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뒷맛




천운영





당신은 아름답다. 그것이 내가 당신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였다.
당신 얼굴을 보면 나는 화가 치민다. 슬픔이 한번도 침범한 적 없는 듯한 당신의 얼굴은 내게 어떤 적의를 불러일으킨다. 당신에게는 꽃의 시기만이 존재했다. 잎이 지고 열매가 맺혀 씨가 되는 과정을 몰랐다. 당신은 만개한 꽃이었다. 겨우 알아차릴 정도의 몸짓만으로도 당신은 활짝 피어났다. 어깨를 조금만 비틀어도, 보조개를 패며 살짝 웃기만 해도 당신은 만개한 꽃이 되었다.
당신은 행복할 줄밖에 모르는 여자였다. 당신 얼굴에는 언제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만 있을 뿐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모욕을 줘도 동요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내뱉어진 욕설조차 당신은 다른 언어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신은 자그마한 어항 하나를 안고 내 앞에 나타났다. 당신을 보는 순간 나는 당신의 생기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복도를 걸어오는 당신 구두소리가 또각또각 내 심장에 와 박혔다. 당신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하늘하늘한 치맛자락이 무릎 위에서 나풀거렸다. 당신 옆에 선 남자는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문을 나서던 참이었다. 나는 멀찍이 서서 당신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당신이 내 앞을 지나갈 때 마침 봉투 옆이 터지면서 쓰레기가 쏟아졌다. 냉장고에서 뒹굴던 썩은 양파와 묵은 김치가 뒤섞인 쓰레기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남자는 쓰레기를 피해 지나쳤지만 당신은 내 앞에 멈추어 서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 오늘 이사왔어요, 옆집 사시네요. 당신의 목소리는 생기발랄하고 경쾌했다. 나는 쓰레기봉투 앞에 앉아 당신을 올려보았다. 햇살을 등지고 선 당신은 웃고 있었다. 당신의 환한 웃음조차 내겐 비아냥거림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밝고 자유분방한 목소리는 나를 불쾌하게 했다. 나는 당신의 인사를 묵살해 버렸다. 내가 고개를 돌려 지나쳐도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짐을 뺏다시피 해 들어주곤 했다. 당신의 친절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을 둘러싼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듯 모두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무심히 서 있는 나무나 버스 팻말에도 당신은 감동의 눈길을 보냈다. 당신이 친절하게 굴수록 내 속에 자리잡은 적의는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무성히 자라났다. 그것은 맥박처럼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내 몸을 장악해나갔다.


나는 꽃을 만들며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폐백용 오징어 꽃이다. 서른이 되면서부터 시작한 일이니 벌써 칠 년이 넘었다. 나는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오징어를 만지고 자르고 구부리며 보낸다. 내 손에는 찝찔한 오징어 냄새가 가실 날이 없다.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만든 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오징어 한 마리로 나무 밑동과 가지를 만든 다음 그 가지 끝마다 매화꽃잎을 하나하나 고정시켜 한 그루의 매화나무를 만든다. 다리에 달린 빨판으로 수술을 얹으면 꽃은 완성된다. 매화꽃 수술을 오징어 빨판으로 얹은 걸 보고 당신은 무척 기발하다며 손뼉을 쳤다. 당신 칭찬에 조금쯤 우쭐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우쭐함도 당신이 내 꽃에 손가락 끝을 살짝 갖다대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닿자 건조한 오징어 꽃에 생기가 도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의 손으로부터 피가 스미고 맥박이 번진 듯했다. 오징어 표면에 흰 분조차 잠시 앉았다 간 나비에서 떨어진 인분처럼 화사하게 빛났다. 나는 팔꿈치로 당신을 밀쳐 꽃에서 멀찍이 떼어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내 꽃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만든 꽃이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답다 해도 그것은 향도 품지 못하는 오징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다만 꽃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내 꽃에 손을 대어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언니 할래요. 당신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얼른 손을 빼 주머니 속으로 숨겼다. 손을 대어서는 안 되는 더럽고 추악한 것을 당신에게 만지게 한 것 같았다. 당신의 손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분홍빛 손톱은 거스러미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 손은 나무등걸처럼 거칠고 투박했다.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요? 당신은 다시 내 손을 끌어잡으면서 말했다. 