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노제가 있던 날, 경복궁에서 시청을 바라고 걷다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슬픔을 못 이겨 식음을 전폐한다는 건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안 그래도 충분히 궁상맞은 게 나란 녀석이다.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고 아침까지 걸렀던 터라 먹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을 듯했다. 든든히 속을 채우고 다시 사람들에 합류했다. 시청 부근에 다다랐을 때 운구행렬이 경복궁을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아니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오로지 앞 사람의 뒤통수밖에 보지 못했다. 울고 싶은데, 붙잡고 싶은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한 사람의 영면을 위해 한데 모여 오월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견뎌내는데 벌써 지치다니, 어쩌자고 나는 이토록 허약하단 말인가.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사람들 틈에 꽉 끼어 그럴 수도 없었다. 남들은 눈물로 젖었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땀에 젖었다. 운구 행렬이 시청 앞 광장을 빠져나가자 사람들도 서울역 쪽으로 움직였다. 서울역 앞에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 즈음 다시 허기가 찾아왔다. 기운이 빠져 무릎이 푹푹 꺾였다. 밥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였을까. 밥 한 그릇이 못내 사무쳤던 게. 먼 길 떠나는 이에게 더운 밥 한 그릇 먹이며 수다한 이별의 말을 갈음하기 시작했던 게.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랫목 이불 품에 앙궈둔 밥 한 그릇,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이의 피톨이 되어 흐를 부드러운 밥알들을 품었던 아랫목들. 여태도 이불을 걷으면 고이 모셔진 밥 한 그릇 있을 듯한데, 이제 더는 정성들여 지은 밥 한 그릇 받아볼 수 없는 먼 길을 훠이훠이 나서버린 그이 아니던가. 하지만 서울은 더는 허기를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서울의 내장인 저 도로와 서울의 위장인 시청 앞 광장은 텅 빌 새가 없을 테니 날마다 든든할 거다. 배고픈 사람들은 그렇게 허기를 달래는 법이라고 일깨워주기도 하면서.

<2009. 6. 2 손홍규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