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가장 큰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며 삽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기도 하고 넘을 수 없는 산이 가로 막혀 있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형과 아우 사이, 오래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 크고 무거운 불신의 벽이 생겨 있기도 합니다.

소중한 인연이었는데 갚아야 할 업연이 되어 버린 채 지속되는 관계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끝내버릴 수도 없는 처지라서 등 돌린 채 한솥밥을 먹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관계도 많습니다. 그 강물 곁에 등을 돌린 채 누워 나희덕 시인은 이런 물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싸운 것도 모르고
큰애가 자다 일어나 눈 비비며 화장실 간다
뒤척이던 그가
돌아누운 등을 향해 말한다

당신……자?……
저 소리 좀 들어봐……녀석 오줌 누는 소리 좀
들어봐……기운차고……오래 누고.....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당신이……

등과 등 사이를 흘러가는 물소리를
이렇게 듣기도 한다

담이 결린 것처럼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를 낯설어할 때
어둠이 좀처럼 지나가주지 않을 때
새벽녘 아이 오줌 누는 소리에라도 기대어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너야 할 때

---나희덕 '물소리를 듣다' 전문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를 낯설어 할 정도로 고통스러우니 등 돌린 채 한 이불 속에 있는 다른 몸은 또 얼마나 멀고 낯설게 느껴지겠습니까? 함께 보내야 하는 어둠이 얼마나 길고 힘들겠습니까? 이미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는지 오래인데, 그 강물을 어떻게 건너야 할 지 막막한데 그때 전혀 새로운 물소리를 듣습니다.

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입니다. 기운찬 그 소리를 남편도 듣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당신이......"

부인할 수 없는 이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마음을 다독이는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부처님은 자식을 고뇌의 씨앗, '라훌라'라고 했지만 업연의 소중한 열매이기도 합니다. 저것까지는 부인할 수 없어 다시 마음을 돌이킨 수많은 밤이 있는 거지요.

산속에서 혼자 수행하는 수도자의 길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함께 사는 길이 훨씬 더 어려운 수행의 길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던 강을 건넜든 건너지 못했든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다 지나온 사람이라야 삶이 무엇인지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009.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