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집으로 오기 위해 종로 3가에서 3호선 전철로 갈아탔습니다. 앞자리에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남자들 몇과, 희고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웃으며 전화통화를 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몇 정거장 지나면서 옆 사람들이 내리고 나니 몸집이 크고 뚱뚱한 사내들이 옆에 차례로 앉았습니다. 조금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대로 끼어 앉아 있었습니다.

다시 전철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 몇이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타고, 맨 뒤에 장애인이 앉은 전동휠체어가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앞바퀴가 천천히 들어오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휠체어가 기우뚱하고 뒤로 넘어가더니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전철역바닥으로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휠체어 작은 뒷바퀴 두 개가 전철역과 전동차 틈 사이로 빠지면서 뒤로 넘어진 것입니다.

남자들 몇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습니다. 만약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전철이 출발하면 장애인은 전철에 끌려가다 죽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휠체어는 남자들 대여섯이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사람을 먼저 빼 내자는 소리가 들렸고 장애인을 묶고 있는 몇 개의 벨트를 끌러 그를 휠체어로부터 끄집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빈 휠체어를 들면 가볍게 올라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119에 연락을 취하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119가 달려와 쇠톱으로 휠체어 바퀴를 절단하는 작업을 한다면 이삼십 분 아니 그 이상 시간이 걸릴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때 역무원이 소리를 쳤습니다.

"여러분 다 나오셔서 같이 전철을 밀어봅시다!"

그때까지도 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들, 지켜보면서 초조해 하던 칠팔십 명 가까운 승객들은 모두 나와 한 줄로 붙어 서서 영차영차 하며 전철을 밀었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여성도 긴 다리로 서서 밀었고, 무뚝뚝하게 앉아 있던 남자들이나 술 한 잔 걸치고 퇴근하던 중년의 직장인들도 힘을 합해 전철을 밀었습니다. 전철이 휘청하고 옆으로 밀리는 한순간 휠체어가 남자들의 손에 의해 쑥 빠져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은 "와"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고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죄송하다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승객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전철은 남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옆 자리에 앉은 보라색 점퍼를 입은 뚱뚱한 남자에게 "수고 하셨습니다."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화장지를 꺼내 내밀었고 우리 둘은 손에 묻은 휠체어의 기름을 닦았습니다.

매일 매일 타고 다니는 전철에서 우리는 무수한 타인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있고, 경계의 울타리가 있고, 다가오지 말라고 그어둔 금이 있습니다. 시선이 오는 것도 불편하고,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고, 태도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 공동 운명으로 바뀔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오늘 같은 날 확인합니다. 우리는 공동의 운명을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입니다. 함께 힘을 합쳐야 곤경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이웃입니다.

앞에 앉아 있는 아가씨가 못마땅하다는 것도 내 편견입니다. 옆에 앉은 뚱뚱한 사람이 불편하다는 것도 나만 생각하는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입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리며 나는 옆 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타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해 소중한 걸 배웠습니다. 돌아오는 시간은 조금 늦었지만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200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