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간은 영원하고 인간은 유한합니다. 자연은 영원하고 인간은 유한합니다. 우주는 영원하고 나는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만을 살다가 갑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산은 여기 있었고, 내가 죽은 뒤에도 산은 말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내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밥벌이를 하는 동안 강은 흘러갑니다. 기력이 다하여 밥벌이를 멈추고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강은 여전히 소리 없이 흘러 바다로 갈 것이고, 내가 떠난 뒤에도 그 흐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막스 루돌프 램버그의 말대로 "영원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죽은 뒤에 있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원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땀을 흘리며 살았던 것을 나 떠난 뒤에 기억해 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내 자식 내 아내 내 남편이 잠시 기억해 주다가, 그들도 세상을 뜨고 나면 내가 살았던 자리에는 풀 몇 포기 돋아나다 저 혼자 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 삶 속에는 내가 만들어 낸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사는 동안 남긴 흔적들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남겨 놓은 지혜와 노력의 바탕 위에서 지금의 내가 오늘까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것이야말로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그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것들이 모여 세상을 만들고 문명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막스 루돌프 램버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죽은 뒤에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영원은 있다.
그리고 이때가 내가 영원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간,
살아있을 때 내가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나는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부싯돌을 만들어 최초로 불을 켠 사람,
최초로 옷감을 짜거나 씨를 심은 여자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이름이나 내가 한 행위가
기억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억된다 해도 영원히 기억되진 않으리라.
그러나 내가 한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파괴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으리라.
그 점에서 그것은 영원한 것이 되리라.
책이나 어떤 발견,
어떤 말, 심지어는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또는 관대한 행위 한 가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영원한 것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부싯돌을 만들어 최초로 불을 켠 사람, 최초로 옷감을 짜거나 씨를 심은 여자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듯 우리의 생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행했던 크고 작은 흔적들은 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는다 해도 서운할 게 없습니다. 내 존재가 영원히 기억되지 않는다 해도 내 삶이 꼭 무의미한 것만은 아닙니다. 영원은 영원한 것 속에만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속에도 있습니다.

<2009.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