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눈물이 모여 산다(1)




이상섭




바다가 안개에 짓눌려 힘겨웠던지 거친 숨소리를 토했다. 때마침 은빛 비늘 같은 파도가 일어서고, 덩달아 종마처럼 듬직한 배들도 몸을 뒤챘다. 경매가 시작되려면 아직 두어 시각은 남았다. 그런데도 벌써 부둣가는 어둠의 모서리를 밀며 하루를 열고 있었다. 서둘러 달려온 배들은 계선줄을 묶자마자 생선보다 피곤한 집어등 불빛을 먼저 내려놓고 있었다. 공판장은 이미 활어 트럭과 짐수레로 북새통이었다.
그는 잠비늘을 털며 시장골목으로 향했다. 꼭두새벽부터 일을 나서는 게 굳어진 버릇이긴 했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몸은 무겁기만 했고 선하품만 터져 나왔다. 예전처럼 일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거래처는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활어 수입도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천영감의 말처럼, 러브호텔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저질스런 상대, 고질스런 상대를 가리지 않는 오입쟁이 인간이 아니었다. 고기 씨가 말라가고 바다 밑바닥이 텅 비니 어자원 확보를 위해서도 정말 러브호텔이 필요한 곳은 바다였다. 만선기가 나부낀 것도, 고기 등을 타고 영도로 건넜다는 것도 다 옛말이었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계절을 모르고 산다. 눈에 계절이 보였다간 인생 종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장 골목도 인기척으로 들끓고 있었다. 어수선한 발자국소리가 피어오르고 덜 풀린 목소리가 하나둘 고요를 찢었다. 골목이 인생 장터가 된 사람들은 목 좋은 곳을 놓치지 않으려 발에 바퀴라도 단 것처럼 부산하게 움직였다. 덩달아 그의 마음도 바빴다. 모녀상회로 잰걸음을 쳤다. 주변에서야 묵인된 자리지만 따지고 보면 엄연한 불법 건축물이다. 단속반만 떴다 하면 영락없이 헐릴 간이횟집. 횟집이라고 그럴듯하게 써 붙이고 비닐로 바람벽을 치는 바람에 자리싸움은 덜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목 좋은 곳은 횟집 앞이다. 살림 맡은 아줌마부대들이 주 고객이니 그네들이 지나가는 발밑까지 활어를 디밀지 않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자연 새벽마다 자리다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난전 사람들끼리 은밀히 협조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고 틈만 나면 놓인 좌판도 밀어내기 바쁘니 새벽마다 습관처럼 싸움을 해야 했다. 그가 눈뜨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자리 확보였다. 활어를 확보하지 못한다 해도 자리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간 걸고 거친 장모의 욕바가지를 종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끝없이 내리막으로 치닫는 활어운송이라면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장모는 대놓고 구시렁거릴 터였다.
그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좌판을 끌어다가 놓고 그 위에 대야며 생선 담을 소쿠리까지 위치를 잡았다. 그런 다음 낡은 파라솔을 꺼내 전깃줄을 걸었다. 주위에서도 하나둘 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허리를 펴고 비린 손을 털었다. 이제 장모가 나타나면 끝이니 공판장으로 가는 걸 서둘러야 한다.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려면 더 이상 늦추어선 곤란하다. 그는 부리나케 약속 장소로 향했다.

