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4·29 재·보선에서 진보 양당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 울산 북구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전 의원의 당선은 민주노동당과 단일화를 통해 성취한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민주노동당 역시 성과는 있다. 민주당의 아성인 호남지역에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당선시킴으로써, 풀뿌리 진보정치의 분명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영향력과 대표성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시기를 거쳐 오는 동안 한국의 진보정치는 항상 '비판적 지지'와 '지역주의'의 압력에 밀려 유력한 정치지형을 형성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재·보선에서 진보 양당의 선전은 위기에 빠진 진보정치의 혁신과 강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 낙관하게 된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강력한 정치적 세력화 및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암초도 많다. 일단 진보 진영의 고질적인 정파적 파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오늘의 현실은 신자유주의만 몰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진보 진영 내 다채롭게 분화된 정파적 갈등과 대립도 지양해야 할 시점이다. 선거 국면에서는 서로 조심하더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노동당에 대해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거론하며 불필요한 비난을 가하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의 행태는 그래서 안쓰럽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은 꽈배기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비판과 분단체제 극복은 진보세력 공통의 연대로 해소해야 할 난제다. 한 줌의 세력에 불과한 진보정당끼리 학생운동 때나 했을 법한 낡아빠진 정파투쟁을 재연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오히려 진보정치 세력들은 쪼개진 양당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87년 체제의 종언과 함께 새롭게 직면하게 된 진보 진영 내부의 근본적인 혁신과 성찰, 대안 담론과 프로그램을 치밀하게 모색해야 한다. 민주노조 운동의 전개에 있어 강령처럼 간주된 '노동자 중심성'이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면서 노동 형태 역시 물질노동에서 비물질노동으로 대거 변화했고, 고용구조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양립해 내부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계층의 물질적 수준 역시 일부는 중간계층으로 상승하는가 하면 다수는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등 양극화가 발생함으로써, 노동자 정체성 역시 산업화 시기 노동자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오늘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 내부에서 운동방식이나 담론의 틀은 전혀 변화가 없고, 진보의 재구성은 말뿐이다. 특히 진보정치에 대한 열망을 스마트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청년세대를 포함한 후속세대가 진보 진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보세력 역시 보수세력과 마찬가지로 황혼기에 직면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뼈저리게 자각해야 한다.

오늘의 진보정치 세력들이 지향하는 구체적인 정치적 전망과 이상화된 비전은 무엇인가. 지금 진보정치에 필요한 것은 화끈한 정파투쟁이 아니라 성숙한 비전 제시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한국사회당 등 진보정치 세력이 적어도 정책연합의 장에서는 공통의 어젠다를 창출하려는 연대와 협동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9. 5. 7 문학평론가 이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