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그날은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날은 큰아버지의 유해가 65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1942년 봄 24살의 젊은 나이에 강제동원 되어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큰아버지가 끌려간 곳은 남태평양 팔라우제도 앙가우르섬이었습니다. 거기서 2년간을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1944년 3월 미군의 팔라우제도 1차 공습이 있던 날 비행기 폭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청주군 북일면 오동리 고향집에는 이십대 초반의 젊은 아내와 어린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제대로 먹지 못해 어린 나이에 죽었고, 남편 죽고 자식마저 잃은 젊은 아내는 스물 몇 살에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큰아들을 잃은 집안은 슬픔으로 휘청거렸고 가세는 더 기울었습니다. 큰아버지의 생이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끝나고 만 것도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고 어긋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징병령 총동원령 같은 명령을 내리던 사람 누구도 찾아와 눈물 흘리는 이가 없었고, 충북지역 젊은이들을 앞장서서 끌고 갔던 일본 남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이나 그 식민지 하수인들, 멸사봉공을 외치며 전쟁터로 내모는 강연을 하거나 글을 써대던 조선 지식인 누구도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며, 명령의 주체였던 일본제국주의 식민 통치자 누구도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난 60여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집안 어른들은 어느 누구에게 어떤 사과의 말이나 보상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더 속상했던 것은 죽은 날이라도 정확히 알려주고 유해라도 찾게 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우리 정부에서는 강제로 끌려가 희생당했다는 것을 유족 측이 자료나 사진 등을 제출해 증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죽음을 증언할 수 있는 이들도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식민지와 분단전쟁을 치르고 산업화 되는 동안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에게 요구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해방 된 뒤에 바로 유해를 찾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국가의 책임이고 도리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믿고 국민이 납세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게 아닙니까? 우리 국가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강제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죽었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도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1948년 연합군총사령부 지시로 육·해군 유골 7,643위가 과도정부에 전달되었는데 일부만 유족에게 전달되고 나머지는 한국전쟁이 터진 뒤 그만 유실되고 말았습니다. 이래도 우리는 이 나라를 내 조국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70년대 초부터 2005년까지 1,300위 정도가 봉환되고, 지난해부터 3차에 걸쳐 204분의 유해가 돌아왔습니다. 지난 7월 9일 큰아버지의 유골은 65년이 걸려 내 나라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큰아버지 유골은 지금까지 일본 도쿄 근처 유텐지라는 사찰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텐지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출신지역과 나이와 신분 사망일자와 사망지역이 정리된 피징용사망자 연명부 문서가 있으며, 유골과 유발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남양척식주식회사가 앙가우르 광업소로 끌고 갔다가 희생당한 뒤 유텐지에 보관되어 있는 유해 중에는 출신지가 청주인 사람이 많은 걸 문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땅과 유황도나 트럭섬이나 남태평양 바다를 떠돌고 있습니다. 관광지가 되어 버린 팔라우섬에 조선인들이 만들었다는 '아이고 다리' 근처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모질게 힘들었으면 다리 이름이 우리말 '아이고'였겠습니까? 아버지는 그날 억수처럼 쏟아지던 비가 돌아가신 분들의 한 맺힌 눈물일 거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2009.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