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눈물이 모여 산다(2)




이상섭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없수?"
"없는데요?"
"그래요?"
남자는 저 혼자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더니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흘낏 남자를 쳐다보고서는 이내 바다쪽으로 눈길을 돌려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여자의 짙은 화장 냄새가 역겨웠다.
"형씨, 혹시 이 근처에 배 모는 양반 없수?"
"왜요?"
"아, 그냥 일이 좀 있어서요."
"배 모는 사람이야 많죠. 요 앞에 가면 천영감도 있고. 아마 모녀상회에서 왔다면 알아서 잘해 줄 겁니다."
"그래요?"
남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집에 제일 비싼 놈이 어느 놈이요? 그걸로 후딱 한 접시 해주쇼!"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수족관의 참돔을 뜰채로 떠서 숨을 죽였다. 뜨내기손님들은 틈만 보였다 하면 일어서기 일쑤다. 그러니 꼼짝할 수 없다는 듯 살아 있는 생선을 죽여놓아야 비로소 내 손님이 된다. 그가 서둘러 회를 장만하는 동안에도 남녀는 말도 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에 비해 여자가 제법 나이 들어 보였다. 여자는 자리가 불편한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속으로 어디 밀항이나 나선 사람들처럼 보여 자꾸 눈길이 갔다. 바닷바람도 적당히 섞어 회접시를 내밀었다. 여자는 남자 가까이 접시를 밀고는 지갑에서 수표부터 꺼내들었다.
"바쁘니깐 먼저 계산부터 해줘요. 얼마죠?"
"쐬주는 한 잔 안 하시고요? 얼큰한 매운탕 식사도 되는데…."
"이런 데서 뭘 자꾸 먹어요?"
여자는 짜증스럽다는 듯이 턱끝을 올려세웠다.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상체를 여자쪽으로 내밀며 속삭였다. 그러자 여자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가 다시 잔돈을 쥐고 다가섰을 때에 사내는 입을 열 듯하더니 이내 다물었다. 남자의 손목에는 문신이며 흉터자국이 가득했다. 남자가 바라본 곳을 힐끗거렸지만 예인선 외엔 보이지 않았다.
"일 끝내는 대로 곧장 와. 알았어?"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가고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남자는 조각난 바다만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술잔을 서너 잔 거푸 잡아채더니 엉덩이를 들었다.
"지금 가면 그 영감 만날 수 있소?"
"그럼요."
남자는 곧장 바다로 향했다. 겨우 회 몇 점을 집고 나가버리자 그가 더 황당했다. 천씨의 예인선이 묶인 부둣가를 훑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새댁만 눈에 걸릴 뿐이었다.
손님이 뜸해 그가 담배 한 대를 물고 부두로 나섰을 때 남자는 천씨를 만나고 있었다. 제법 이야기가 길어지는 듯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그가 담배꽁초를 던지고 돌아서려는데 두 사람이 나란히 배로 향하는 게 보였다. 잠시 뒤, 엔진소리가 울렸고 바다를 향해 배가 미끄러져 나갔다.

*

손님이 남긴 잔술을 지싯지싯 비운 뒤 오이토막을 우겨넣을 때였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천씨가 보였다. 태우고 나간 남자는 보이지 않고 대신 꼬마 아이의 손을 잡고서였다.
"저게 누고? 상택이 아이가?"
장모의 말에 해바라기 씨처럼 까맣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함흥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상택아' 하며 달려가기 바빴다. 그러나 달려간 함흥댁이 상택이를 안고서는 대뜸 목청부터 높였다.
"제 정신도 아닌 놈이 제 맘대로 싸돌아다녀! 이 할망구 속태워 죽일 작정이냐, 응?"
보고 싶어 기린목이 되어 있던 함흥댁의 모습이 아니었다. 심지어 상택이의 볼기짝에 손매까지 쳐대는 게 아닌가. 상택이가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듯하더니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함흥댁의 손매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 할에미가 니 때문에 먼저 죽겠다, 이 놈의 짜쓱아!"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함흥댁이 그렇게 호되게 손자를 나무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함흥댁은 피란 와 살기 위해 재취로 들어갔다. 겨우 마흔이 넘어 얻은 핏줄이 상택이 엄마였다. 그러나 함흥댁의 딸은 교복을 불살라버리고 어느 날 훌쩍 가출을 해버렸다. 몇 년 동안 소식을 끊었던 딸이 남편도 대동하지 않은 채 아이 하나만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곤 또 훌쩍 제 갈 길을 가버렸다. 함흥댁은, 딸이 떠난 후 제 몫으로 맡겨진 것이겠거니 여기며 상택이를 돌봤다. 그게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상택이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부둣가에 소주병 따까리처럼 구불라댕기는 영감텡이가 상택이를 우찌 찾았노?"
장모는, 술에 절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 제 정신 아닌 상택이를 찾았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뜨악해 했다. 천씨는 우쭐해져서 뻣뻣하게 목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영도 가자는 사람이 있어 태우고 갔는데 거기 상택이가 있더라니깐."
"그럼, 여태 영도에 있었단 말이야? 어떻게 거기까지 갈 생각을 했을까 그래?"
곁에서 눈치를 보아가며 얘기를 엿듣던 꼬끼오 여사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다리가 있으니깐 갔지, 지가 헤엄쳐 건넜겠는교?"
"또 초치는 소리한다. 남의 일이라고 그리 가벼이 입을 놀리몬 우야노? 자네한텐 이런 일 없을까 봐서?"
