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발표·토론통해 동질성 확인 天池서 `통일문학 새벽` 기원

[문화일보 2005-07-26 15:14]

소설가 방현석씨 남북작가대회 참관기

지난 20∼25일 평양 등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에 참가한 소설가 방현석(44·중앙대교수)씨가 참관기를 보내왔다. 실무협 상팀으로 17일 먼저 방북해 행사를 준비했던 소설가의 눈을 따라 광복 이후 60년만에 남북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행사의 풍경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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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나는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 JS 152 편 비행기 안에 있었다. 11시 55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오후 1시 5분에 압록강을 건넜다. “여러분들은 지금 압록강을 건너고 있 습니다.” 안내방송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자욱한 안개 뿐이었다. 한번도 발디뎌본 적 없는 분단조국의 북측 국경을 넘 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내 손에는 아직 두 개 항목을 채우 지 못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입국신고서가 들려 있었다.

국적? 여러 나라를 드나들면서도 고민한 적이 없는 이 항목이 문제가 됐다. 대한민국, 한국, 남한, 남조선…. 15분후 평양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나서 나는 ‘남’이라고 썼다. 마 지막으로 비어있는 항목은 민족이었다. 민족? 한국민족, 조선민 족, 배달민족…. 어느 표현도 적합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뭐라고 써야 하는지 물었다. 김일성주석 배지를 단 젊 은여성은 자신의 입국신고서를 보이며 대답했다. 조선사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쓸 수 없었다. 평양공항에 도착하기 직전에 나는 ‘우리민족’이라고 써 넣었다. 이것이 분단이다.

분단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단이 가져다 준 분열이 우 리의 삶 어디에나 있다. 정말 슬픈 일은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분단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문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남북작가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평양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입국신고서’는 우리문학이 감당하지 못?萬?질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일깨워주었다.

공항에 도착한 뒤 곧장 고려호텔로 직행해서 ‘문건협의’에 들 어갔다. 입국신고서의 국적란을 채우는 용어가 다른 만큼 문건의 내용과 표현들도 서로에게 낯설었다. 대회 기간 동안 공식 행사 에서 발표될 문건은 34개였다. 문건협의가 끝난 것은 이튿날 새 벽 4시 반. 하지만 몇 가지 내용과 표현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 지 못했다.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식당에 내려갔는데 남측대표단을 태우고 올 비행기가 아직 서울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짙은 안개 때문이라고 했다. 불안감이 스쳤다. 지난해 8월로 합의했다 가 11개월 동안 연기한 끝에 열리는 대회였다. 9시 반이 넘어서 고려민항기가 서울로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본대가 도착할 때 까지 대회일정을 협의했다. 그러나 대회 일정은 해외 동포문인의 대표성 문제로 처음부터 차질이 발생했다.

하지만 실무협상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면 서 냉랭하던 분위기도 뜨거워졌다. 남북의 작가들은 허물없이 어 울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문학에 대해 물었다. ‘황진이’를 쓴 홍석중, ‘청춘송가’를 쓴 남대현은 남쪽에도 잘 알려진 만 큼 술잔이 많이 몰렸다. 내게 가장 반가웠던 사람은 백남룡이었 다. 10여년 전 ‘벗’과 ‘60년후’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첫 만남이지만 우리는 기쁘게 술잔을 나누었다.

고은, 황석영과 더불어 북쪽 작가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작가는 단연 정지아였다. 지난해 ‘행복’과 같은 빼어난 소설을 쓴 그 녀의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많은 북측 작가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23일, 백두산 천지에서 열린 ‘통일문학의 새벽’은 장엄하게 떠 오르는 해돋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해와 서쪽하늘로 기우는 달이 같은 높이로 떠 있는 순간, 대회의 절정 을 장식한 김남주의 시 ‘조국은 하나다’가 백두산에 울려 퍼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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