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지방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대전에서 열차를 내려 택시를 탔습니다. 밤이 깊어 버스는 이미 끊어졌고 택시를 타야 청주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는 사만 원을 달라고 하고 나는 삼만 오천 원에 가자고 흥정하다 택시기사가 양보하여 삼만 오천 원에 청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기사는 친절하였습니다.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길로 가야할지 물을 때도 내 입장을 존중했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전을 하면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음악의 볼륨을 어디까지 낮추는 게 좋은지도 배려하며 물었습니다. 자기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난폭운전을 하는 총알택시 기사들과는 달랐습니다.

나는 집 앞에서 내리며 "고맙습니다, 편안하게 잘 데려다 주셔서." 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택시요금을 받아든 기사는 "무슨 말씀을요, 제가 더 고맙지요." 하며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습니다. 기분 좋은 밤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택시를 불러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였으니 내가 이 여정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택시 기사는 자기 차로 데려다 준 나를 손님이라고 생각하니 자기가 주인인 셈입니다. 이런 경우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일까요? 법륜스님은 먼저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이 똑같이 콩밭을 맸다. 맬 때는 누가 주인인지 모르지만, 끝나고 나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는 사람이나 먼저 돈 주는 사람이 주인이다. 똑같이 무엇을 했을 때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자꾸 다른 사람 탓하지 마라.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야, 설악산 봐라. 참 이쁘다."하면 설악산이 좋은가, 내가 좋은가. 내가 좋다. "야, 저 꽃 정말 이쁘다." 그러면 내가 좋은가, 꽃이 좋은가. 내가 좋다.

법륜스님이 어떤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나는 그렇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먼저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그 상황의 주인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주인이었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공장과 기계를 가진 이가 주인이었고,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자본을 가진 이가 주인입니다. 지금도 토지나 돈이나 건물을 가진 이가 옛날로 치면 지주이고 주인입니다. 외형상으로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가졌다고 모두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고마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할 줄 아는 이가 주인입니다. 그가 먼저 고개 숙이면 그에게서 급여를 받는 이들이 다 고개 숙여 그에게 인사할 것입니다. 남들이 마음으로 그에게 고개 숙이는 이가 주인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고마워하며 사는 이가 주인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내가 속해 있는 문인단체에서 급여 없이 일하지만 행사가 끝날 때마다 함께 일 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내가 이 단체의 주인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화통화를 끝낼 때도 자주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어떤 때는 고맙다는 말을 구태여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그 사람 자체가 내게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꽃 정말 이쁘다 그러면 내가 좋은가, 꽃이 좋은가. 내가 좋지 않은가"하고 법륜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마워하며 살면 내가 행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2009.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