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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좀 별난 친구 한 녀석이 내공을 쌓는답시고 날이면 날마다 물그릇에 나뭇잎 한 장 띄워놓고 노려보는 연습을 하더니-내가 보기엔 분명 녀석의 콧바람 때문에 움직였건만-드디어 기를 운용할 줄 알게 되었다며 실전에 나섰다. 친구는 신작로에 나가 마침 달려오던 차를 향해 장풍을 쏘았고 거짓말처럼 차는 길을 벗어나 논두렁에 처박혔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웬 꼬마가 길 가운데로 튀어나와 장풍 쏘는 시늉을 하자 인명사고를 피하려던 운전자의 고육지책이었건만-이 사건 이후로 친구는 오래도록 자신이 장풍을 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그 사건의 예외성 혹은 우연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비단 저 옛 친구의 경우만은 아니다. 사실 요즘은 나 역시 지금 맞닥뜨린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우연으로 치부하길 주저하게 되었다. 22조원을 쏟아부을 거라면서도 대운하가 아니라며 발뺌하는 것도 그렇고, 한낱 현장 지휘자에 불과한 자가 영정사진을 짓밟았노라 주장하는 것도 그렇다. 예외이며 우연이어야 할 일들이 왜 이토록 보편적이며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풍을 쏠 줄 안다고 우기던 친구는 귀엽기라도 했다. 그런 우연은 우리 삶에 끼어든 드문 위안이기도 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제 누구나 장풍을 쏠 줄 안다. 설마 했던 일들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로 밝혀진다. 아마도 이럴 거야,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게 그대로 이루어진다. 예언하기 퍽 쉬운 시대다.
누구나 예언자가 될 수 있는 축복 받은 시대다. 예외적인 사건과 우연성을 상실한 시대는 비밀이 없는 사람처럼 남루하다. 착각하지는 말자. 비밀이란 밝혀지는 순간 비밀의 소유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그 무엇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건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비열한 거다.
<2009. 6. 9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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