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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김미승
머리가 굵은 멸치는
그냥 먹기엔 꺼림칙해
머리 떼고 똥 발라내면
고분고분해져
밑반찬으로 제격이다
머리 따로 마음 따로
간 쓸개 빼놓고
살아온 지 오래다
누군가의 밑반찬이 되기 위해
꼬들꼬들 말려온
비린 날들이여
무엇을 보았나
멸치의 휘둥그레 박제된 눈
찰칵, 찰칵, 멸치의 일생이 슬라이드 된다
바다가 지척인데
바다를 찾을 수 없다, 큼큼
바탕화면 속에 끊임없이 유영하는
빅 피쉬 한 마리
머리 떼이고
오장육보 다 내놓고서야
나는 비로소 빅 피쉬가 되었나
아주 조금씩 깨물어 먹는
김미승
사과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사과 꽃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네
내가 사는 곳에선
사과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걸
간신히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더욱 사과를 좋아하게 되었지
사과 향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로 와
겨운 봄날을 풀어놓고는 소문처럼
주저리주저리 역사를 만들었네
사랑한다면서 다 주겠다면서
한 번도 너를 제대로 본 적 없네 나는
사과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과 향기가 좋았을 뿐이라고
향기로운 고백을 할 때까지
나는 내내 나만 사랑하고
너는 내내 너만 사랑했네
아주 조금씩 깨물어 먹는
시큼하고 달큼한 이 사과 향기,
내 발바닥 마지막 실핏줄 하나까지
물어물어 찾아가 뿌리 내리는
지금, 내 몸은 온통
사과 밭 천지네
약력: 1999년 계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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