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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를 지니지는 않았으나 살다보면 이따금 가시적인 것 너머에 존재하는 신성을 느끼기도 한다. 수시로 환청을 듣는다거나 환각을 경험하지는 않지만 내가 속한 세계가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종교와 무관하게 어느 깊은 산 속 고찰의 경내를 거닐다가 문득 내게도 불성이라는 게 있는지, 있다면 왜 이처럼 비루한 형태인지 자문도 해보는 것이며 또한 한낮의 적막한 성당에 기어들어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은 채 스테인드글라스를 관통하면서 한결 신비로워진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울어도 보는 것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반성이 이루어지는 사원,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뉘우치고 다짐했을 사원에서 나 역시 오점투성이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부처와 예수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잘 몰라도 그 공간이 대신 기억해주기에 나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평화를 느낀다.
또한 내가 느끼는 평화는 굳이 그처럼 오랜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신자도 아닌 내가 가끔 그 해의 마지막 날 명동성당을 찾았던 이유는 그곳이 민주화의 성지이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가난하고 쓸쓸하면서 동시에 소심하고 비열한 영혼들도 위로받을 수 있을 듯해서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나지막하지만 장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였다.
최근에 누군가 그 신부님들에게 북쪽에 가서 순교하라는 식의 막말을 했다. 그들도 알 것이다. 지금도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공공연하게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꺼져버리라는 말들을 한다는 사실을. 민주를 갈구했던 사람들을 빨갱이라 일컬으며 증오와 적의를 담아 북쪽으로 꺼져버리라 했던 자들과 자신들이 똑같다는 걸.
<201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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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