*

시장으로 돌아오니 장모의 목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잔뜩 독이 오른 말토막은 멀리서 들어도 속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누군가 장모의 자리에 곁다리를 넣은 모양이었다.
"이 바닥은 어데 임자도 없다 카더나? 눈구영은 뒀다가 어디 쓸 끼고!"
장모의 앙칼진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하필 너른 데 두고 송곳 박을 곳도 없는 곳에 나타났냐는 말투였다.
"별 개뼈다귀 같은 게 나타나 아침부터 머리 김나게 만드네?"
장모가 노려보는 곳에 진짜 개뼈다귀 같은 여자 하나가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다. 그가 생각한 늙수그레한 여자가 아니었다. 멀리서 보아도 아직 갯내가 묻지 않은 집에서 얌전한 살림이나 할 젊은 여인이었다. 넉넉하게 잡아도 마흔을 겨우 넘었을까.
"젊은 사람이 어디 엉덩이 붙일 데가 없어 노인네 자리를 넘보노, 넘보길!"
여자의 얼굴이 낯익었다. 그는 잠시 머리를 공굴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시장골목 초입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 여자는 꽂아둔 촛대처럼 요동도 않고 앉아 있기만 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생선을 사라는 말이나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그랬기에 저러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겠거니 했다. 그런데 무슨 독한 마음을 먹었는지 목이 좋은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바닷물 묵어봐야 짠 줄 아나? 짠맛을 참말로 한 본 보고 싶다 이기가?"
좌판이 합법적인 자리로 전세를 낸 것도 아니니 옮기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쉬 자리를 내줄 장모와 그 일당도 아니다. 이곳에서 젊음을 보낸 노련한 '아지매'들이었고, 장모야말로 이 골목이 짜할 정도의 욕쟁이에다 '불알할매'가 아니던가. 얼마나 단속반의 불알을 오래 잡고 버텼으면, 저러다 씨감자까지 못 쓰게 만드는 거 아녀? 하며 걱정했을까. 그런 장모였지만 이번 자리싸움은 의외로 오래갈 수 있었다. 어쩌면 장기전에 돌입할 전초전이 될지 몰랐다. 그건 여자의 굳게 다문 입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밀린다면 끝장이란 듯 어금니를 깨문 다부진 인상이 묘하게 사람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만약 장모가 예정대로 서울행을 그대로 감행한다면 자칫 좌판이 반쪽으로 좁아질지 모른다. 그런 낌새를 알아차렸을까. 장모는 도끼날 같은 입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퍼져 앉았네 그래. 보자보자하이 낯짝은 사람인데 속에 짐승이 들어앉았구먼!"
장모는 여자를 결딴내고 말 것처럼 눈꺼풀을 뒤집고 달려들었다. 여차하면 머리끄덩이라도 쥐어잡을 태세였다. 그래도 여자는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되레 듣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외로 꼬고 딴전이었다. 장모는 그런 여자의 태도에 뚜껑이 열렸는지 여자의 생선대야를 걷어찼다. 여자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그제야 더럭 고함을 질렀다.
"왜 이래요! 여기가 할머니가 분양이라도 받은 땅이에요. 남의 물건은 왜 차요, 차기를!"
여자는 눈까지 부릅뜨며 장모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년아! 내 땅이다. 어쩔래?"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러자 장모는 다짜고짜 여자에게 달려들어 생선대야를 들더니 뒤엎어버렸다. 담겨 있던 생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할머니가 정말…!"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이를 지켜보던 꼬끼오 여사가 방패막을 치며 나섰다.
"하이고, 성님도. 뭔 새파란 년하고 아침부터 역정인교, 역정이? 지도 귀가 있으몬 알아들었을낀께, 마 참으소."
꼬끼오 여사가 장모를 끌고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있던 함흥댁도 안 되겠다 싶던지 엉덩이를 들었다.
"나랏님도 늙은이 대접은 해준댔네. 자네가 저쪽으로 나앉게나."
"아니, 이 바닥에 임자가 어딨어요? 할머니가 이야기 좀 해보세요, 정해진 임자가 따로 있어요?"
"저 할매가 저래 봬도 이 바닥이 40년이야. 그러니 젊은 사람이 이해해 줘야지, 누가 이해해 줘?"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 없어요. 어차피 같이 나선 장삿길 아니에요?"
" 그런다고 나란히 앉아 문어를 팔어? 자네도 이 바닥 생활 한 번 해봐. 같은 품목으로 얼마나 버티는지!"
부드럽게 목소리를 굴리기만 하던 함흥댁이 언성을 높이자 여자가 입을 닫았다. 함흥댁의 말이 가슴에 얹힌 모양이었다. 여자는 씩씩거리면서도 함흥댁이 물건을 챙기는 걸 가로막지는 않았다. 함흥댁이 젊은 새댁의 손을 끌자 마지못해 새댁이 돌아섰다. 일어서고 보니 새댁은 물독 뒤에서 자란 듯이 키가 훤칠하게 컸다. 그 와중에도 장모의 목청은 가라앉지 않았다. 작은 물에 큰 배 가라앉는다는 말처럼 그냥 두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이번 참에 아예 말못을 쳐놓을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속에 걱정이 태산겉이 들어앉았건마는 별 개떡같은 것까지 굴려와 지랄이네, 참말로!"
작년에 먹은 음식까지 올라오겠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선 장모를 보자 그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를 하인 부리듯 막 대하는 양반이라 당하는 꼴이 속으로 고소했던 것이다.
"왔으면 미친년이나 내쫓지 뭐한다꼬 허팟줄 터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속에 불을 지르고 난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딱히 대꾸하고 싶었지만 치뜬 장모의 눈을 보는 순간 입이 저절로 닫혔다.
"정신을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얼른 올라가기나 해!"
장모의 난데없는 지청구를 듣자 그도 모르게 감정이 튀었다.
"지금 가고 있잖아욧!"
그는 시퉁스레 입을 빼물고는 몸을 돌려세웠다. 더 있다간 또 날아올 말매가 귀찮기도 해서였다. 그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부둣길을 다잡아 걷다가 괜히 길바닥에 뒹구는 생선상자만 화를 입었다. 발가락이 너무 아팠다.