언니라는 단어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세계의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꼬는 버릇이 있었다. 손가락에 말렸다가 도르르 풀어지는 머리칼조차 내겐 싱싱한 이파리처럼 보였다. 긴 머리를 뒤로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어깨뼈는 동그랗고 매끈했다. 머리를 틀어올리면 길고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사람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게 하는 당신의 목선을 보면 내 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귀를 살짝 가리는 단발머리모양을 바꾼 적이 없었다. 내 머리는 파마를 하기에는 숱이 너무 많고 결이 굵었다. 머리가 조금만 길면 그렇지 않아도 짧은 목이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처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한 달에 한번 뒤통수의 제비초리를 잘 다룰 줄 아는 단골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는 늙고 추레하고 하찮게 여겨졌다. 당신과 함께 길을 걸으면 남자들은 한번씩 당신을 되돌아보았다. 당신은 당신을 보는 남자들의 시선에 당당했다.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나를 오래 쳐다보면 나는 불안해졌다. 그 사람은 분명 내 얼굴을 거북이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사람은 내 얼굴에서 파충류의 눈과 비늘을 상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거리를 걸을 때도 얼굴을 들지 않는다. 나는 세상 모든 것과 관계 맺지 않으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재빨리 걷는다. 그런 당신과 내가 자매의 연을 맺을 수 있을까? 당신과 나는 명백히 다른 세계에 존재했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시기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웃음소리, 당신의 걸음걸이, 당신의 친절함, 그 모든 것이 내겐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당신에 대한 미움과 적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쌓여갔다. 나는 당신 쪽 벽에 대고 당신의 행복이 깨지길 빌었다. 불행의 그늘이 슬금슬금 다가가 당신의 인생을 좀먹기를 바라고 바랐다.


당신 집에서 무언가 둔중한 물건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떤 불온한 예감에 몸이 떨려왔다. 나는 모든 소리를 빠짐없이 포착하기 위해 벽에 귀를 바싹대고 사냥꾼처럼 신경을 곤두세웠다.
남자는 물건을 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신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유리 깨어지는 소리, 심지어 나무 부러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당신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들리는 신음소리만이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남자는 점점 더 흥분하고 광포해졌다. 얼마 지나 당신이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벽을 통해 들려오는 당신의 울음소리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어떤 승리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당신 울음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더 흥분되고 즐거워졌다. 당신이 울기 시작하자 남자의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당신의 울음을 끌어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진 것처럼 남자의 흥분은 급격히 가라앉고 있었다.
무언가 벽에 부딪치며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문닫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세게 닫히는지 내 집 벽이 흔들릴 정도였다. 복도에 남자의 거친 발소리가 지나갔다. 나는 벽에 부딪친 것이 당신의 어항이라고 짐작했다. 남자가 나가버리자 당신도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깨진 유리를 치우는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나는 당신의 울음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당신의 울음소리는 내게 알 수 없는 힘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내 속에 들끓고 있는 힘이 자꾸만 나를 부추겼다. 나는 한쪽에 밀어 놓은 오징어를 들고 와 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가위질하는 손이 전에 없이 가벼웠다. 기분 좋은 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오징어냄새조차 향기롭게 느껴졌다. 당신의 울음소리가 내게 어떤 활력을 가져다 준 것이었다. 내 꽃이 남의 결혼식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면 손에 힘이 풀리고 괜한 부아가 났었다. 그런데 나는 당신의 울음소리를 떠올리자 마음이 한없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실컷 행복하고 행복하여라, 내가 만든 꽃을 앞에 두고 앉을 신랑신부에게 나는 축복을 퍼부었다. 한참동안 열에 들뜬 상태로 매화꽃을 만들었다.
