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언어가, 농민의 눈물과 웃음으로 빚어낸 한 편의 거대한 서사
소설가 한상준의[강진만]
(온누리, 2006년 2월 20일)

지금 농촌과 농민의 삶은 어떠한가? 최근 ‘한미 FTA 협상’으로 결딴이 날 지경이다. 살을 에는 듯한 세계화와 자본의 위력 앞에 그 어느 누가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주고 있는가? 거대자본가의 딸의 죽음에 온 세상이 들썩이지만, 정작 농민들의 죽음에는 냉랭하지 않는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연예인들의 1인 시위에 수많은 군중이 벌떼처럼 몰려들지만, 전국민의 목숨과도 같은 생명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농민들의 전국적 시위에는 애정어린 가느다란 눈길마저 찾기 힘든 현실 아닌가?

방송과 보도에서, 심지어 문학에서까지 사라진 ‘농업과 농민’. 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접근의 모습이 『강진만』이다. 한상준의 「강진만」 연작 7편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0여 년에 걸쳐 쓴 소설이다. 1995년은 농촌에선 쌀시장 개방과 폐농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 하여 ‘우르르꽝’이라고 불린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과 함께 종결되고, GATT를 계승한 새로운 세계무역기구, WTO가 공식 출범한 해이다. 그리고 2005년은 2004년 한·칠레 FTA 타결 시에도 예외로 두었던 쌀개방 비준안이 마침내 국회에서 통과돼버린 해이다. 공교롭게도 농업, 농민에게 폭설보다 더한 철퇴가 내려진 두 해를 사이에 둔 10여 년의 농촌 피폐화 과정을 해마다 한 편 꼴로 고스란히 소설로 담아냈으니, 이는 보고문학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한상준은 『강진만』을 통해 오늘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세 가지 소설적 접근법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첫째는 「곗날풍경-강진만 1」과 「낫과 예초기-강진만 2」에서처럼 가장 전통적이며 전형적인 농사꾼을 등장시켜 이농으로 와해돼 가는 농민들의 모습과 거기에 남은 고독한 노인네들의 고집스런 농촌사랑의 모습을 담아내는 경우다. 두 번째, 각성한 농민의 목소리를 통해 농업ㆍ농민문제를 드러내는 경우이다. 「유자밭-강진만 3」과 「‘쌀개방 찬반투표’ 조직화 사업에 관한 보고서-강진만 6」이 그 예다. 세 번째, 이 연작소설집에서 어쩌면 가장 시대착오적이면서도 가장 감동을 주는 소설 「1989년 11월 3일, 김창호-강진만 5」와 「땅에 이르는 길-강진만 7」등으로, 위 두 작품은 한 개인의 위대한 결단을 통한 농촌 정착 이야기를 묘파한 것이다. 남도땅, 질펀한 사투리가 흐드러지는 한바탕 언어의 축제를 보여준다.

한상준 1955년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지에 「해리댁의 망제忘祭」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책 속에서

춤 추먼서 싸워 왔응게, 이만침이나 젼뎌온 거시여. 글 안했으먼, 폴쎄, 까무라치고, 나자빠져 부렀제. 아, 뉘기라고, 논두렁, 밭고랑에다 뻘밭으까지 나댕기믄서, 허리 꾸부정혀 갔고, 숟가락 들 심조차 몸띵이서 빠져나가는 것 번연히 봄서나 촌구석으서 살라고 혔겄냐고. 징글징글헌 살림이제. 허지만, 여그맹키로 넉넉허게 사는 이녁들 어디 있능가, 찾어 봐. 그리도 여그게 사람덜이 사람 사는 것멩이로 사는 거시여… 없는 살림에, 어쩌고저쩌고 험시나도, 때 맞춰서 산으로, 들로 나댕기고, 이웃 챙기먼서 서로 감싸고… 이러코롬이라도 살았응게, 그리도, 지금까장 버텨온 거셔…. 우리 손지놈이, 접때게, 그 머시냐, 데모허다 잽히갈 적으도 나는, 며느리 앉히놓고, 그릿어. 종우딱지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른 벱인디, 가가, 그 중, 한 쪽 귀텡이럴 들고 나선 거싱게, 그리 알어라, 혔어. 며느리가 고개럴 까딱까딱 험스나, ‘어머니, 그리 알 납니다’ 허드라고. 고맙제, 고맙더라고…. 그거시 바로, 춤 추먼서 싸우는 그 노래 허고 맞는 거시기여. … 그러코롬 혀 왔응게, 그리도 안즉, 결딴나지 않고서나, 사는 거시여, 여그서.



::추천글

배곯던 염소처럼, 남들은 영어사전을 쭉쭉 찢어 씹어 먹으면서까지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있을 동안 대학시절 내내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순 우리말 형용사와 부사를 익히던 한상준의 억척스러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절묘하게 풀어내는 단어들마다 왜 그렇게도 핏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선연하게 와 닿는지를 그래서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친구의 소설에서 화자들이 나누는 대사가 왜 그렇게 감칠맛 나는, 우리들 정겨운 피붙이의 고망고망한 삶처럼 언제나 짜안하게 감동을 주는 것인지도…’ - 소설가 이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