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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가 마이다슈이치는 "자연의 이치는 삶의 이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자연만물 속에는 삶의 이치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자연현상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혜가 들어 있고, 삶의 이치가 들어 있다는 이 말을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꽃과 나무의 변화, 산과 들의 움직임 하나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꽃과 나무와 산이 내게 하는 말이 들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 소깔를 베껴 적는 게 내가 쓰는 글이요 시라고 생각합니다.
18세기 조선 문단을 대표하던 이가환선생은 "자연은 기이한 빛깔을 소유하고, 인간은 그것을 빌려다 쓴다."고 하였습니다.
"자연의 빛깔을 빌려 쓰는 사람 가운데 솜씨가 가장 모자란 자가 바로 비단 짜는 여인이다. 낮이면 햇볕에 말리고 밤이면 달빛에 말린 뒤, 팔 힘을 뽐내며 북을 던져 날마다 몇 치씩 비단을 짠다. 그 현란한 빛깔이 사람의 눈길을 빼앗는다. 그러나 그 비단을 가져다 옷을 만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무튀튀하게 색깔이 바랜다. 만들기는 너무도 힘이 들건만 망가지기는 쉽다. 그래서 실 잣는 여인은 괴롭기만 하다.
자연의 빛깔을 빌려 쓰는 사람 가운데 약간 약은 꾀를 가진 자가 바로 시인이다. 봄바람을 불러다 정신을 만든 다음, 밝은 노을로 꾸미고 향수도 뿌리며, 비취새의 깃털과 찰랑거리는 옥구슬로 갖가지 장식을 한다. 그러나 제 심장을 토 자연의 빛깔
해서 시를 쓰고 나면, 영락없이 인간들은 시기하고 귀신들은 화를 낸다. 시를 잘 쓰기는 어렵건만 곤궁한 처지가 되기는 쉽다. 그래서 시인은 괴롭기만 하다.
그러니 그 누가 기원(綺園)의 주인보다 낫겠는가? 자줏빛, 비취빛, 옥색, 담황색, 단향목색, 저물 때 피는 꽃, 새벽에 피는 꽃, 갠 날 피는 꽃, 비올 때 피는 꽃 등등. 온갖 꽃이 찬란하게 어우러져 빛깔을 뽐낸다. 이렇게 진짜 정취로 진짜 빛깔을 대하므로 그 무엇과 우열을 다투겠는가? 그렇지만 주인은 화훼의 위치를 안배하고, 심고 접붙이고 물을 뿌리고 물길을 터주며, 흙을 북돋고 가지를 쳐내는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 동산에 꽃이 한창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흔연히 찾아가서는 온종일 마음 편하게 꽃구경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으랴!" ---이가원 「기원기」 중에서
기원이란 화원 즉 꽃밭을 말합니다. 이가원 선생은 기원에 대해 글을 쓰면서 비단 짜는 여인, 시인, 꽃밭 주인 세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빌려 쓰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비단 짜는 여인은 꼭두서니와 쪽물감으로 물들여 현란한 빛깔로 사람을 사로잡으니 자연의 빛깔을 빌려다 쓰는 것이지요.
시인은 봄바람을 불러다 정신을 만들고 밝은 노을로 꾸미고 새의 깃털로 장식을 해서 시를 지으니 그 역시 자연의 빛깔을 빌려다 쓰는 사람입니다. 꽃밭 주인은 이름난 화훼를 심고 가꾸어 온갖 꽃이 찬란하게 어우러져 빛깔을 뽐내게 하니 그도 자연의 빛깔을 빌려다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빛깔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괴로운 날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니 괴로운 그들보다 온종일 마음 편하게 꽃구경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지 않는가 하고 이가원 선생은 묻습니다. 자고 나면 또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봄입니다. 자연의 빛깔을 지니려 애쓰지 말고 자연의 빛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행복해지는 봄이기를 바랍니다.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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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