*

근래 들어 장모의 심기가 불편한 건 사실이다. 내 팔자가 문어 인생이라는 반복된 레퍼토리처럼 장모는 팔남매를 두었다. 형제가 많다 보니 크고 작은 일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궂은 소식이 한동안 뜸하던 집에 좋지 못한 소식이 연이어 전화선을 탔다. 작은딸의 '작은 사고'에 이어 큰아들의 '큰 사고' 소식이 날아든 것이었다. 그가 생각해 봐도 작은딸의 사고가 분명 큰 사고인데도 장모한테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며칠 전, 울산에 사는 딸이 자궁에 근종이 생겨 입원하게 되었다며 은근히 병문안을 채근했다.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라 한걸음에 달려가리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리가 세 다리 된 년이 어딜 나다니겠냐며 알아서 치료하고 나중에 틈 봐서 들르마 하며 퉁명스레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서울에 사는 큰아들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사연인즉 제사 때문에 며느리와 싸웠다는 아주 사소한 소식이었다. 그런데도 장모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기가 녹을 정도로 꽉 움켜쥐고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는 집안 무너지는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며느리 험구덕을 파기 바빴다.
따지고 보면 그런 부부싸움이 터진 건 큰처남이 실직 후 시작한 사업이 내리막길을 치달으면서부터였다. 그런데도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런 책임을 며느리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였다. 살림이 여문 데가 없어 손에 쥐는 대로 흥청망청 쓰기 바쁘니 그짝이 났다는 둥, 매사가 물커덩거리는 게 결혼할 때부터 맘에 안 들었다는 둥, 시시콜콜 고시랑거렸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지 제삿날엔 무슨 일이 있어도 올라갈 거니 4남 4녀를 죄다 소집할 것까지 명령하며 부러 '큰 사고'로 위장해버렸다.
집안일이 어수선하게 꼬이니 불똥이 그에게까지 튀었다. 성난 소 영각 쓰듯 뻑하면 호통을 내질렀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 이번 서울행에 동참하자니 묶인 염소처럼 시장골목만 돌던 할매가 정신에 맛이 갔나 싶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일이 일인지라 몸을 뺄 수 없는 게 시장 좌판 아닌가. 그렇다고 장모 신세를 지는 처지니, 입이 있어도 큰소리는커녕 대꾸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간 첫째 동서처럼 뺨이 얼얼하게 달아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첫째 동서는 술고래였다. 뱃놈 근성을 버리지 못해 뭍에 올라서도 술을 달고 살았다. 보다보다 못한 장모가, 만날 술만 먹고 가정을 돌보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애까지 싸지르고 결혼을 했냐며 백년손님이라는 사위의 귀퉁배기를 올려붙이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좋아하던 술을 끊고 말았다. 그후 장모의 말이라면 꼼짝 못할 정도니 더 이상 말하면 입이 아플 뿐이다.
뿐인가. 뺨만 안 얻어맞았지 둘째 동서도 꼼짝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보증사슬에 얽혀 모아놓은 재산을 날린 후, 지금까지도 장모에게 앙금없이 어리버리하게 산다며 욕바가지를 들어 지금도 슬슬 피하는 중이다. 게다가 셋째는 또 어떤가. 가장 사위 중에 안정되고 괜찮은 호방한 성격이지만 그런 놈은 집구석에선 보탬이 안 된다며 나무라니 셋째 동서조차 장모 만날 기회만 생기면 꽁무니빼기 바빴다. 그러니 그가 감히 장모의 말뒷동을 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가 말대꾸라도 한다면 이건 집안의 쿠데타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아내 말순씨의 행티가 맘에 드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집 장만할 때까지만 참자 해도 사람 사는 데 어디 그게 뜻대로 되는가. 신접살림 시작한 이래 두 사람만 오붓하게 보낸 적이 없었다. 눈치가 둔치라 말순씨는 남편 속마음도 헤아릴 줄 몰랐다. 그가 새벽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불침번 교대처럼 장모와 아내가 나가는 통에 두 사람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어쩌다 밤늦게라도 한 번 안아보려 하면 아내가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바쁘고, 장모는 잠도 없이 내일 일을 또 준비하니 장모 잠자리 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먼저 잠들기 일쑤였다. 그러니 씨 보기는 애초에 글렀는지 모른다. 하필 봄이 오고 새순이 돋는 걸 보니 더 짜증이 솟구쳤다. 남들 외국으로 신혼여행 간다는데 일 때문에 신혼여행을 미루고 만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희붐하게 밝아오는 부둣길을 터벌거리며 걸었다. 멀리 타워 크레인이 흐릿하게 눈에 띄었다. 그걸 보자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처가살이로 눈치봐야 할 판국에 집 뒤에 아파트공사가 시작되면서 저것까지 귀찮게 굴었다. 하필이면 기계가 그의 집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 쳐다볼 때마다 은근히 조바심이 쳤다. 저게 떨어지면 어쩌나 싶으니 하루에도 몇 번이고 눈치를 살피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 눈치 저 눈치에 처갓집 지붕 위의 기계눈치까지 살피며 살려니 더 피곤했다.
예인선이 무리지어 정박한 곳에 천영감이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4월로 접어들면 트롤선 같은 대형선박이 거의 입항해버려 일감이 없다. 하루에 여섯 드럼의 기름을 때가며 바다로 나서봤자 헛그물만 올리니 자연 7월까지는 잠정 휴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항구는 더 복잡하다. 그런데도 영감이 일찍 나온 걸 보니 또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
한때 바다를 주름잡았다는 천씨. 그물을 드리우면 만선을 기록할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던 어부. 그러나 그렇게 고기를 잘 잡았다는 천씨도 아내만큼은 잡지 못했다. 집을 나간 아내의 모가지를 거머쥐고 오겠다며 길을 나선 천씨는 술병 목만 그러쥔 채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 대신 술병과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만큼은 포기하지 않아 도선사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목숨만큼은 놓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또 아들 해민이 때문에 걱정인 모양이었다.
"일거리도 없는데 뭐한다고 이래 일찍 나왔습니꺼?"
흑백사진처럼 어둠에 싸여 있던 천영감이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파도에 영감의 몸이 술 취한 사람처럼 뒤뚱거렸다.
"몸도 배처럼 움직여야 녹이 안 슬지. 그라고 또 우째 알어? 눈 먼 손님이라도 하나 걸려들는지…."
예인작업이 없는 때는 푼돈이라도 줍고 살아야 한다. 먼바다에 정박한 배까지 선원들을 실어 나르거나 생필품을 옮겨주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간혹 이곳 어시장을 찾는 관광객이라도 나타나면 항구를 한 바퀴 유람시켜주며 선비를 받기도 한다. 그러니 영감의 말대로 손님이 새벽바다를 보고 싶어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해민이는 아직 자릴 잡지 못하고 술만 퍼먹습니꺼?"
영감은 재킷의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눈에 물기가 흥건히 고인 듯도 했다.
"차라리 취직 안 될 빼사 조그만 가게라도 하고 싶다는데 돈이 있어야 말이지. 돈이 된다몬 무슨 짓이든 해서 자식 소원만큼은 들어주고 싶네. 대학 나온 놈이 저래 취직하기 힘들어 괴로워하니 어디 애비가 보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원!"
영감은 한스럽다는 듯이 담배만 뻑뻑 빨아댔다. 휘어진 등이 여린 불빛에 잠시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나저나 자넨 장모한텐 언제 손주 안길 텐가?"
"둘이 얼굴 마주보기도 힘든데 손주를 만들 시간이 있남요, 어디!"
"나처럼 한 것 없이 나이테 안 키울라몬,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서둘러."
천영감은 나직한 소리로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일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돌려 세웠다. 가로등 물고 있는 바닷가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다. 모가지가 붙잡힌 배들이 파도가 엉덩이를 치자 푸드득, 소리를 질러댔다.
부둣가의 간이화장실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누군가 재빨리 화장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몸을 숨겼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화장실 안을 기웃거렸다. 혹시 '삼텡이'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삼텡이라 불리게 된 건, 부모가 비고 배가 비고 머리가 비어서였다. 이곳 사람들은 '텅 빈 것'을 '텡텡 비었다'고 하니 자연 상택이가 삼탱이로 변하고만 것이다. 만약 함흥댁이 외손자라고 치마폭으로 싸안고 키우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는 놈이었다. 워낙 정신이 걸레 같은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혹 녀석이 나타난 건 아닐까 싶어 눈길을 박았다. 그러나 안에서는 물 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뒷일이 급해 소란을 피운 모양이었다.

