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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에서도 사월의 봄 풍경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의 연록색 새순이 올라오는 산의 모습이 멀리서보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버드나무 단풍나무 연두색 어린잎과 연분홍 산벚나무 꽃이 서로 어울려 피어 있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루에는 아침, 일 년 중에는 사월, 인생에는 어린 시절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신생의 빛, 새롭게 떨치고 일어서는 생명의 아름다움, 무한한 가능성을 항해 막 걸음을 떼게 시작하는 출발의 설렘이 뿜어내는 밝은 기운이 있습니다.
그 기운을 받은 우리들도 설렙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누군가를 만나러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들뜨기도 합니다. 가슴 속 어딘가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신동엽시인은 아예 "미치고 싶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껍질을 찢고 푸르게 돋아나는 속잎을 보면서 미치고 싶었고, 동학의 함성, 사월 혁명의 승리를 생각하면서 미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갈아엎고 싶다고 합니다. 진달래는 화창하게 피어 잿빛 산을 분홍빛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데, 죽음의 빛깔에서 생명의 빛깔로 몸을 바꾸는 산천과는 달리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이 꺼지 않는 죽음의 세상을 갈아엎고 싶다고 합니다.
알맹이인가 싶으면 껍데기였음이 확인되는 사람들, 믿을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사람들, 그렇게까지는 타락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썩지 않는 곳이 없는 세상을 보며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신동엽시인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부패의 크기와 범위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고 하지만 부패에 빠져드는 속도나 성향에 있어서는 신동엽시인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꽃과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 벌써부터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사월은 갈아엎는 달입니다. 이왕이면 더 철저하게 갈아엎었으면 좋겠습니다. 봐주는 곳 없이 모두 갈아엎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편은 갈아엎고 내 편은 감싸 덮는 쟁기질로 끝나지 말고 부패한 땅은 모두 갈아엎는 사월이 되길 바랍니다.
미치고 싶었다. / 사월이 오면 / 산천은 껍질을 찢고 / 속잎은 돋아나는데, / 사월이 오면 /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 우리네 조국에도 / 어느 머언 심저, 분명 /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
미치고 싶었다. / 사월이 오면 /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 광화문서 목 터진 사월의 승리여, / 강산을 덮어, 화창한 /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며 /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 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 / 보리를 뿌리면 /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일어서는 달.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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