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바람의 목례]
(애지, 2006년 4월 18일)
<바람의 목례>는 제주의 빼어난 서정을, 그리움과 사랑, 서사와 자기성찰을 작품으로 벼린 짱짱한 시집이다. 시인은 타자와 섞이며, 뒹굴며, 같이 하며 자신의 새로운 생성을 열어간다. 그 타자들은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이고 눈색이꽃이고 정선시장 할마시고 섯마파람이고 시인의 제자들이고 제주이다.
시집의 첫 시로 모셔진 ‘유도화’는 제주에만 있는 독성 강한 꽃으로 그 독성은 시인의 애틋한 내면세계와 일맥상통한다. 난바다를 헤엄쳐온 지친 어선의 잔등 껴안아줄 쇠한 기운조차 바닥난 지 이미 오래인 야윈 등대를 닮은, 불면의 충혈된 눈 홉뜨고 진종일 눅진 방파제 바닥에 등 한 번 편히 붙여보지도 못한 채 밤새 허리 꼿꼿이 세워 목백일홍 같은 열꽃 전신에 툭툭 터트리며 직립의 그리움 빚어 밤마다 저 둥근 선 밖을 향해 수신으로 띄워보내는 바보 같은 등대를 판박이로 닮은 시인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러한 지독한 사랑이 죽은 자의 뼈 바숴지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는 환청을 낳는 걸까. “하루에도 수백의 시조새”들이 승객과 화물을 실어 이착륙을 시도하는 ｢정뜨르 비행장｣. 1948년 4.3 민중항쟁 당시 미군정과 군경 토벌대가 북제주군 관내 무수한 양민을 재판한다는 구실로 도두봉 가까이 위치한 자그마한 군비행장으로 끌고 와 사살한 후 구덩이에 매장해버렸다는 최대의 학살현장이 바로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활주로 밑에 깔린 원혼들의 뼈가 육중한 동체에 짓눌려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심히 괴로워 “몸 뒤척일 때마다 들려오는 뼈들의 아우성”에 불변의 밤을 밝히는 시인이 김수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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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1959년 제주 출생. <실천문학> 1호에 ｢어머니｣외 3편으로 등단. ‘깨어있음의 시’ 동인 및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산문집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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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지삿개에서
그립다, 는 말도
때로는 사치일 때가 있다
노을구름이 산방산 머리 위에 머물고
가파른 바다
漁火 점점이 피어나고
바람 머금은 소나무
긴 한숨 토해내는 순간
바다끝이 하늘이고
하늘끝이 바다가 되는 지삿개에 서면
그립다, 라는 말도
그야말로 사치일 때가 있다
가냘픈 털뿌리로
검은 주검처럼 숭숭 구멍 뚫린
바윗돌 거머쥐고
휜 허리로 납작 버티고 선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
::추천글
김수열의 시는 참 따뜻하다. 창틈으로 들어온 햇살처럼 마음을 녹인다. 그는 아픈 이야기도 편하게 한다. 눈물 나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한다. 웃으며 읽다가 눈가에 눈물 어리게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도 거창하게 말하지 않고 진솔하게 말한다. 목소리에 공연히 힘주지 않고 담백하게 말한다.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至人)은 평범하고(只是常), 참맛(眞美)은 담백한 데 있다.(只是淡)”고 하는데 김수열의 시가 그렇다. 곰삭을 대로 곰삭은 삶에서 우러난 깊은 맛을 지닌 시들이다.-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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