장모의 핀잔에 꼬끼오 여사는 괜히 한 마디 건넸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 와중에도 함흥댁은 상택이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상택이의 온몸은 연탄장수처럼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더군다나 누구한테 맞았는지 입술에 터져 엉망이었고 팔뚝에는 긁힌 자국에, 퍼런 멍까지 들어 있었다.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함흥댁은 일일이 몸에 상처를 어루만지며 넋나간 사람처럼, 어이구, 이놈을 어쩌누, 불쌍해서 어쩌누? 타령조를 읊조리기 바빴다.
"저러다가 모지래는 아새끼 영영 이자삐리는 거 아인지 모리겠네!"
장모가 혀끝을 차며 말했다. 곁에 가만히 섰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 참에 아예 확실히 해놓지요, 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장모와 아내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학생들이 가슴에 이름표를 달듯 상택이한테도 명찰을 붙여놓자 이 말입니다."
"뭐라카노? 누가 그런 짓을 안 해봤나, 지 손으로 떼삐리니 문제지."
"그러니까 제 말은 그라지 못하도록 연락처를 적어놓자 이 말입니다. 그라몬 누가 연락을 해도 할까 아입니꺼."
그제야 장모도 무릎을 쳤다.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다 카더이 박서방이 우얀 일이고?"
"사위더러 개똥이 뭡니꺼? 기분 더럽게시리."
"망할 놈, 장모한테 말하는 것 좀 보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얼른 적기나 해!"
"내사 마 장모님이 적었으몬 좋겠건마는!"
"뭐라?"
장모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런 표정을 보자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그는 모르쇠를 떼며 가게 안으로 슬쩍 발을 디밀었다. 펜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 장모의 이맛금은 구겨진 채였다. 그가 상택이의 팔뚝, 장단지에까지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웃옷을 걷어올려 배에는 '연락 주면 후사함'이란 글자까지 적어 넣자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장모가 까막눈이 들통날까 겁이 났는지 횟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도 모르게 속이 환하게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신발에도 적어두면 더 오래가겠는걸. 신발 벗고 다니는 놈은 없응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곁에 섰던 천영감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는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신발 겉에까지 연락처를 적은 다음에야 굽힌 허리를 폈다.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함흥댁이 상택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언제 나왔는지 다시 장모가 곁에 서 있었다.
"영감텡이가 용한 일을 했구먼. 술이나 한 잔 하고 가!"
그를 힐끗거리는 장모의 눈길이 매서웠다. 배알이 틀리니 잔술마저 사위 입에 털어넣는 게 꼴 보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살다보이 욕대신 술을 다 얻어먹는구먼!"
"망할 놈의 영감텡이! 주고싶어 주는 줄 아는 모양이네."
"배도 기름칠을 해야 움직이듯 사람 속도 기름칠을 해야 살아갈 거 아인가배. 어쨌든 한잔 따뤄봐."
영감은 모처럼 손님대접 받자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영감텡이 하는 거 보이 왼종일 잡으라는 손님은 안 잡고 또 술병 잡을지 모르겠구만. 내는 분명히 한 잔만 하라캤다!"
"그나저나 뭔 손님이 이렇게 비싼 회를 남겼대 그래?"
천영감은 부러 딴청이었다. 게다가 안주까지 욕심내며 덤비자 괜히 사위 때문에 손해났다는 듯 장모의 표정이 흐렸다. 그런 장모를 보니 여타하면 잔소리를 몇 됫박은 쏟아부을 기세였다. 그는 일없이 부두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고름 같은 등불을 내다 거느라 종종걸음을 쳤다. 불빛이 고여야 활기가 넘치는 이곳. 아직 흑백풍경으로 남은 도시의 낡은 모서리. 그래서일까. 이곳 사람들은 밝은 것보다 어둠에 익숙하다. 세상살이의 물살에 밀려 도달한 땅의 끝. 어쩌면 이곳의 안개는 그런 사람들의 한숨이 뭉친 것이고, 이곳 바닷물도 그런 사람들의 눈물이 고여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돈가뭄 면할라몬 부지런히 몸 움직여! 안 그래도 미친년 하나 땜에 머리끝이 곤두서건마는."
장모는 여전히 새댁을 의식하고 있었다. 새벽 푸닥거리 후엔 안중에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댁도 틈만 나면 이쪽을 힐끗거렸다. 새댁의 앞에 놓인 생선도 줄지 않은 것 같다. 하기야 이쪽과는 손님의 그림자수가 다르니 눈길이 쏠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장이 큰가 저 장이 큰가 두리번거리는 저 년 눈깔 좀 봐!"
장모는 못마땅해 죽겠다는 이죽거렸다. 그리면서도 연방 시계불알 밑을 기웃거렸다.
"장 봐서 곧장 집으로 올라갈 테니깐 자리 뜨지 말고! 알것제?"
장모는 몇 번이고 당조짐을 주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그를 노려보았다. 아내 앞에서 아이 나무라듯 잔소리를 해대자 또 속이 뒤엉켰다. 아무리 사위 신세가 개차반이라 한 마디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가봤자 거기가 거기지 어디 멀리 갈 데나 있습니꺼?"
장모는 사위 말투가 맘에 안 든다는 듯 입을 씰룩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폭죽 같은 말을 터뜨렸다.
"물건 임자는 물건을 보자마자 착 달라붙지마는 아인 사람은 미끄러지는 기라. 그러이 잘 보고 장사하란 말이다!"
듣기 싫다는 듯 외면해도 장모는 한동안 미루적거렸다. 그러다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면서도 골목 입구에 앉은 새댁의 동정을 살피는 건 여전했다. 장모가 시장으로 향하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모의 간이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졸지에 그 혼자 횟집을 떠맡아야 했다.
