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등등의 문구들이 떠올랐다. 과거를 평가하는 일이 이처럼 쉬웠던 시대가 다른 시기에도 존재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심리학 관련 서적이라면 아무 거나 들춰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두 사람의 희생에는 민감하면서도 수백 수천의 희생에는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전쟁 초기에는 그 비인간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폭력과 공포에 장기간 노출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맞는 말인 듯하다. 오늘 하루도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열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공식적인 집계가 그렇다고 하니 실제로는 더 많은 숫자일 것이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하며, 누군가는 진짜로 목숨을 잃는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만연하여 익숙해져버린 것들이 끔찍하다. 내 눈앞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끔찍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무감각이 끔찍하다. 나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습관적으로 내면화된 희망이라면, 그것 역시 나의 무감각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기에.

<2009.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