*

골목 입구의 벚나무가 집으로 오는 그를 먼저 반겼다. 백년도 더 되었을 법한 벚나무는 건망증도 없는지 올해도 가지마다 불그스레한 꽃망울을 쥐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계절의 표지판 구실을 하는 나무. 그래서 사람들이 늘 우러러보며 하늘같이 여기는 나무였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벚나무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우러러볼 때마다 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서 굽어보고 있는 누런 크레인이 사람들의 눈을 먼저 찌르기 때문이었다.
높은 지대에 아파트가 들어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상처처럼 붉은 살이 반듯하게 절개가 되더니 이어 대형 크레인이 들어섰다. 그 다음부터 크레인은 동네의 일대의 집들을 구석구석 훑어보며 숨겨진 가난을 살피기 바빴다. 작업소리가 요란해질수록 사람들은 어깨가 좁아졌고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아니면 벚나무 또한 제 목숨이 위험하단 걸 알아챘는지 올해는 유달리 꽃망울을 일찍 밀어올렸다. 저런 상태라면 조만간 튀밥 같은 꽃숭어리를 매달 터였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면 이곳을 힘겹게 들어서는 사람들을 위해 봄눈 같은 제 꽃잎을 하르르 날리겠지. 지쳐 돌아오는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에. 그런 생각을 하자 여태 맘놓고 벚꽃길 한번 나서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해마다 거르지도 않고 한다는 봄놀이며 여행 한번 맘놓고 나서지 못한 채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의 연속. 조금만 틈을 주면 누군가 그 자리를 가로채는 시장인생. 인생역전을 위해 뛰어든 골목이지만 인생은 '역전'이 아니라 '여전'하지 않던가. 근래 그가 풀이 죽은 것도 그런 탓인가? 어쩌면 나이테 더 많아지기 전에 자식농사라도 야무지게 지어놓아야 한다는 천씨의 말이 틀린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가만있던 아랫도리가 영도다리처럼 일어섰다. 그도 모르게 집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대문은 오래되어 제 스스로 무릎을 꺾고 주저앉는 중이었다. 손을 대자 고통스럽다는 듯이 끼르륵, 비명을 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거친 숨을 몰아가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칼질만 계속했다. 물먹은 멍게처럼 뿌루퉁하게 부어 있는 얼굴을 보는 순간 일이 글렀다는 걸 알아차렸다. 안 그래도 배나 여자나 곡선이 생명인데 마누라는 그렇질 못해 은근히 다른 여자에 눈길이 가곤 했다. 그런데 얼굴까지 부어 올랐으니 자칫 잘못 덤볐다간 되레 해코지를 당할 터였다. 순간 남의 집에 들어온 듯 분위기가 어색했다. 장모 없는 틈에 치마라도 움켜쥐려 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그는 아내의 거친 손놀림의 이유가 궁금했다. 죄없이 쭝떡쭝떡 썰리는 오이토막이 그 대신 칼매를 맞는 것 같았다.
"부산횟집에서 꼭두새벽부터 전화 왔습디다!"
아침부터 아내의 말투엔 가시가 배어 있었다. 그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횟감 주문량이 떨어지고 은근히 고기값이 비싸다며 말토를 달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없는 거래처를 물어와도 힘든 판국에 든 고기까지 놓치몬 우아는교 그래?"
할 말이 없었다. 방으로 건너와 넉장거리로 누워 애꿎은 아랫도리만 쓰다듬었다. 집구석에 불난 것도 모르고 혼자 일없이 퍼올린 춘정이 부끄러웠다. 횟감 배달도 이젠 사양길이었다. 너도나도 대규모의 수산회사와 직거래를 트거나, 횟집 주인이 직접 활어차에 횟감을 싣고 가기 바쁘니 그와 같은 중간 이익을 챙기는 활어 판매상은 버티고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니 자연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트럭에 새긴 '모녀상회' 로고를 떼야 할지 몰랐다.
"이럴빼사 마 다시 배타는 기 낫겠구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벌떡 몸을 세웠다. 다시 배를 타라는 얘기는 그에게 죽으라는 얘기와 같았다. 그는 살기 위해 바다를 포기한 사람이었다.
"뭐라 캤노?"
그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아내는 그의 심정을 헤아렸던지 짐짓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이, 하도 답답하이 하는 말 아이요. 이러다간 그리 싫다는 처가살이는 언제 그만둘낀교 그래."
그 말을 들으니 그로서도 딱히 변명할 수 없었다. 부지런히 모아 내 집 장만하기 위해 스스로 들어선 처가살이 아니던가. 울도 담도 없는 그를 택한 건 아내 또한 자신의 부지런함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담뱃갑에 손이 갔다. 그는 담배 하나를 꺼내물고 불을 당겼다. 그가 배를 타던 날들이 떠올랐다.
너른 밭에 파를 갈아엎고 팻말을 심던 날, 아버지는 농약을 소주처럼 들이켰다. 그 바람에 어머니마저 용케 움켜쥐고 있던 정신을 놓아버렸다. 미친놈의 세상이, 우열이 너그 어매를 미치게 만들었구먼. 밤낮없이 밭고랑을 헤매던 어머니는 결국 일터를 하늘나라로 옮겨버렸다. 그에게 남겨진 건 힘껏 말아쥔 두 주먹밖에 없었다. 그는 그 길로 고향을 떠나 뱃놈이 되었다. 세상 꼴을 보기 싫어서였고 멀리 떠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바다생활이 그를 도리어 어머니처럼 미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굽어보는 바다색이 자꾸 붉게 보이기만 했다. 점점 발밑의 바다가 더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퍼뜩 한 술 뜨고 일 안 나갈 끼요? 제숫감이라도 장만할라몬 바뿔낀께 마치는 대로 얼른 가게로 나오소!"
아내가 다그쳐도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장모의 극성도 극성이지만 아내 또한 다를 게 없다 싶었다. 그저 머슴 부리듯 부려먹기 바쁜 것이다. 돈이 되든 안 되든 그 또한 열심히 몸을 부리지 않는가. 그런데도 뻑하면 개 부르듯 불러 이거 해라, 저거 거들라며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처가살이라 앞앞이 말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어째 데릴사위처럼 신세가 밑바닥으로 내리구른다 싶은 것이 영 마음에 켕겼다. 그도 모르게 입이 거칠어졌다.
"누가 장인 제사에 간다던? 누군 배알도 없냐, 장모님이 가라 마라 제 맘대로 정하게?"
"지야 일 땜에 몬 가도 당신은 갔다와야 할 거 아니요. 여태 시키는 대로 잘하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 올해는 안 하겠다는 긴교?"
"할매 혼자 가는 길도 눈에 익혀 놔야지. 처남들도 바쁘다고 빠지는 제사를 왜 내가 해마다 모셔?"
"눈에 익은 글자만 몇 개 아는 할매가 우째 서울을 찾아가겠는교? 그라는 사람이 여행 가자는 얘긴 뭔 심뽀로 했는지 모리겠네."
"하여튼 이번엔 안 갈 테니깐 알아서 해!"
"욕바가지 들을 일만 골라서 하고 있네, 마 밥이나 들고 퍼뜩 나가기나 하소."
아내는 별 일이라는 듯 잠시 문턱에 서 있더니 몸을 돌려세웠다. 회에 덤으로 쓰일 야채바구니며 앞치마, 물신까지 챙기더니 휑하니 나가버렸다. 활어 배달이야 손님이 없는 오전 중에 가면 그뿐이었다. 일찍 나서봐야 횟집문은 닫혀 있기 일쑤였다. 그는 억지눈을 감았다. 신세치고는 참 처량하다 싶었다.