출어를 하지 못하면서 이 바닥의 돈도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의 발걸음도 뜸했다. 돈이 풀려야 이런 허름한 횟집도 잔돈이나마 주울 수 있다. 그러니 때아닌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좌판도 마찬가지다. 거개가 눈요기나 하다가 겨우 자반고기 몇 천 원어치 사가는 게 전부였다. 그 바람에 시장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모는 건어물가게로 향하면서도 자꾸 가게쪽을 힐끗거렸다. 그런 장모를 보자 심기가 뒤틀렸다. 믿지 못할 것 같으면 자리를 왜 뜬단 말인가. 처가살이 삼년에 장모의 쌈지구경은 한번도 못했다. 쥐면 펼 줄 모르는 구두쇠 양반이 따로 없었다. 그런 장모가 뭔 꿍심인지 가게 마련하려고 모았던 피 같은 돈을 죄다 장남에게만 퍼주기 바빴다. 장모의 말대로라면 맏이가 잘 살아야 형제간에도 다툼이 없다나. 장인제사를 큰 아들네로 떠넘긴 것도 아마 그 즈음일 것이다. 모갯돈이 맏이의 사업 밑천으로 슬슬 녹은 다음에는 더 악착을 떨었다. 그런 돈독이 오른 장모니 건어물시장에 가보았자 큰돈 들이진 않을 터였다.
손님의 발길이 더 뜸했다. 흔한 곰장어 손님조차 오늘은 한산했다. 마음이 배배꼬여 그런지 일손도 놀리기 싫었다. 그는 하릴없이 담배만 축내며 바다만 살폈다. 낮에 여자와 들렀던 남자가 천영감과 마주서 있는 게 보였다. 남자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천씨에게 건넸다. 천씨의 얼굴이 훤해지는 게 보름달 같아 저절로 눈이 커졌다.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함흥댁이었다. 상택이가 한뎃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좋지 않아 못 나올 것 같다는 전갈이었다. 알겠다며 전화를 끊은 후 고개를 돌려보니 두 사람이 나란히 부둣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함흥댁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건이야 어차피 한 냉동창고를 사용하니 챙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함흥댁의 생선을 차곡차곡 담고 있는데 뭔가 긴 그림자가 그를 뒤덮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새댁이 서 있었다. 생선대야를 들고 있어 집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함흥댁의 자리가 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차지하고 앉는 것이 아닌가. 장모가 걱정하던 일이 하필이면 장모가 없을 때 벌어지자 그로서도 난감했다. 그도 모르게 입만 벌리고 있자 사태를 파악한 아내가 팔뚝을 걷고 나섰다.
"아니, 주인 있는 자리를 허락도 없이 차고앉으면 어떻게 해!"
아내는 제 언니 또래나 되는 새댁을 향해 사정없이 반말지거리를 토했다. 기선을 제압하려면 나이보다 듬직한 몸으로 밀어붙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몸매로 본다면 그는 새댁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물거미 뒷다리처럼 미끈하게 빠진 게 아내의 알 밴 대구 몸통을 닮은 다리하고는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갯가의 소금기에 피부는 거칠 대로 거칠었지만 새댁은 아직 햇살 한번 보지 않은 얼굴이 아니던가. 게다가 아내의 얼굴엔 상춧잎의 벌레구멍처럼 기미가 덮였지만 새댁은 뽀송뽀송한 게 잡티 하나 없었다.
"빨리 저리 가소. 내 입에서 더러븐 소리 터지기 전에!"
새댁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도리어 할 말을 참는다는 듯 한번씩 씩씩거리는 아내를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그런 새댁의 표정은 가소롭다는 듯 여유로와 보였다. 새댁이 일어설 기미가 없자 아내는 단속 잘못해 뒷간문 열려 구린내 풍긴다는 듯 그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새댁은 이미 각오했다는 듯이 어금니까지 지그시 깨문 표정이었다.
"이 바닥 물먹은 사람이몬 다 안다카이. 금만 없어 그렇지 임자가 있다는 걸!"
"시장바닥에 네 자리 내 자리가 없다는 거, 구청에 가서 알아볼래, 등기소에 가서 확인해 볼래?"
닫고 있던 입에서 터져나온 새댁의 말은 날선 칼처럼 섬뜩했다. 말투로 보아 호락호락한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어투가 분명했다. 그는 속으로 옳다구나 싶었다.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은근히 호기심이 일었다. 아내는 새댁의 뜻하지 않은 응수에 눌렸던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더니 그를 쳐다보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장모를 닮아 큰소리부터 질러대던 꼴이 가소로워 웃음이 터졌다.
"남의 싸움 구경하요. 왜 실실 웃고 지랄이요?"
아내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보다 더 밉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함흥댁도 못 나오니 오늘은 괜찮잖아? 어차피 파장인데?"
그도 모르게 이죽거리고 말았다.
"뭐, 뭐? 내버려두다니, 이이가?"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연방 씩씩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화살이 그에게로 향했다. 남편이 순해 터졌지만 이렇게 앞뒤가 막힌 작자란 걸 몰랐다는 투로 투덜거리기 시작한 게 빌미가 되어 결국 부부싸움으로 변했다. 낮부터 골목 끝으로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하더라는 얘기에서부터, 치마 두른 것만 보면 내것인양 덤벼드는 게 남정네들이라며 빈정거렸다. 게다가 저것 때문에 철석같이 약속한 장인제사도 가지 않으려 한 건 아니냐며 다그쳤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더 큰 싸움이 나지 않았으면 싶었기에 꼬치꼬치 대답하지 않았다. 전을 걷던 꼬끼오 여사가 도저히 그냥 듣고 있을 수는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좀 있음 손님이 먼저 끊길 테니 내버려둬. 보자하이 알로바이트라도 나온 모양인데, 뭘?"
