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남북작가대회 결산] 문인교류 첫걸음…탈이념 과제

[세계일보 2005-07-26 20:30]

‘6·15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하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한 남북의 문인 200여명이 지난 20∼25일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분단 6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 남북의 내면 교류를 시작했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북한 단일문학단체(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과 통일문학상 제정을 비롯한 기관지 ‘통일문학’ 창간 등을 결의했고, 백두산 천지에서 장엄한 해돋이를 배경으로 시를 낭송하며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만큼 남북의 문인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도 많다. 분단 60년은 남북한의 정서에 깊은 골을 만들어 서로 다른 정서가 형성돼 있을 뿐 아니라 자유로운 문학행위의 한계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리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이번 남북작가대회 기간 동안 많은 일화들이 생산됐다. 그 일화들은 남북 작가들의 내면에 흐르는 피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주는 소중한 사례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은 남측 대표단 중 가장 연로한 이기형(89) 시인이 백두산 천지에서 쏟아낸 눈물이었다. 이기형 시인은 월북 시인 오영재를 부둥켜안고 “어머니를 북에 두고 내려온 나와 어머니를 남에 두고 올라온 당신은 같은 처지”라며 통곡했다. 베스트셀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57)씨와 북한의 대표적 작가 남대현(58)씨가 서울 돈암초등학교 동창인 것을 우연히 확인하고 감격적으로 포옹하기도 했다.

남쪽의 문병란과 김남주 시인을 특히 좋아한다는 동기춘(66) 시인은 문병란의 ’동소산 머슴새’를 즉석에서 낭송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남쪽에 처음으로 얼굴이 알려진 북쪽 최고의 시인 동기춘씨는 함북 명천 태생으로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20대에 평양으로 올라와 1966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내 고향의 새 노래’로 문단에 나왔다. 이어 대표시집 ‘인생과 조국’ 등을 펴내며 북쪽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활약해 왔다. 1970년대 이후 북한 시문학의 서정적인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남쪽 북한문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문학성을 지닌 이로 평가된다.

최근 맏아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냈다는 그는 “부모는 죽어도 묻고 돌아오지만 자식은 묻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며 “북쪽이나 남쪽이나 부모 자식의 정은 한결같을 것”이라고 쓸쓸하게 말했다. 명천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30리 떨어진 소읍의 도서관으로 책을 읽으러 다니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는 그는 “자고로 호랑이나 산삼은 묻지 않아도 한눈에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며 “가장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간 전체를 포용하는 문학이라는 인간학에 몰두하는 북과 남의 문인들이 만났으니, 우리들이 다른 어느 분야의 일꾼들보다 통일을 앞당기는 데 더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평양·백두산=조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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