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푼수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막 부임한 젊은 도덕 선생님의 별명이 그러했는데, 그 선생님과 내가 죽이 맞는다고 친구들이 내게도 같은 별명을 붙였다. 선생님과 나는 그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때까지의 별명이었던 방귀쟁이를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여학생 반에서 매달 인기투표를 했는데 그때마다 두 푼수가 일등 자리를 놓고 다투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 즈음이었다. 선생님이 과연 노동자냐 아니냐는 논쟁이 불거졌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게 아니지만, 선생님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라 선언하는 순간 빨갱이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음을 고려할 때, 그건 퍽 중요한 문제였다. 한가로운 시골 중학교에 납덩이보다 무겁고 콜타르보다 끈적이는 불쾌한 침묵이 똬리를 틀었다. 교정을 지나는 무심한 바람조차 서슬이 푸르렀고, 운동장에서 피어오른 먼지는 기이하게도 최루성이었다. 깃대에서 국기가 소리 없이 펄럭였고 햇살은 종작 없이 위인들의 동상에서 미끄러졌다. 폭풍우가 몰아쳤더라면 그런 심사가 덜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눈부시게 맑은 날 외려 더 큰 슬픔을 느끼기도 하는 법이다. 평소 스스럼없던 도덕 선생님이 과묵해졌다. 스승은 노동자가 되어서는 안 되냐고 여쭈었다. 선생님의 안절부절못하던 눈빛을 스무 해 저쪽의 일이건만 여태도 기억한다. 하필이면 왜 그 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었을까. 선생님도 노동자라고 말할 수 없었던, 스스로를 기만하며 변명을 늘어놓을 줄도 몰랐던, 그 시절 겨우 이십대 후반이었을 선생님. 그것은 사태였다. 폭력과 몰염치가 정의가 되었던 그 사건을 사태 말고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뒤 우리는 젊은 도덕 선생님을 푼수라고 부를 수 없었다. 고통 받은 영혼을 푼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유머가 풍부하지 못해서였다. 한 번 금이 간 영혼을 본디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이렇게 푼수 선생님, 입속말로 불러볼 뿐.

<2009. 6. 30 손홍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