꼬끼오 여사의 말에 속이 상했던지 결국 아내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집으로 가버렸다. 그 바람에 졸지에 억지춘향격으로 자리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새댁을 눈앞에 두고 있자니 기분이 야릇했다. 모든 게 아내와 딴판이었다. 이따금 손을 놀릴 때마다 얼핏 드러나는 앙가슴은 너무 매혹적이다 못해 손을 갖다대고 싶을 정도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런 끌림 탓일까. 아니면 은근히 새댁의 장사를 도와서일까. 손님들은 새댁에게만 달라붙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새댁은 옮겨온 재미를 쏠쏠히 봤다. 그는 그런 새댁의 모습만 물끄러미 훔쳐볼 뿐, 장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엄마!"
뜬금없이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조막만한 아이 셋이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 여자애들이었다. 밤늦은 시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일제히 새댁 품으로 달려들었다.
"공부하고 있지 왜 나와? 엄마, 조금 있음 들어갈텐데."
"엄마 가게가 여기야?"
이제 겨우 다섯 살이나 되었을 법한 막내가 엄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묻고 들었다.
"으? 으응. 여기가 엄마 가게야."
새댁은 그렇게 말하면서 흘낏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못 들은 척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늦도록 있어봤자 새댁이 앉아 있는 한 손님 받기는 그른 터였다. 그가 물건을 정리하고 부둣가로 향할 때까지도 네 식구는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앉고 서고 해 도란거리는 게 그저 보기 좋을 뿐이었다.
부둣가에는 하릴없는 몇몇 선원들이 몰려나와 구석구석 노름이며 술판을 벌이느라 어수선했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배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늦게 밤바다를 울리는 통통거리는 배의 심장소리가 울렸다. 가르릉거리는 엔진소리로 보아 천씨 영감의 배가 분명했다.

*

한동안 아내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아내는 장사까지 포기하고 전 가족이 다 갈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입찬소리를 해댔다. 계고장도 엉터리로 읽어내는 양반을 혼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신이 혼자 장사를 떠맡는 것도 문제가 있으니 두 사람만 갔다오라며 옆구리를 윽박질렀다. 그럴수록 그는 코방귀만 뀌어댔다. 올라가 봤자 장모가 기분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영락없이 남우세스런 일만 당하고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눈치만 보다가 눈뜨기 무섭게 내려오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지 않았다.
그가 확답 없이 뾰로통한 표정만 짓자 아내는 기어이 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먹였다. 오늘 일도 당신이 야무지게 고함이라도 질러가며 아퀴를 지었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기나 했겠냐며 닦달이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도다리처럼 새댁을 향해 눈깔 돌아가는 걸 보니 꼴사나워, 누가 볼까 걱정스럽더란 얘기까지 보탤 땐 처가고 뭐고 눈치볼 것 없이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그 바람에 치솟은 화를 억누르느라 피곤한데도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졸지에 새벽까지 잠자리를 설쳤다. 그랬는데 망할 놈의 전화벨 울린 거였다.
"우열이 자네 식구들이랑 새댁이랑 대판 벌어졌네. 자네가 나와봐야겠는걸."
천영감의 목소리였다. 영감은 소식을 전하면서도 싸움이 재미있는지 말끝에 웃음을 묻혔다. 영감의 웃음을 들으니 도대체 사태가 심각한 건지 아닌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긴 안 가도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태가 의외로 심각할 수도 있겠다는 싶었다. 새댁이야 함흥댁의 자리에서 재미를 톡톡히 봤으니 쉬 물러나진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단단히 마음먹고 일대 격전을 벌이는지 모른다.
선하품을 연방 물며 부둣길을 들어섰을 때 새댁의 대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허기야 이왕 물 묻힌 치마 땀 묻는 걸 꺼릴까. 새댁이 장바닥으로 나설 마음을 먹었다면 필시 연유가 있을 터였다. 그건 고만고만한 아이들만 봐도 짐작이 갔다. 더군다나 이곳에 들어온 사람치고는 사연 없는 사람,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년아.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냐? 알아들을 만한 년이 와 알아듣질 못해!"
"여기 시장이 할매 꺼예요? 할매 혼자 세놨어요? 왜 이년 저년, 욕을 하며 난리예요!"
새댁의 말투가 묘하게 바뀌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귀신도 빌면 듣는다는데 그만큼 얘기를 해도 알아 처먹질 못해. 이년이! 퍼뜩 일어서 안 꺼져?"
"할매 자리도 아니면서 뭣땜에 일어서라 마라 해요! 할매가 뭔데?"
"그럼 거기가 네 년 자리냐, 네 년 자리야?"
아내는 아내대로 드럼통 같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제 어미를 지원사격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댁은 자리를 확실히 굳히려는 듯 좌판 놀리는 손길을 더 서둘러댔다. 아직 시각이 일러서인지 함흥댁과 꼬끼오 여사는 보이지 않았다.
"길 닦아놓으니깐 미친년이 먼저 설친다더니 저년이 딱 그짝이구만. 에라이, 못된 년!"
삿대질에 욕지거리로 몰아내기 힘들다고 판단했던지 장모가 물벼락을 날렸다. 예기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새댁은 물세례를 받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그런 새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젖은 얼굴을 훔치지도 않고 다가왔다. 부릅뜬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할매도 귓구멍이 있으니깐 말해두죠. 임자가 있는 땅을 구청에서 단속을 나와요? 할매가 임자라면 어디 가서 떼든 확인서 가져오세요. 그럼 두 말 않고 물러갈 테니."