*

인생이란 한 순간에 변한다. 그는 지금도 그 순간이 벼락처럼 온다고 믿고 있다. 그 벼락이 날벼락이든 물벼락이든 간에. 아내가 사라지는 순간 천영감의 인생이 변했고, 남편이 바다에서 사라지는 순간 장모의 인생이 바뀌었다. 모든 게 순간적이다.
배를 내린 후 식당배달원이 되었다. 비록 월급은 적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기분만큼은 돈과 바꿀 수 없었다. 여태 맛보지 못한 쾌감이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했고 퇴근 후엔 바닷길을 달렸다. 달리고 싶을 때까지 달렸다. 그렇게 미치도록 바쁘게 움직이며 사는 맛을 즐길 때였다. 장모가 냉동고기를 녹인 비린물을 길바닥에 뿌리던 순간, 공교롭게도 그가 탄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난데없이 닥친 물벼락을 피하려 핸들을 꺾었고 그 결과 꼬박 4개월을 누워지내야만 했다.
날이 갈수록 발이 간지러워 미칠 때였다. 장모는 자기 탓이라며 미안해하더니 어느 날 말순씨를 보냈다. 그러니까 그때까진 말순씨가 아내가 되리라 꿈에도 생각지 못할 때였다. 그랬기에 그냥 이러저러하게 얽혀진 인연의 한 가닥이거니 해, 퇴원 후에 시장에서 만나도 서로 알은 체할 뿐이었다. 마주칠 때마다 말순씨의 낯이 불거지는 걸 눈치챘지만.
그런 어느 날, 장모 때문에 또 된벼락을 맞고 말았다. 뜬금없이 미음을 부탁해 할매가 어디 아픈가 싶어 배달을 갔더니 말순씨가 드러누웠다는 거였다. 일 때문에 구완을 못하니 대신 미음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불렀다며, 요리조리 찾아가면 된다고 집 약도까지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러준 대로 벚나무 아래에서 가풀막을 타고 올라 세 번째 집. 오토바이를 세워놓고도 세 번째가 맞나 몇 번을 확인한 다음 잠시 망설였다. 말순씨! 하고 부르고 싶었지만 이름조차 대놓고 불러본 사이도 아닌 데다가, 남의 집에 배달 온 주제에 소리를 내지르기도 뭣해 그냥 대문을 밀고 말았다. 방문 앞에 서서 몇 번을 불러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어디 아프겠거니 하며 문을 지그시 밀자 방 가운데에 말순씨가 수건을 동여맨 채 잠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총각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건 그녀의 풀어진 옷자락 사이로 고개를 내민 뽀얀 가슴이었다. 순간 눈앞까지 뽀얘지면서 그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미어져 나온 가슴을 도로 밀어 넣어 줄 수도 없고, 배달 온 음식을 들고 그냥 돌아설 수도 없었다. 난감했다. 결국 도로 문을 닫고 헛기침 몇 번으로 말순씨를 불렀다. 잠시 뒤 앓는 소리가 났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문을 열었다. 운신이 힘들 정도로 그녀는 앓고 있었다. 심하게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거기까지는 아니라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차라리 돌아서야 했다, 벼락을 피해야 할 것 같으면.
인연이 되려 그랬는지 이상하게 앓는 사람 내팽개쳐놓고 돌아서기가 뭐했다. 그도 가장 힘들었을 때가 몸이 아플 때 아니었던가.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해서 미음이라도 먹고 힘내라고 권했을 뿐이다. 숟갈질도 힘들어 보이는 그녀인지라 떠 먹여주고라도 가야 한다 싶어 말순씨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순간 여민 젖가슴이 그를 향해 또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당황한 그는 미음을 젖가슴에 쏟고 말았다. 놀란 비명소리에 그는 어쩔 줄 몰랐고 급한 바람에 손을 갖다대고 말았다.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었다면 없던 일로 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는 뭐에 씌었는지 말순씨가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을 발갛게 붉히고 있는 게 꽃도 얼굴을 숙이고 달도 숨을 정도였다. 그도 모르게 심장이 멎을 듯해 '말순씨!'하며 달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게 일을 치렀는지 몰랐다. 본능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말순씨의 입에서 '아'하고 비명이 터지는 순간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싶었다. 그는 더 깊은 곳까지 닿고 싶어 몸을 뒤챘다. 그럴수록 말순씨의 손톱이 그의 등을 더 깊이 파고들었던 기억은 지금도 오롯하다. 그가 기운을 잃고 쓰러졌을 때 지독히 등이 쓰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방안에서, 그것도 몰래 저지른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노릇이다. 짜고 친 고스톱도 아니고 뒷수습도 하기 전에 사람들이 달려왔고 뒤이어 장모까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졸지에 그는 치한이 되고 말았다. 애지중지 키운 딸 순식간에 도둑맞았다며, 경찰을 부를까 아니면 책임질 일이 있으면책임질래 어쩔래?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도둑은 절대 아니라고 가슴이라도 쪼개 보이고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책임지겠다고 약조하고 나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정신이 아뜩할 뿐이었다.