핀으로 매화 수술을 고정시키던 참이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위를 손에 든 채 문을 열었다. 당신이었다. 나는 무얼 훔쳐먹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신은 예의 그 미소 띈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얼굴이었다. 당신 얼굴 어디에도 조금 전의 소란은 남아 있지 않았다. 옷매무새나 머리는 헝클어짐 없이 단정했고, 얼굴에는 긁힌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음의 독기를 조절해야만 했다. 된통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 속에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당신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가위로 싹둑싹둑 오려버리고 싶었다. 내 손으로 오리고 구부려서 다른 얼굴의 꽃을 만들고 싶어졌다. 가위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당장이라도 당신의 집으로 달려가 불행의 증거를 내 눈으로 확인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입술을 깨물고 당신네 벽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당신은 내게 스티로폼 박스를 내밀었다. 얼결에 받아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망연자실한 채 당신 얼굴만 쏘아보았다. 당신은 멈칫거리며 조금 더 서 있다가 인사를 하고는 되돌아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나는 당신이 남기고 간 향긋한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신이 준 스티로폼 박스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그 난리 속에 있던 당신이 내게 가져온 것은 한 박스의 멍게였다. 2킬로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벽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내가 엿듣고 있는 걸 눈치채고 부러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릅뜬 눈이 시큰해져왔다. 그때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당신은 내게 멍게를 다듬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당신을 들인 것은 당신의 불행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신 얼굴에 남겨져 있을 울음기와 불행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틈틈이 당신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러나 당신은 내 기대를 저버리고 흔들림이 없었다. 당신은 뒤돌아 서서 멍게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을 빼앗긴 채 당신 등뒤에서 불안하게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당신은 말 한마디 없이 서두르지도 않고 능란하게 멍게 껍질을 벗겨냈다. 두 개의 꼭지 중 하나를 골라 가위를 집어넣자 검은 뻘이 흘러나왔다. 젖꼭지 모양의 돌기는 깨끗이 씻어 따로 담았다. 당신은 손가락으로 뻘을 훑어낸 다음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약간의 물로 살살 흔들어 씻어냈다. 울퉁불퉁한 멍게 껍질에 비해 그 속살은 얼마나 여리고 보드라운지, 또 그 살을 만지는 당신의 손가락은 어찌나 섬세하게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당신 곁으로 조금씩 다가가 당신 손놀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신의 손길이 내 몸으로 건너왔다. 당신이 누르는 멍게 살이 내 몸의 어느 즈음인 듯 나는 당신의 손놀림에 맞춰 호흡을 고르고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근질근질하면서도 몽롱한 기분이었다. 집안에는 찝찔한 오징어 냄새 대신 상큼한 멍게 냄새가 채워졌다. 당신의 향기와 멍게의 싸한 냄새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멍게 냄새가 당신에 대한 적의를 마비시킨 것 같았다. 나는 당신에게 채반을 꺼내 주고 접시를 내주었다. 속살을 드러낸 멍게는 채반으로 하나 가득했다. 입안에서는 연신 말간 침이 솟아났다.
멍게를 가운데 두고 당신과 내가 마주 앉았다. 당신은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한동안 멍게 접시만 바라보았다. 드디어 당신이 멍게를 먹기 시작했다. 당신은 멍게를 입에 넣고 오래 물고 있다가 물을 조금씩 마시곤 했다. 멍게를 삼키는 당신의 얼굴에 작은 파랑이 일었다. 멍게 돌기를 오독오독 씹을 때는 바위에 부딪치는 거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입안에는 바다가 들이찼다. 멍게를 한 입 넣었다. 새곰한 맛이 콧구멍부터 목젖까지 아련하게 번져왔다. 나도 당신이 하는 것처럼 멍게를 삼킨 다음 물을 마셨다. 싸하고 신맛이 가시면서 단맛만 남았다. 열정적인 키스를 건네오는 연인의 혓바닥을 받아들이듯 나는 어느새 보드라운 멍게 살에 빠져들고 있었다.