장모는 새댁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듯 입만 열고 섰다. 말인즉 옳긴 옳았다. 저걸 경찰서에 콱 집어넣을 수도 없어 난감한지 아니면 복장이 뒤집히는지 가슴만 쥐어뜯을 뿐이었다. 게다가 도도하기가 바짝 선 촛대 같아 어찌 해 볼 재간이 없던지 곁에 선 그에게 다짜고짜 매운 고춧내를 풍겼다.
"박서방, 거기 섰지 말고 저 년 좀 어떻게 해봐. 당최 젊은 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새댁이 그렇게 나오는 이상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장모가 새댁에게 완전히 두손 두발 다 든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무르춤하게 엉덩이를 빼자 장모는 그를 향해 눈을 까뒤집었다. 그러더니 대뜸 언성을 지르며 새댁에게 다가갔다.
"오냐, 이년아! 네 년이 똑똑하다 이기제, 시방?"
쉬 물러날 장모는 아니었다. 우격다짐으로 나서는 장모의 꼴이 가소로운지 새댁이 피식 웃음을 물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본 해보자. 이년아!"
말리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다. 비호같이 달려든 장모가 새댁의 블라우스를 잡아챘다. 순간 새댁의 블라우스 단추가 힘없이 투두둑 떨어져 내렸고 하얀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새댁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황급히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주춤했던 새댁은 이를 악물고 드잡이에 나섰다. 급기야 장모의 깡마른 가슴도 튀어나와 시장바닥을 향해 출렁거렸다. 제 자리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듯 아예 눈길도 주지 않던 시장사람들은 그제야 하나둘 달려들었다. 그 사이에도 장모의 새된 목소리와 새댁의 비명은 멈출 줄 몰랐다. 엉겹결에 벌어진 일이라 그는 엉거주춤 서서 뒤통수만 긁었다.
*
화장실을 빠져나오는 개코가 보였다.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부러 못 본 척 돌아섰다.
"이봐, 우열이! 잠깐 나 좀 보세."
도둑이 달 싫어하듯 은밀한 곳만 찾아 헤매는 개코를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다가온 문형사가 물건을 눈앞에 디밀었다.
"자네, 이게 뭔지 아나?"
"……?"
"이게 일명 일회용 뽕 주사기라는 거야, 필로폰! 이게 나온다는 건 상습적으로 하는 놈이 근방에 있다는 거고, 하는 놈이 있다는 건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거지. 안 그래?"
"그래서요?"
"그러니까 내 얘기는 서로 돕자는 거지. 생각해 봐. 자네 뒤도 구리다는 건 이 바닥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걸?"
"생사람 잡지 마슈!"
큰소리는 쳤지만 속이 켕겼다. 개코가 냄새를 맡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그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이 바닥의 사람들이 죄다 그렇게 하고 있었다. 바다는 마르지, 활어값이 금값이니 눈속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먹는 생선이 중국 것과 한국 것이 뭐가 다를 게 있는가.
"아마 제법 벌금을 물어야 할 걸. 게다가 이 바닥에선 사장될지 모르고…."
"이거, 왜 이래요? 난 그딴 짓 안 해요!"
"뭐 죄다 잡아넣을 수가 있나? 몇 놈만 옭아매면 끝나는 거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이제 말귀가 통하는구먼. 수상한 놈이 보이면 연락만 주면 돼. 그게 처음 본 놈이든 그렇지 않은 대장이 같은 놈이든 상관할 것 없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알았어?"
문형사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야릇한 웃음까지 물었다. 기분이 묘했다. 대장이의 쇠고랑을 채운 것도 따지고 보면 개코였다. 다만 직접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더러운 똥이라도 본 것처럼 속이 구렸다. 바닥에 침을 테엑, 뱉었다. 항구를 빠져나가는 천영감의 배가 보였다. 영감이 부쩍 바빠지고 있었다.

*

거래처를 돌며 활어를 배달하고 돌아왔을 때까지도 시장바닥에 감도는 냉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함흥댁은 보이지 않았다. 상택이도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함흥댁 탓에 큰 싸움을 걸지 못했다는 듯 장모는 이마에 내천 자를 그린 채 새댁만 노려볼 뿐이었다. 남편 기일이라 솟구치는 화를 어금니로 참고 있는 게 역력해 보였다. 꼬끼오 여사만 반대로 얼굴이 훤한 달덩이였다.
"흉년 떡도 많이 나면 싸진다고 미친년이 하필이면 문어를 들고 와 지랄병인지 모리겠네!"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장모가 입을 열었다. 새댁은 하도 들어 귀에 싹이라도 난다는 듯 반응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얼굴에 싸움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긁힌 자국이며 보지 못한 밴드까지 덕지덕지 붙여 놓았던 것이다. 팔뚝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내와 장모가 한꺼번에 달려들었으니 생채기를 입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새댁의 가판대에는 문어가 태연하게 누워 있었다. 이곳에도 엄연히 취급 품목이 정해져 있다. 물론 암묵적이긴 하지만. 꼬끼오 여사가 갈치, 조기 등을 주종으로 한다면 함흥댁은 반 건조시킨 가자미 등속과 같은 조림용 생선이 전문이다. 그 바람에 싸움이 컸으면 물러날 법도 한데 그게 아니었다. 해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버티고 있는 거였다.
"젊은 년이 그리 욕을 처들었으몬 엉덩이를 들어도 들 낀데 떡 버티고 앉은 꼬라지 좀 보소."
