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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최근에 가장 감명 깊이 읽은 작품이 뭐냐고 물었다. 아마도 학생들은 이런 질문을 일종의 요식행위로 받아들여 따분했을 거다. 어쨌든 그 가운데 한 학생이 이광수의 <무정>이라고 답하기에 귀가 의심스러워 다시 물었으나 그는 여전히 그렇다고 답했다. 강의실은 금세 유쾌해졌다. 이 시대에 <무정>을 감동적으로 읽은 청년이 있다니.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나는 퍼뜩 무언가가 깨달아져 뜻밖의 고민에 휩싸였다.
나도 그렇지 않던가.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를 여전히 탐독하며 즐거워하면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나 오르한 파묵 등은 참을 수 없어하지 않던가. 그들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는 제국주의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독서마저 방해하지 않던가. 백년 가까이 된 작품에 감동하는 학생과 최소한 백오십년은 묵은 작품들에만 감동하는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라리 그 학생이 나보다 더 현실에 민감하며 세련된 감성을 지녔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김유정, 채만식, 이태준을 여태도 즐거이 뒤적거리면서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내가 감히…. 이런 식의 고민들이었다. 그 밤은 무척이나 막막했다. 그런 종류의 고민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어디에선가 나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밤을 지새울 누군가가 그리워서이기도 했다. 소설가의 각오만 그렇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딘가에 누군가 반드시 그대처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가 있을 것이며 어쩌면 그대들은 사는 동안 한 번도 서로를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삶이란 누구에게나 점조직 같은 것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동료가 누구인지 영원히 알 수 없는, 그러기에 누구를 만나든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하는.
<201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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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