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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는 후텁지근하더니 저녁에는 바람이 선선합니다. 내일 유월 이십육일은 백범 김구선생이 서거하신지 6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평생 일제와 맞서 싸우신 선생은 이국땅에서도 그들의 총칼을 피할 수 있었지만,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뒤 동족의 손에 의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민족의 비극이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구선생의 호 백범(白凡)은 하층민 백정(白丁)과 평민인 범부(凡夫)를 의미합니다. 선생은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내가 믿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 온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대는 교만한 세상에 김구선생의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 싸움이 그치지 않고 미움과 분노와 적개심과 근거 없는 모함과 질시가 많습니다.
김구선생은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듯,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할 징조이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에는 온화한 기운이 있고 몸에서는 어진 향기를 발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구선생이 소망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길로 가면 망할 것이라는 선생의 말씀이 예언의 회초리가 되어 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김구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선생은 평생 일제의 무력침략에 시달리며 고생을 하셨지만 가지고 싶은 것은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김구선생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지도자이십니다. 남에게 핍박을 받거나 조금이라도 해코지를 당하면 바로 응징을 하거나 복수를 꿈꾸는 우리들과는 근본적으로 생각의 깊이가 다릅니다.
지금 북쪽은 군사강국을 꿈꾸고 남쪽은 경제대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북쪽은 핵으로 무장한 채 미국에 맞서 국가를 보위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군이 정치의 선봉에 서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선군정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남은 경제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 개발지상주의로 정치를 이끌어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남북 모두 무력과 경제력이 지금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굴에는 온화한 기운이" 사라진지 오래고 "몸에서는 어진 향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김구선생은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지금 우리가 그렇습니다.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는데 정반대의 길, 극단적 대립의 길, 전쟁도 불사할 것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어리석은 우리들은 육십 년이 지나도 아직 뉘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200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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