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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하기 ' 남북작가대회' 가다] <중> 백두일월(白頭日月)
해와 달 함께 뜨는 장관에 넋잃고…
생각없이 한 말 엄중 경고 교양학습까지 받아
빨리→인치, 오징어→낙지 등 언어 괴리에 당혹
숙영지·삼지연 연못 등 곳곳 유일사상 흔적
이번 4박5일간의 방북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백두산 해돋이'였다. 그러나 백두산 일출을 보기 위한 등정길은 험난했다. 새벽 2시반에 기상을 해 백두산을 오르는 물리적 요건보다 관광으로 생각하는 우리 측과 성지순례라는 북한 측의 태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괴리감이 더욱 힘든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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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의 해돋이 장관에 넋을 잃었다. 동녘의 태양과 서녘의 만월이 함께 떠 천지의 푸른 못을 밝히는 대길상을 이루었다. 감동의 천지를 배경으로 시인 고은(오른쪽) 선생과 함께 섰다.
| 몇몇이 숙소의 통제 라인을 뚫고 나가 민간인과 감자를 구워먹다 잡히고 한 작가는 별 생각 없이 김정일보다 김원일(동행한 소설가) 이름이 더 좋다고 해 엄중 경고를 받았다. 백두산에 오르기 전 날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났다는 정일봉 밑 숙영지 귀틀을 찾아 기나긴 교양학습을 받아야 했다.
평양 만경대와 마찬가지로 백두산 숙영지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의 영정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교리처럼 나란히 걸려 있었다. 특히 부모가 어린 김정일을 안고 있는 그림은 성모자상을 연상시켰는데 북한의 유일주체사상은 종교보다 더 강력한 도그마를 지니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백두산은 인위를 피해 스스로 '수림천리 운해만리(樹林千里 雲海萬里)'를 이루어,무위자연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깔나무,자작나무,물싸리꽃,만병초,두메자운,매발톱,바람꽃이 앞다투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백두산에 이처럼 야생화를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는 눈이 덮이지 않는 짧은 기간에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두산을 오르는 버스에는 환한 보름달이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었다. 새벽 5시 마침내 우리 일행이 천지에 올랐을 때 해돋이가 시작되어 동녘의 태양과 서녘의 만월이 서로 만나 푸른 천지 못을 밝히는(明) 대길상을 이루었다. 해가 떠서 백두산의 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백두산신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데 해와 달이 함께 뜨는 장관을 보게 되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불교의 선가에서는 이런 현상을 조용동시(照用同時)라 하여 무명의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한 깨달음에 든 상태를 말한다. 이번 백두 등정은 우리 남북작가들도 각자의 좁은 시각을 버리고 하나의 큰 상상력으로 통일을 이뤄야 함을 상징적으로나마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번 남북작가대회를 통해 분단 이후 60년 동안 이질화를 걸어 훼손당한 모국어를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을 하나의 주된 과제로 삼았다. 언어의 낯설게 하기를 제일 먼저 느낀 것은 고려항공에서 발견한 '걸상띠를 매시오'라는 글귀였다. '빨리'를 '인치'로 '돼지족발'을 '돼지발족'으로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거위'를 '게사니'로 '오징어'를 '낙지'라고 했을 때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백두산 하산 길에는 선녀의 전설을 지닌 아름다운 삼지연을 보았으나 그곳에도 거대한 금신상을 방불케 하는 유일사상의 흔적물 앞에서 교양학습을 복습,보충학습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입력시간: 2005. 07.27. 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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