*

"우열아, 아니 박서방! 쌔빠질 놈들이 또 들이쳐 개지랄을 떨어댄다. 퍼뜩 좀 내리온나, 으이?"
수화기를 쥐자마자 장모의 목소리가 터졌다. 사위 이름까지 들먹이자 기분이 묘하게 뒤틀렸다. 그런 탓인지 장모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도 연신 하품만 터졌다. 단속반이 떴다면 그가 가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가판대는 부러지거나 트럭에 실려 갔을 것이고 죄없는 생선들만 옆구리가 터진 채 뒹굴 터였다. 그러니 기실 장모의 전화는 단속반을 몰아내 달라는 뜻이 아니라 부러지고 망가진 가판대를 고쳐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장모야말로 단속반들도 아예 건드릴 생각은 않는다. 워낙 이 바닥에 굴러먹은 밑바닥 인생이라 그들도 손금보듯 훤히 꿰고 있다. 심하게 굴었다간 습성상 집고 할퀸다는 것을. 그래서 가져가는 거라곤 쉽게 만들 수 있는 가판대나 생선대야 몇 개가 고작이다. 기실 '불알아지매'라 지어 부른 것도 그들이 아닌가. 단속반이 들이닥쳐 하도 못 살게 구니깐 이게 여덟 자식 밥그릇이나 마찬가진데 못하게 하면 그럼 너그가 책임질 거냐며 단속반 불알을 잡고 매달린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다음날부터 아예 장모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더란다. 그러니까 장모는 이 바닥에 살아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세월이 흘러 불알아지매가 불알할매로 바뀌었을 뿐. 지금도 가끔 그 일이 생각나 '불알할매!' 하고 부르면, '불알 겉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없는 불알을 어디다 갖다붙여. 공알할매면 몰라도'라고 육두문자를 갈긴다. 게다가 뭔 '씹'은 그리 입에 달고 사는지. 말끝마다 양념삼아 씹이 들어간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볼 때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뉴스를 계속 보여주자, 텔레비전에 눈을 박고 있던 할매가 이맛금을 만들며 입을 열기를, '참말로 세상 한 번 네미씹이네. 저런 개씹 같은 짓을 뭐한다꼬 테리비로 중계를 다하누, 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 제 배 앓아 나은 막내딸에게도 '씹터래끼 세냐, 와 그리 굼떠!' 할 정도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모녀지간인지 의심할 정도다. 그러니 장모는 몸 자체가 '욕상자'나 진배없다.
시계불알을 살폈다. 시간이 제법 이른 걸 보니 이번 단속은 꽤 빠른 편이었다. 어디 높은 사람이라도 떴나 보다. 그는 신발을 꿰어 신자마자 터벌거리며 시장으로 향했다. 벚나무 그늘을 빠져나와 곧장 부둣길로 접어들었다. 길바닥에 치자빛 햇살이 깔리는 중이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부두 공터에는 노인네들이 몰려나와 진을 치고 있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영감들 사이에는 신문지가 깔렸고 화투패도 보였다. 시장골목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부두를 어슬렁거리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개코 문형사였다. 문형사는 그를 보자마자 알은 체를 했다.
"자네, 오랜만이군. 안 그래도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 어때, 차라도 한 잔 할까?"
"시간 없어요. 단속이 떠서…."
"그래? 그럼 하나만 물어보지. 대장이는 요즘 어딨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문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눈매를 좁혔다.
"친구라고 두둔하기는. 암튼 보이면 연락 줘. 연락처는 아직 갖고 있지?"
문형사가 먼저 몸을 돌려세우자 그도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문형사는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또 냄새를 맡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화장실 구석구석을 누비며 또 일회용 주사기를 찾거나 담배꽁초를 주워 킁킁 냄새를 맡겠지. 이 바닥에 문형사가 나타나서 좋은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또 한동안 보이지 않는 긴장된 공기가 흐를 터였다. 은근히 대장이 엄마, 꼬끼오 여사가 걱정되었다.