멍게를 먹으면 살고 싶어져요, 그것도 아주 잘 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갑자기 당신이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한 입 가득 멍게를 넣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옅은 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슬픔이 당신의 눈꺼풀을 스쳐갔다. 뜨거운 덩어리가 저 밑에서부터 울컥 솟구쳐올라왔다. 당신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아주 잠깐 들었다. 하지만 나는 말없이 멍게만 먹을 뿐이었다. 당신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과 나는 접시에 멍게다 다 없어질 때까지, 혀끝이 알알해지도록 멍게만 먹었다.


당신은 멍게를 들고 자주 내 집을 찾았다. 그만큼 당신 집에서의 소란스러운 싸움도 잦아진 것이다.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꼭 무언가가 박살나고, 남자의 고함소리와 당신의 울음소리도 이어졌다. 당신의 팔뚝이나 종아리에 멍이 발견되기도 했다. 몸에 멍이 들고 부쩍 여위어 가는데도 당신은 한결같이 쾌활하고 친절했다. 가면을 쓴 것처럼 화사한 얼굴을 마주하고 나면 당신을 쓰다듬어주고 싶다가도 다시 화가 치밀었다. 어떤 불행도 당신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 같았다. 당신에 대한 측은함과 적개심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불행하다고 생각될수록 더 즐거워지고 힘이 솟아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은 멍게를 들고 내게 오면서도 몸에 난 상처나 소란스러웠던 싸움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내가 상처를 가리키며 은근히 물어봐도 당신은 묵묵히 멍게껍질을 까거나 먹을 뿐이었다. 그러다 당신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향 얘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속한 사람 같았다.
당신의 고향은 남쪽이었다. 전라선을 타고 종착역에 내려서도 버스로 한 시간 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아주 먼 곳이었다. 당신 집은 차부 뒤편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이라기보다는 구릉에 가까운 야트막한 산이었는데 동백나무와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차 사람의 발길도 뜸했다. 판자로 얼기설기 덧대어진 당신 집은 나무 그늘에 가려 어두컴컴하고 눅눅했다. 당신은 그 곳에서 늙은 여자와 단둘이 살았다.
당신이 그곳에 살게 된 것은 예닐곱 살 때부터였다. 당신은 엄마 손에 이끌려 절벽 위에 세워진 절에 갔던 길이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위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당신의 엄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당신은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고 했다. 당신은 엄마와 함께 걸었던 길을 되돌아 차고까지 혼자 걸어갔다. 새 원피스가 더러워질까 어디 앉지도 못하고 꼬박 서 있었다. 사방이 캄캄해지고 인적이 끊기자 당신은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당신이 울음을 터뜨린 순간 어떤 늙은 여자가 느릿느릿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어린 당신에게 노인은 산이나 거대한 나무처럼 보였다. 당신은 울음을 그치고 당신에게 다가오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두툼하고 거칠거칠한 손이 당신 손을 잡았을 때, 당신은 그 노인이 오래 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당신은 그곳에서 늙은 여자와 살게 되었다.
그 산은 펄펄 끓고 있는 땅 같았다. 숨쉬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거대한 생명체. 당신은 그 품에서 민달팽이가 지나간 자국을 따라다니거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점점이 이어진 부표 수를 헤아렸다. 봄소식이 간절해질 무렵 당신 고향에는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동백나무는 당신의 집 지붕 위에도 장독 위에도 꽃송이를 떨구었다. 붉은 꽃송이를 볼 때마다 당신은 그곳에 올 때 입었던 새빨간 원피스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당신은 동백꽃을 밟으며 밤늦도록 산 속을 헤매고 다녔다. 당신은 동백나무 그늘 아래 뱀이 벗어 놓은 허물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집을 떠났다. 당신은 눅눅하고 폐쇄된 삶에 서 벗어나 될 수 있는 한 멀리, 더 멀리, 힘닿는 데까지 걷고 또 걸었다. 당신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바위 위에는 작은 꽃뱀들이 벗어놓은 허물만 햇볕을 받으며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 외출도 허락되지 않았다. 남자는 밖에서도 당신의 생활을 감시하고 확인했다. 당신이 멍게를 먹으러 내 집에 올 때에도 남자의 전화를 받기 위해 무선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남자는 당신의 긴 머리채를 잡고 복도까지 나와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당신은 속옷바람인 채로 복도에로 끌려나왔다. 당신의 길고 풍성한 머리다발이 함부로 뒤엉키고 뽑히는데도 나는 밖으로 나가 남자를 말리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 보안구멍으로 당신의 매맞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오히려 남자를 응원하며 남자의 발길질이 조금 더 거칠어지고 당신의 울음소리가 더 커지길 꿈꾸었다.
