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부도동창회
안명옥
뻘을 입 안 가득 물고 있는 조개의 해감을 빼고
친구들은 불판 주위로 모여든다
여기저기 조개 굽는 냄새, 전어 굽는 냄새
조개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 동창들
조개 몸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스스로 제 몸을 열어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누구는 미소를 짓고 누구는 침을 흘리고 누구는 담배를 문다
전어가 익어갈 무렵
집 나간 며느리도 이 전어 굽는 냄새에는 돌아온다는데
몇 해 농사짓다 집 나간 아내가 그리운지 영재는 전어를 정성껏 뒤집는다
성질이 급해서 서울까지도 못 온다고 전어를 고향에 와야 맛본다며
학수는 자꾸 전어를 찜해둔다
짜디짠 바다가 비릿한 바다가 날마다 출렁이는 바다가 싫어서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와 어망을 손질하다 나온 기찬이는
물 온도가 바뀌어 자꾸 물고기가 바뀌듯
삶의 온도가 바뀌며 동네 커피숍 미숙이가 가고 다른 미숙이가 왔단다
거리에서 만나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얼굴들을 하고서
밀물과 썰물에 시달리다가 머리가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모래톱에 새겨진 물주름이 목에도 새겨진 얼굴들
서로 위로한다 너 더 예뻐졌다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사랑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던데 너는 사랑 많이 하나보다
언제 왔는지 동렬이가 내 어깨를 치고 밀물처럼 들어와 앉고
추억의 풍랑 심한 파도에 시달리는 동안 몸에 새겨진 목소리들이
끝없이 어린 시절을 더듬어 갈 때
앓고 난 뒤 수척해진 재훈이가 가시 많은 생선이 맛있는 거라며
전어 가시 발라내고 뭐 먹을 게 있냐 전어 먹는 시범을 보인다
나는 침묵하며 가시 많은 전어를 먹다 가시가 자꾸 목에 걸린다
바다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조개였다면 전어였다면
바다와 뻘밭을 산책하기 좋아하는 구름처럼 갈매기처럼 바람처럼
노을 지는 제부도는 쓸쓸하고 두렵고 아름다웠다
우울했던 기분이 썩 좋아지면서 바다에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느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고백했는데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서해다 제부도다 바다다
엄마가 늘 캐온 굴과 바지락 맛조개 껍질이 집 안을 굴러다녔다
길쭉한 맛조개를 장작불에 구워먹으며 어린 시절 허기를 달랬다
야, 조개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잖아
우리 매운탕 하나 더 시켜 밥 좀 먹자
누군가 매운탕을 가져오고 술잔이 돌고 누구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익숙한 바다 냄새에 취한다
신발 한 켤레
안명옥
누구든 맞는 사람은 가져다 신으세요
길가 한 모퉁이에 신발 한 켤레
가지런한 적막 한 켤레
지나가는 바람이 발을 넣어보고 있다
약력: 2002 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소서노』 , 『칼』
|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