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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여름이면 밥상이 단출했다. 그래도 좋았다. 지금과 같은 전기밥솥이 없던 때여서 밥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바람 잘 드는 부엌문 문설주에 걸어두었다. 그러면 이틀 정도는 밥이 쉬지 않았다. 마루에 밥상을 놓고 식구가 둘러앉으면 요란한 매미소리와 외양간에서 울리는 요령소리마저 입맛을 돋웠다. 지금이야 라면을 인스턴트식품이라고 해서 경원시하지만, 그 시절에는 라면이 귀한 간식거리였다. 누군가에게는 주식이기도 했다. 육상에서 금메달을 딴 임춘애 선수도 라면 먹고 뛰었다지 않은가.
어느 날 여름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먹게 되었다. 그냥 라면도 아니고 짜파게티라니. 자장면 한 번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골 촌놈의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엌의 풍로에 양은냄비를 올려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 그 이상이었다. 이윽고 물이 끓었다. 이런 중차대한 일은 가장이 맡아야 했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나는 구경만 하고 아버지가 다 했다. 면발을 넣었다. 짜파게티는 면이 다 익은 뒤 적당한 양의 물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말하자면 물을 따라 버리는 순간이 이 요리의 클라이맥스다.
얼마나 요령껏 물을 따라 얼마나 적당한 양을 남기느냐가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면발 아래 잠복한 물을 수프를 풀었을 때에야 발견할 수도 있었다. 라면 하나 끓이면서 웬 호들갑이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랬다. 정말 호들갑이라도 떨지 않고서는 초조해서 죽을 것 같았다. 알뜰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짜파게티 끓인 물을 사골국물이라도 되듯 조심히 다뤘다. 이걸 어떻게 그냥 버리냐는 것이다. 해서 아버지는 냄비째 들고 여물통에 다가가 물을 따랐다. 지켜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냄비 주둥이에서 간당간당하던 면발이 덩어리째 여물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면발을 건져내 찬물에 씻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날 점심 짜파게티는 맛있었다.
<2009.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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