당신 집에서 싸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내 입에서는 어김없이 멍게 향이 감돌았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싸움 소리만 들리면 침을 삼키게 되었다. 당신은 그렇게 나를 길들여가고 있었다. 침을 솟게 만드는 멍게의 뒷맛처럼 당신이 맞거나 우는소리를 들어야만 식욕이 돋아났다. 이제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당신의 울음소리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다. 그 소리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후덥지근한 불안감과 함께 은밀한 쾌감을 빠져들곤 했다.
사랑이란 당신의 몸이 다른 사람의 몸에 보이는 반응이라고 당신은 믿고 있었다. 당신 몸이 남자에게 반응하는 한 당신은 남자의 폭력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남자를 사랑했다. 남자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남자의 광적인 소유욕은 당신의 육체를 모두 흡수해야만 끝나리라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남자의 발길질에 중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싸움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 남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듯 남자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자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나 후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오히려 생기 넘치고 뿌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남자에게 무심하면서도 은밀한 미소를 보냈다. 남자는 모른 척 나를 지나쳤다. 짧은 시선의 교환 속에 남자와 나는 공범이 되었다. 내 속에 도사린 마음을 남자도 느꼈을 것이다. 남자와 나는 병을 나누어 가진 병자들처럼, 형제처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신은 복도 난간에 기대서서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당신이 뭔가 흘렸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은 신열을 앓는 것처럼 자주 난간으로 향해 집요하게 붙어 있었다. 바깥바람이 여과 없이 쳐들어오는데도, 당신은 찬바람을 맞으며 오래오래 서 있었다. 당신이 바라보는 것은 동백나무였다. 화단에 심어진 동백나무는 그리 건강한 나무는 아니었다. 애기사과나 라일락 목련처럼 시절 따라 환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소사나무나 벚나무처럼 풍성한 잎을 드리우는 것도 아닌 볼품없는 나무였다. 꽃망울이 맺혔다가도 며칠 한파가 몰아치면 언 채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당신은 난간에 매달려 고개를 길게 빼는 것도 모자라 아예 난간에 걸터앉아 동백나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동백나무를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에는 홍조가 감돌았다. 멍게 속살처럼 주홍빛으로 물든 당신 얼굴을 보면 나는 불안해지곤 했다. 당신은 바위 위에 벗어두고 온 허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당신은 내 곁에 남아 생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했다. 이제 나는 당신의 행복한 얼굴을 이젠 견딜 수 없었다. 당신의 불행 없이는 어떤 의욕도 생겨나지 않았다. 당신의 불행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나는 주말 연속극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꽃잎을 오리고 있었다. 결혼철이 시작되면서 나는 꼼짝도 못하고 오징어에 매달려 있었다. 작은 꽃잎을 가지에 끼우느라 눈이 시큰해져왔다. 그때 당신 집에서 식기 같은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분명 싸움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나는 얼른 텔레비전을 끄고 벽에 귀를 댔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톤 높은 남자 목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당신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남자를 응원하며 빨리 본격적인 싸움이 펼쳐지기를 기다렸다. 내 몸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며 당신의 불행을 포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의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벽 너머에는 오히려 기묘한 침묵에 둘러싸여 있었다. 벽으로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어느 집에선가 틀어 놓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물 내려가는 소리 같은 잡음뿐이었다. 나는 몸을 더 바싹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온 신경을 벽에 곤두세우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는 어떤 절박감 같은 것이 깃들여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당신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문을 열지는 않았다. 당신은 싸움터로 돌아가야 했다. 싸움이 끝난 후라야 내게로 올 수 있는 것이다. 춘화를 보며 수음을 하던 중에 그림 속의 여자가 등을 건드린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잔뜩 부풀었던 몸이 한순간에 푸르르 꺼지고 말았다. 