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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문장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문장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이든 상관은 없다. 책에서 읽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스스로 고안해 낸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남들에겐 하찮을 수 있어도 자신에겐 소중한 그 무엇일 것이다. 그 문장은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불려나온다. 평소 가슴 속 깊이 웅크리고 있다가 제 주인이 절망하여 쓰러지기 직전 스스로 걸어 나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문장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문학 혹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곁눈질로라도 한번쯤 읽어 보았을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발견한 것이다. 내가 소설가를 꿈꾸던 문청시절 이미 문학은 명성을 잃었고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품이 되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마저 수치스러웠던 때였다. 그때 나를 위로해준 건 ‘역사의 진보에 바치는 예술가의 봉사란, 그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확신하고 어디에 동조하느냐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사회적 현실의 문제와 모순을 얼마나 힘차게 제시하느냐에 있다’라는 문장이었다.
올해는 한 시대가 무너져가는 해인 듯하다. 추기경과 전직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며칠 전 우리가 보낸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우리 가운데 정치인의 이런 언사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수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이가 말하면 믿어졌다. 왠지 그이는 진심일 것만 같았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나조차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한 사람이라고 속삭여주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부하고 평범한 말조차 가치있고 특별한 문장으로 바꿔놓는 사람을 시인이라 한다면 그이는 우리가 다시 만나기 힘든 정치하는 시인이었던 게 아닐까.
<200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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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