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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얀 입김이 볼을 스치고 달아나던 겨울 밤 스산한 자취방에 돌아와 낡은 텔레비전을 켰을 때 나는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방송을 시청했다. 5·18특별법이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특별법이 발효된 지 한 달 만에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독재자가 골목에서 질 좋고 값비싸 보이는 외투를 입은 채 성명을 낭독하는 걸 보았다.
그로부터 십사년이 흘렀건만 독재자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외려 그와는 달리 여전히 독재자가 건재함을 알리는 믿을 수 없는 소식들만 들려왔다.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가리의 단편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치가 몰락한 줄 모르는 한 사내와 그 사내를 여전히 지배하는 한 나치가 등장한다. 이 소설이 씁쓸한 이유는 그 사내가 나치의 몰락을 알게 되었어도 여전히 나치를 두려워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치는 몰락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령 몰락했더라도 언제든 부활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로맹가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인류 역사에서 악이 근절된 경우란 없다. 몰락한 악은 새롭게 태어나고 다시 번창한다. 마치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벌레처럼 더 강력해져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독재자 하나쯤 건재하다고 해서 가치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까지 폄하될 이유는 없다.
다만 그의 존재가 그보다 더 강력하고 근성이 좋은 신종 악의 번창을 입증하기 때문에 씁쓸하다. 그리고 이 신종 악이 우리의 두려움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를 부활시킨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두려움이다. 언제까지나 되풀이될 그래서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새롭고 오래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독재자들의 파렴치한 스토리들.
<201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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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