아직 절정에 이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찜찜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기왕에 시작된 용두질을 끝내야만 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몇 번 더 났지만, 나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보안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당신은 여전히 내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당신은 하늘하늘한 실내복 차림이었다. 꽃무늬 치마가 바람에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당신은 조금 더 서 있다가 난간으로 올라갔다. 당신은 뭐라도 찾는 사람처럼 집요하게 아래만 보고 있었다. 내 눈엔 당신의 등만 보였다. 그 등이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다가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당신은 남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남자의 눈에 언뜻 비치는 섬광을 놓치지 않았다. 남자가 당신에게 손을 뻗었다. 남자의 손이 당신 등에 닿는 순간 당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자는 당신의 추락이 믿어지지 않는 듯 제 손을 들여다보았다. 남자의 손이 먼저 닿았는지 아니면 당신의 몸이 먼저 난간을 벗어났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남자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남자를 건너다보았다. 오목렌즈를 통해 본 당신의 증발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탄식처럼 긴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기운이 내 등을 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조용히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 소리는 아주 멀리서 내게 손을 내미는 나지막한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당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인사를 받아주지 못했다.
벼렸던 살인을 마친 사람처럼 아주 길고 긴 단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꿈속에서 당신의 추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일단 난간에서 벗어난 당신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뒷목덜미가 먼저 땅에 닿고 등과 다리가 차례로 닿을 때까지 당신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다. 땅에 닿으면서 휙 치켜올라간 손이 동백나무 몇 줄기를 부러뜨렸을 뿐이었다. 당신은 물들기 시작했다. 동백꽃처럼 툭 떨어져, 동백꽃 색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당신의 죽음은 현실이 되었다. 남자가 아래층으로 달려갔을 때 당신은 이미 마지막 생명을 소진하며 움찔움찔거리는 한 덩어리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당신의 죽은 몸뚱이가 비명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병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잠결에도 당신의 불행을 꿈꾸었다.
사람의 몸뚱이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당신의 화사했던 얼굴과 자그마한 머리통이 잘못 던져진 수박처럼 박살나버릴 줄을 짐작이나 했을까. 부검대 위에 놓인 창백한 몸뚱이는 함부로 만져지고 잘리고 분해될 것이었다. 위가 꺼내지고 당신이 죽기 전 마지막 먹은 음식물까지 들추어지리라.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던 그 입은 죽은 새처럼 혀를 내민 채 벌어져 있을 것이다. 당신의 싱그러운 피부는 땅 속에서 썩어들어갈 것이다. 당신의 몸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꽃이 아니었다.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그들이 자주 싸웠나요? 형사가 내게 물어왔다. 형사는 그 밤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당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밖에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엄청난 추위가 몰려왔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목이 바싹바싹 탔다. 나는 그제야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는 형사에게 일찍 잠이 들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가끔 엄청난 양의 멍게를 먹는 기이한 행동을 했었다고, 그때마다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나는 웅얼울얼 말했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수첩에 받아적었다. 형사가 수첩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을 포획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형사의 표정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자주 난간에 올라앉아 있었어요,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내 말은 듣지 않았어요. 내 말은 당신의 자살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었다. 나는 남자가 당신 등을 민 것을 보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남자가 벌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잘못이다.