장모는 눈 찌를 막대기가 놓인 듯 연신 쭝얼거렸다. 그때 함흥댁이 오는 것이 보였다. 함흥댁은 상택이 때문에 또 무슨 걱정을 어깨에 얹었는지 어깨가 땅바닥에 닿을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함흥댁을 본 장모는 서방 본 듯 외치고 들었다.
"장사하는 년이 자리 지킬 생각은 않고 벌건 대낮에 나오면 어떡해?"
함흥댁은 말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자리를 차고앉은 새댁을 힐끗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일할 맛이 나야 나오던지 하지."
"왜, 상택이한테 뭔 일이 또 있어?"
함흥댁은 대답을 긴 한숨으로 했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디딘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일 나갈라고 일어나니깐 보이질 않잖스리. 혹시 화장실이라도 내뺐나 했는데 느닷없이 지하철관리사무소란 데서 연락이 왔지 뭔둥."
"정신도 온전하지 못한 놈이 지하철을 다 타? 참말로 용하네, 용해!"
묵묵히 듣고 있던 꼬끼오 여사의 말이었다. 함흥댁이 여사를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장모도 꼬끼오 여사를 향해 눈총을 쏘자 그제야 꼬끼오 여사도 눈치를 채고서 말수습에 나섰다.
"아니 지하철 관리소면 종점까지 갔다는 거 아니우? 그래서 어떻게 됐데요, 성님?"
꼬끼오 여사가 묘하게 혀끝을 감아 올리며 물었다.
"글쎄, 그게 좀…."
함흥댁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걱정스럽다는 듯이 장모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누? 어디 심하게 다치기라도 했어?"
"고거이 어떤 아줌마 뺨을 갈겼다는 기야. 가만히 앉아 있는 여자를…."
"상택이가 일없이 여자 뺨을 쳐?"
함흥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긴 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 여잘 가서 보이깐스리 제 어미를 영판 빼닮은 게 아이겠슴둥."
함흥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녀석에게도 엄마의 모습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함흥댁은 눈가가 짓물리는 줄도 모르고 무연한 눈길을 바다로 밀었다. 그런 함흥댁을 아무도 달랠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당장 제 어무이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어. 저 놈 속이라도 달래주려면…."
"어디 있는 지나 알고 하는 소린가, 그게?"
장모의 말에 함흥댁은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걸, 왜 여태 얘길 안 했누?"
"살림 차리고 잘 사는 년한테 짐이 될까봐스리 그랬지 않았겠슴둥."
"할매 속에 자물통이 들었구먼. 그래 그런 게 뭐 흠이라고 숨기노, 숨기길!"
장모의 핀잔에도 함흥댁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꼬끼오 여사는 일없이 가판대만 매만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빛도 제법 짙어지고 있었다.
*
햇살을 양념 삼아 뿌리던 하늘이 기어이 구름밭으로 변했다. 시장바닥에는 진득하게 그늘이 고이고 있었다. 장모의 입도 틀어져 일그러진 하늘과 다를 바 없었다. 날씨 탓인지 사람 발걸음도 한산해 온 시장이 손님흉년이었다. 이따금 보이는 손님도 거개가 물건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런 날씨라면 틀림없이 늦게라도 성긴 빗방울을 뿌릴 터였다. 날씨가 흐리면 제일 '손님빨'을 안 받는 게 횟집이었다. 그 바람에 아내는 틈만 나면 시계만 흘낏거렸다.
갑자기 하늘이 꾸르르, 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이내 못 참겠다는 듯 설사 같은 비를 줄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소낙비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파라솔을 펼쳤고 비닐을 들고 와 덮기 바빴다. 사람들이 부산을 떠는 데에도 새댁은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우산도, 몸을 가릴 비닐조각도 하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그런 새댁을 지켜보았다. 장모는 일찍 장을 걷어야 할 판국에 잘됐다는 고소한 표정으로 새댁을 흘낏거렸다.
그때였다. 여자 손님 하나가 새댁 앞에 우두커니 섰다. 입성으로 보아 제법 부티가 있어 쉽게 물건을 팔 수 있는 손님으로 보였다. 손님은 물건을 고를 생각은 않고 새댁만 훔쳐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태 손님에게 적극적이던 새댁은 무슨 딴 생각에 빠졌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여자 손님이 기웃거릴수록 고개만 더 꺾을 뿐이었다. 그러자 장모가 손님을 낚아채려 말꼬리를 내둘렀다.
"아지매? 떨이미로 싸게 드리께. 일마는 오천원, 저짜 절마는 칠천원에 마 퍼뜩 가져가소!"
장모는 마치 승낙이라도 한 것처럼 주섬주섬 봉지에 챙겨 넣기까지 했다. 그래도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새댁만 요모조모 뜯어볼 뿐이었다.
"그짜 것이나 이짜 것이나 한 가지란께. 자, 손자것도 한 마리 끼워줄텡께 얼른 가져가소!"
서로의 불문율처럼 암묵적으로 지켜져 온 보이지 않는 선. 그 선이 바로 시장사람들을 싸움에서 막아주는 담이나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손님이 물건을 포기하고 걸음을 내디뎌야 다음 사람이 흥정에 가담할 수 있는 데도, 장모는 부러 어겨가며 손님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자 손님은 이쪽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너, 혹시 서울로 시집간 연희 아니니?"
급기야 여자 손님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새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얼굴을 무릎에 숨기다시피 하고 앉았던 새댁의 몸이 쿨럭거리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우는 모양이었다.