시장에 다다랐을 때 입구쪽에 자리다툼을 하던 새댁이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이곳 사람을 닮지 않은 하얀 피부. 고생이라곤 한번도 한 적이 없을 듯한 갸느린 손. 그리고 알맞게 젖어 있는 촉촉한 눈과 머릿결은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였다. 그런 그녀였지만 이곳까지 떠밀린 걸 보니 텃세를 당할 재간이 없나 보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단속 앞에서 허둥거렸는지 그녀의 앞에는 급히 쓸어 담았을 법한 생선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좀더 들어서자 시장바닥은 여름날씨처럼 후끈거렸다. 사람들의 호흡은 거칠 대로 거칠어져 있었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지럽게 뒹구는 진열대며 물건들을 보니 마치 이 골목으로만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서로 낄낄거렸다. 번번이 당하는 일이라 그런지 억울하다는 표정도 없어 보였다.
"요것들은 때리뿌사는 걸 뭔 재미를 안다쿤께.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맨들었잖어."
"그래도 그건 못질 몇 번만 하면 다시 쓰겠구만. 이것 봐. 이건 어디 땔감으로밖에 더 쓰겠어?"
"이런 일 당할 때마다 이 놈의 돈이라도 왕창 벌어 구청을 통째 사버리고 싶다니깐!"
"하이고 그게 가능하다몬 나도 한 구멍 넣어 줘. 한 맺히긴 피차일반이니깐."
"그게 안될 건 또 뭐 있누? 카드만 있으몬 그걸로 집도 사는 세상이라는데."
"아서라, 카드빚 땜에 튼실한 소나무 가지나 찾아갈라고?"
"찾아갈 때 가더라도 돈 한번 실컷 써봤으면 원이 없겠수."
"그나저나 이 태풍에 모녀상회는 또 살아남았네?"
"망치라도 들이댔다간 지 연장이 고장날지 모르는데 함부로 건드릴 수야 있겠나, 어디?"
"오늘 보니깐 할매보단 딸이 더 독종이더만. 젊은 게 여간 아냐. 안 그래?"
"암튼 이 바닥에 살아남을라몬 저런 억척은 돼야 한다니깐."
잘못 구운 빵빛의 늙은이들은 장모의 자리를 힐끗거리며 입방아에 열중이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자 은근슬쩍 조개입을 했다. 그는 못들은 척 지나쳤다. 모녀상회가 살아남았다고 했지만 생채기를 입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피해보다 적다는 것뿐이다.
짐작대로 모녀상회 건물은 차일만 내려앉아 있었다. 저 정도면 그의 손도 필요가 없었다. 떨어진 간이간판이야 다시 달면 그만이고 가판대 또한 어차피 방패용이 아니었던가. 장모는 입에서는 여전히 씩씩, 발동기 소리가 나고 있었다.
"저게 또 내 눈을 쥐어뜯어싸서 미치겠다. 얼른 손 좀 봐!"
장모가 기다렸다는 듯 벌건 조개탄 같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손을 놀릴 생각은 않고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장모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방정맞은 입을 놀렸다.
"니 눈엔 장모 아픈 건 뵈지도 않고 마누라만 뵌다 이기제, 시방?"
"저 때가 되몬 마누라 다리가 꽃가지로 봬 잡아당기고 싶어 환장할 낀데, 와 성님은 그리 눈치가 없는교?"
싼 입 때문에 주둥아리에 납덩이를 달아야 된다고 욕을 들어도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꼬끼오 여사가 말간섭을 했다. 장모의 눈이 금세 세모꼴로 변했다.
"남의 집안일에 눈치 없이 꼭 끼어 드는 건 이 바닥에 자네밖에 없을 걸세!"
꼬끼오 여사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멈췄던 손을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함흥댁은 넋을 놓고 앉아 누더기 같은 하늘만 치어다보고 있었다. 실종신고까지 했는데도 손자에게서는 여태 아무 연락이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 것 고치고 할매 것도 손 좀 봐줘라. 저 정신으로 장사나 하겠냐, 어디?"
가판대를 손질하고 무너진 차일을 매만지고 있을 때 아내가 눈에 걸렸다. 물차에 횟감을 뜨러 갔다오는지 물대야를 출렁거리며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오면서도 고기 처음 구경하는 사람처럼 물대야에 자꾸 눈길을 빠뜨리자 신경이 곤두섰다.
"야이, 할망구야. 이 바닥에 지 정신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노. 나도 자식새끼들 땜에 앞근심에 뒷근심까지 업은 년이다. 괴기라도 팔아야 상택이를 멕여 살리도 살릴 거 아인가배. 얼른 힘 좀 내!"
보다 못한 장모가 안쓰러워 던진 말에도 함흥댁은 꼼짝하지 않았다. 할매에게 오늘이 꽤 힘든 모양이었다. 그가 이것저것 챙겨가며 손을 놀려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우째 괴기 낯이 이리 선교?"
아내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오더니 대뜸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모르는 척 지청구를 먹였다.
"바닷물도 자세히 보면 여러 색이다. 똑같이 생긴 고기가 어딨노?"
그의 말에도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

