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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리영희 선생은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선생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이었다. 민주와 자유 때문에 배고팠던 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양식인 동시에 비겁하고 나태한 정신을 두드리는 죽비이기도 했다.
내가 선생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건 몇 해 전 국군의 해외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서였다. 아마 그 시절에도 건강이 썩 좋지는 않았을 터인데 선생은 숨만 쉬면 입김이 휙휙 날리던 영하의 날씨를 견디며 묵묵히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 나는 선생의 얼굴에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을 달관했다고 일컬을 때 엿볼 수 있는 그런 순박한 형태의 표정을 찾아냈다. 그러나 오롯이 그러했던 것만은 아니다. 선생이 느낀 상실감도 엿보았는데 그건 바로 마땅히 우리 시대가 획득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영 우리 것이 될 수 없었던 정의,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선생이 당신의 저서에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들 가운데 한 가지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남쪽과 북쪽의 국방비를 비교할 때 국민총생산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율로 따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북쪽이야말로 전쟁광처럼 비치게 마련이다. 남쪽의 국방비는 국민총생산 대비 한 자릿수에 그치지만 북쪽은 두 자릿수이니 말이다. 그러나 국방비를 달러로 환산하여 총액만을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남쪽의 국방비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그럴 때 누가 전쟁광으로 비칠까.
더욱 가슴이 답답한 건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당연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허공을 밀어내면 새는 의도와는 달리 오른쪽이 아니라 영원히 왼쪽으로 돌 수밖에 없다.
<2010.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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