"맞구나. 안 그래도 소식 듣고 있었다. 남편이 결국 죽었다며?"
새댁은 눈가를 훔치더니 고개를 바다쪽으로 돌렸다.
"그래, 언제 내려왔어?"
"……."
"아이구, 이 이쁜 게 이게 뭔 짓이누. 하기야 몇 년씩이나 앓다 갔으니……."
새댁은 차마 더 듣고 싶지 않은지 일어나 부둣가로 내달렸다. 잡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얘, 연희야! 잠깐, 잠깐만!"
손님은 새댁의 등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장모는 넋을 놓고 새댁의 뒷모습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비는 멎을 기세도 없이 퍼붓고 있었다. 새댁과 손님이 달려간 길을 장모는 한동안 박힌 말뚝처럼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새댁의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이 마흔에 혼자되어 팔남매를 위해 시장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야 했던 장모. 그때 장모의 등에 업혀 있던 막내가 말순씨 아니었던가. 그렇게 보면 아내는 시장에서 나고 자란 셈이었다. 새댁의 뒤를 쫓아갔던 손님이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연희, 쟤가 언제부터 여기서 장살 했어요?"
여자 손님은 장모에게 다짜고짜 묻고 들었다. 서로 잘 알고 있으니 말해 달라는 투였다. 장모는 시큰둥했다.
"그걸 내가 어째 아누. 장사판에 뛰어든다고 말도 하지 않은 년을?"
말투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가시는 무뎌져 있었다. 손님은 묻지 않은 말을 한동안 지껄였다. 자신과 새댁의 집안이 이웃이라 숟가락이 몇 개인 것까지 알고 지낸 사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었다, 그런데, 하필 남편이 암에 걸려 전 재산을 다 털어먹은 다음에야 저승길로 갔으며, 잘나가던 친정마저 아이엠에프 땜에 끝장이 났다는 것까지 생각나는 대로 주섬주섬 들려주었다. 여자 손님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장모도 듣긴 다 들은 모양이었다. 새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여자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렸을 때, 장모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나 내나 물간 인생이구먼. 그럴 거 같으면 세발낙지나 팔지, 뭔 문어를 팔고 지랄을 떨어, 그래?"
그는 세발낙지에 '세'자가 '가늘 세'자임을 말하려다 입을 닫고 말았다. 둘 다 어차피 의지가지 없는 흐느적거릴 수밖에 없는 인생. 등뼈 같은 남편도 없이 흡반처럼 매달린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어미의 운명. 그게 닮았다는 안타까움에 뱉은 말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모는 달려간 새댁 일에 걱정인지 은근히 눈길을 던지며 코까지 팽, 풀어제쳤다.

*

서울로 향하는 차안에서 장모는 말이 없었다. 입을 닫고 있을 양반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시장바닥만 비비고 살았으니 어디 먼길이라도 나서면 어린애처럼 좋아라 했다. 그런데 오늘만은 새댁일이 자꾸 눈언저리에 얹혀 그런지 내리 눈만 감고 있었다. 넷째인 막내며느리가 갑자기 못 가게 되었다고 전화가 와도 길게 꽁알대지도 않았다. '날 맞춰 또 씹 터졌구먼' 하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막내며느리가 유달리 생리통이 심해 고생하는 걸 장모도 익혀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원치 않던 서울행이라 억지 입을 열어가며 비위를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조용함은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짧은 한글 수준이면 응당 가만있어도 될 일을 읽어내려고 애써다보니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러니까 장모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눈을 뜨더니 뜬금없이 뱉은 말이 가관이었다.
"야, 박서방아. '갈길'이 없다는 데 어쩌누?"
알고 보니 '갓길 없음'이란 표지판을 잘못 읽은 데서 온 거였다. 그 바람에 한동안 설명을 해야 했다. 하긴 이런 일은 장모와 함께 있다 보면 번번이 일어나곤 했다.
장모가 생전 처음으로 경주 나들이를 나섰을 때의 일이다. 경주시내로 접어들어 안압지로 향하고 있는데 도로 표지판의 '좌회전시' 하는 글자를 보자 대뜸, '인자 '좌회전시' 왔구먼. 그럼 경주는 언제 도착한대냐?' 하는 바람에 배꼽을 쥐게 만들었다. 아무리 시장바닥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뿐인가. 셋째 동서 집들이에 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일이 터졌다. 하필 새로 입주한 아파트가 10층이라 양손에 짐을 든 장모가 먼저 나선 게 화근이었다. 트럭을 주차장에 파킹한다고 시간을 끌었더니 장모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말았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던 총각이 있었는데, 총각에게 '총각, 내 씹 좀 눌러 줘!' 했던 것이다. 총각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도 아무 감정없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총각 이야기를 능청스레 하는 바람에 모인 식구들이 죄다 '허야'며 웃어댔다. 그것뿐만 아니다. 새해인사차 사위들이 '오래 사십시오'하고 덕담을 해도 되받기 일쑤였다. 그런 말 말고 좆처럼 살라고 해라. 죽었다가 살아나는 건 그것밖에 없응께.