오후로 접어들자 골목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한바탕의 소동으로 끌탕을 쳤지만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시장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장모도 손님들이 북적대자 손님낚시에 여념이 없었다. 꼬끼오 여사는 쌈지에 지전을 차곡차곡 챙겨넣으며 연방 웃음을 싸질렀다. 틈이 날 때마다 콧노래까지 섞는 걸 보아선 뭔가 좋은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꼬끼오 여사를 보니 자꾸 문형사의 얼굴만 어른거렸다.
손님 끌기에 정신이 없던 장모는 뭔 일이 있는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뒤편으로 펼쳐진 바다 위로는 갈매기 서넛 풍경으로 떠서 이따금 마실을 나오는 게 눈에 걸리기도 했다. 활어 배달을 마친 그도 본격적으로 아내의 장사를 도와야 했다. 오전이야 손님이 뜸한 편이나 오후 들면 회손님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이 미친놈아! 그 바뿌다는 대통령도 며칠마다 보는데 넌 어째 일년이 넘도록 얼굴짝 한번 보기 힘드냐?"
장모의 전화질은 끝이 없었다. 아마 인천에 사는 셋째 아들인 모양이다. 이번 장인 제사를 빌미로 식구들을 깡그리 불러모을 작정이 틀림없다.
"하따, 미친놈 지랄병한다. 에미처럼 바쁜 몸이 어딨냐? 마 씨버리지 말고 와. 형 땜에 에미가 할 말이 있응께!"
장인 제사를 서울에 있는 큰아들네에게 넘긴 것도 어쩌면 장모의 꿍꿍이셈일지 모른다. 제숫감 마련에 드는 경비도 무섭다며 혀를 빼물 정도였으니깐. 그 와중에도 꼬끼오 여사는 연신 막걸리 몇 잔 연거푸 걸친 사람처럼 흥타령이었다. 다들 부산을 떠는 대도 함흥댁만큼은 변함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마음에 상택이만 들어차 있는 모양이었다.
"눈치도 없이 제 기분 좋다고 혼자 떠드는 것 좀 보소."
어느새 전화를 끊은 장모가 꼬끼오 여사를 향해 눈을 흘겼다.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는 꼴이 아무래도 대장이가 돌아온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개코가 나타날 리도 없었다.
술만 취하면 내다버린 쓰레기봉지처럼 아무데고 잠자던 대장이가 어느 날 종적을 감췄다. 처음엔 맘잡고 배나 타고 나갔나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았다. 불쑥불쑥 묻지 않은 말까지 뱉어가며 끼어 드는 꼬끼오 여사도 아들 얘기만큼은 함구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어디 칼맞아 죽었다더니 어디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느니 소문만 무성했다. 그런 대장에 대한 궁금증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흐려지고 말았다. 꼬끼오 여사가 계속 웃음을 싸지르자 장모는 뭔가 미심쩍다는 듯이 혀끝을 찼다.
"쯧쯧, 저게 또 혹시 남자가 생긴 건 아냐? 암만 해도 헤픈 웃음이 수상쩍어!"
대장이란 전과 5범이라는 얘기다. 일일이 죄목을 열거하자면 5범도 넘는다. 공무집행방해죄, 무전취식, 노상방뇨, 기물파손, 폭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대장이는 한때 그와 같이 트롤선을 타기도 했지만 워낙 천성이 한 자리에 붙어 있질 못해 걸핏하면 그만두는 걸 밥먹듯 했다. 보다 못한 꼬끼오 여사가 장사 밑천을 대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망나니짓만 해대는 바람에 말아먹는 게 일이었다. 그런 대장이를 보면서도 꼬끼오 여사는 큰소리 한번 치질 못했다. 꼬끼오 여사가, 하필 뒤늦게 알게 된 남자가 아내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어린 대장이를 팽개치고 살림까지 냈다. 그렇게 하면 평생 제 남자라도 될 줄 알고. 그러나 모든 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고 다시 시장바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장모는, 그런 대장이 엄마의 내력을 두고 한동안 '그 놈의 지랄 같은 성미가 남의 부부 사이에도 끼여들어 화를 자초했구먼. 자고로 사람 아가리는 자주 놀려야 먹고살지만 가랑이는 함부로 놀리다간 인생 끝장인겨' 하며 혀끝을 찼었다.

*

남녀 한 쌍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남자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더니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곁에 선 여자를 힐끗거렸다. 여자가 슬며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남자가 먼저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발걸음이 시원한 게 통이 꽤 커 보이기도 했다. 손님 눈치를 보고 있던 아내가 손님이 앉자마자 재빨리 덤안주를 내놓았다. 손님이 들어서자 장모도 목소리를 낮추고 다시 골목으로 눈길낚시를 내걸었다.
"이봐요. 형씨, 나 좀 봅시다!"
남자의 억양이 낯설었다. 이곳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볼에 난 상처가 때문에 험악해 보였다. 여자는 몰려오는 갯내가 역겨운 듯 손으로 연신 코끝을 털어대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