그렇게 입이 건 장모였지만 맏이집에 도착해서는 눈부터 부라렸다. 팔남매 중 절반밖에 모이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하필 모인 것이 죄다 딸린 식구가 화근이었다. 참여한 사람이라곤 직장을 잃고 술만 먹다가 장모에게 얼뺨을 맞은 첫째 동서와 출장 때문에 남편 대신 왔다는 셋째 며느리, 그리고 억지로 참여하게 된 그가 전부였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식구들은 장모가 오자마자 언성부터 지르고 들자 슬금슬금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먼저 큰며느리에게는 다른 건 준비하질 않고 밥부터 먼저 해놓아 눌러서 못 쓰겠다는 잔소리에서 시작하더니 차례대로 따발총 잔소리씩 퍼먹였다. 제삿밥을 밥솥에 하는 집구석은 처음 본다, 소금밥에도 정든다고 자주 봐야 정이 드는데 왜 손자 손녀는 참례시키지 않았냐, 대입이 그리 중요하면 장인한테 빌진 못하느냐며 쓴소리 단소리 긴소리 짧은소리 가릴 것 없이 쏟아냈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알젖 물려 키워놨더니, 키워놓고 보니 자식새끼가 죄다 도둑놈새끼들뿐이라며 그런 식으로 성의가 없으니 사업이 잘 될 리가 있으며, 집에 굴러온 복도 달아나는 게 아니냐며 연신 꽁알거렸다. 먼 길을 달려왔으면서도 피곤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박서방은 새벽일 나서야 하니 제사상 물리는 대로 일어서!"
제사상도 보기 전에 장모는 그를 훌쫓을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제사상을 물리자마자 일어서라며 채근이었다. 도둑제사 지낸 것도 아니고 오자마자 가라니? 이럴 거면 왜 그를 오게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큰처남댁까지 우리가 알아서 모실 테니 걱정 말고 내려가라는 것이 아닌가. 큰아들 내외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 그런가 싶자 은근히 속이 배배 꼬였다. 온 김에 또 쌈짓돈이나 털어놓고 내려갈 모양이었다.
마음이 묘하게 뒤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온 길을 혼자서 고스란히 되밟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충혈된 눈을 비벼가며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때쯤 휴대폰이 울렸다. 아내라고 생각했더니 장모였다. 길이 길인지라 걱정스러워 한 전화인 줄 알았더니 대뜸 딴소리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냐? 어디쯤 갔냐?"
나이가 들면 잠도 줄어드는가. 아니면 자칫하다간 새댁한테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 탓일까. 아무튼 남보다는 자기 생각만 하는 치졸한 장모의 심보에 배알이 틀렸다.
"이제 좌회전시에 왔는데요!"
그도 모르게 시큰둥한 말이 튀어나왔다. 기분 같았으면 차가 고장나 정비라도 받고 있어 해 뜨기 전에는 도착하기 글렀다고 덧붙이고 싶은 마음 꿀떡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어만큼은 뺏기몬 안 된다이!"

*

도시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이따금 자동차들의 불빛이 검은 빌딩을 쓰윽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시장 입구로 핸들을 막 꺾을 때 부둣가가 불빛에 휘감기는 게 눈에 띄었다. 패트롤 경광등이 분명했다. 그는 시장 모퉁이에 불이라도 났다 싶어 사방 두리번거렸지만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새벽부터 이게 뭔 난리인가. 차를 조금 더 몰고 들어가자 뭔가 휙, 차 앞을 지나갔다. 그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싶어 차창 밖을 살폈다. 얼핏 보았지만 사람이 분명했고, 곱슬머리인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장이가 돌아왔다는 얘긴가? 늘 싱글벙글하던 꼬끼오 여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그는 주차를 시키자마자 뛰듯이 부둣가로 향했다. 경찰차가 서 있는 곳이 천영감의 배가 정박한 근처라 더 신경이 곤두섰던 것이다. 가까이 가자 새벽공기를 둘둘 말며 서 있는 형사기동대 차량과 개코가 보였다. 개코는 담배를 껌처럼 질겅질겅 씹으며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는 얼른 기동대 차량 안을 살폈다. 거기엔 여전히 짙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재빨리 개코에게 달려가 물었다.
"천영감은 어딨죠?"
개코는 턱짓으로 바다쪽을 가리켰다. 예인선에서 팔목이 잡힌 채 끌려오는 천영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그제야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얼른 영감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감은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토막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뭔가 찜찜했지만 돈을 많이 준다기에 그만…. 어찌 보면 잘됐지 뭐. 해민이도 애비 없으면 정신차릴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도 끝나기 전에 영감은 짐짝처럼 차안에 부려졌다. 영감이 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패트롤은 천천히 부두를 빠져나갔다. 모였던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부둣가는 고요함을 회복해 다시 파도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는 할 일도 잊은 채 담배만 연거푸 몇 대를 피웠다. 아무래도자신도 빨리 그 일에 손을 떼야 할 것 같았다. 담배맛이 지독히 썼다.

*

시장은 악다구니로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흐릿하게 눈을 파고들었다. 함흥댁이 보였고 꼬끼오 여사도 보였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싸움이 터진 곳이 어림짐작으로 보아서도 모녀상회가 있는 곳임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길바닥에 나뒹구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아내와 새댁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의외였다.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호리호리한 새댁이 코끼리 같은 아내를 깔아뭉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얼굴이 온통 할퀴고 긁힌 아내의 얼굴을 보자 안 그래도 영감 탓에 꼬인 감정이 그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이 여편네들이 이른 새벽부터 뭔 일이란가!"
고함을 지르며 무작정 새댁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뜯어말린다고 손을 내민 게 새댁의 젖가슴께였다. 순간 손에 닿는 물컹한 느낌 때문에 그도 모르게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새댁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꽉 쥔 아내의 머리끄덩이를 더 힘껏 부여잡았다. 코끝에 와 닿는 새댁의 머릿내가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그는 그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러지 마래이. 이러면 우리 전부 다 죽는 기라!"
그는 입을 놀리면서도 눈은 지그시 감긴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아내의 악다구니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상섭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산지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