동네 곳곳에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당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남자가 당신을 죽인 다음 던져버렸을 거라고 했다. 건너편 아파트에서는 남자가 당신을 밀어버리는 걸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싸우다 홧김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굳이 현관문을 열고 복도까지 뛰어나가 높은 난간을 기어오르면서까지 죽지는 않는다고, 사람들은 꽤나 그럴듯한 추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끼여들어 형사에게 말했던 대로 얘기를 했다. 당신의 자살은 분명하며 남자는 당신의 자살을 말리려고 했을 뿐이다, 남자가 손을 댔을 때는 이미 여자가 난간을 벗어난 후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당신의 자살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말을 할수록 당신의 자살이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당신의 자살이 확실해지면서 사람들은 당신의 행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색기가 가득한 얼굴이야, 그런 얼굴은 남자를 안달 나게 만든단 말야. 남자들은 흐느적거리는 눈빛으로 당신을 떠올렸다. 세탁소 남자는 옷을 들고 갈 때마다 음료수나 커피를 건네며 자신을 은근히 유혹했다고 으스대기까지 했다. 그전까지 그 사람은 당신을 아주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에 담기는 당신의 모습은 남자 몰래 외간남자를 끌어들였거나 도박으로 큰 빚을 지기도 했다. 그리고 남자는 당신을 보호하고 보살펴준 영웅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당신은 이제 만개한 꽃이 아니라 남자의 손길만 닿으면 언제라도 벌어지는 헤픈 꽃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함부로 입에 올려지는 거리의 여자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끊임없이 당신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 남자들의 시선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당신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활력이 넘쳐났다. 고맙게도 당신은 죽어서까지 내게 생기를 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천천히 잊혀져갔다. 소문이 무성하던 동네에는 다른 이야깃거리로 채워졌다. 당신이 떨어진 충격으로 움푹 패이고 피에 물들어 있던 자리에는 잔디가 무성히 자라나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한동안 비워 있던 당신 집에도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옆집에서는 당신의 울음소리 대신 쿵쾅거리며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발뒤꿈치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내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했다.
나는 당신의 울음소리 없는 집을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집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복도 난간에 매달려 당신이 떨어졌던 자리를 쳐다보거나 동백나무를 찾는다. 동백나무를 찾으면 그것이 당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가지를 꺾고 밑동을 흔들었다.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지나가는 아이들을 넘어뜨리거나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견딜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려해도 사람들은 더 이상 내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내가 남자와 공모해 당신을 죽여버린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혼이 내게 붙어 약간 돈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시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파충류를 쳐다보듯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비껴보았다. 그리고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꽃을 만들지 못했다. 오징어는 바싹 말라 아무 데나 뒹굴고 꽃을 장식하던 실타래는 서로 뒤엉켜 있었다. 내 얼굴에는 물기가 걷히고 푸석푸석 마른버짐이 피었다. 손놀림은 무뎌지고 모든 생기를 잃었다. 삶에 어떤 의욕도 생겨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울음소리가 그리웠다. 당신의 울음소리가 주던 떨림이, 그 활력이 이제는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나타나기 전 무미건조했던 시간보다 더 칠흑같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울음소리를 떠올리려 애를 썼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한참만에 당신이 먹던 멍게를 기억해냈다. 수산시장을 한참을 돌아다녀 멍게 한 박스를 샀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싱크대에 쏟아 붓고 멍게를 다듬기 시작했다. 멍게껍질은 흐물흐물거렸다. 당신이 사 왔던 것보다 알도 작은데다 붉은 빛이 아닌 갈빛이었다. 여름에는 독이 올라 먹지 않는다고 하던 당신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독이 올라 있더라도 당장 멍게를 먹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이 하던 대로 작은 돌기를 찾아 가위를 넣었다.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는지 주홍색 즙과 뻘이 터져 범벅이 되고 말았다. 당신과 함께 먹던 멍게 향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멍게를 만지는 내 손은 금단현상을 보이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썰지도 않은 멍게를 통째로 입안에 쑤셔넣었다. 멍게를 먹으면 당신의 울음소리가 기억날 것도 같았다. 역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나는 얼른 멍게를 삼킨 다음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찬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입안에는 신맛만 고이고 마지막 단맛은 남지 않았다. 입안에 고인 신맛처럼 당신의 얼굴도 싸하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입안에 남은 것은 상한 멍게 맛뿐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부름에 이끌린 것처럼 문을 나섰다. 곡기를 끊은 지 오래 되어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동백나무를 향하고 있었다. 멀리 선 동백나무는 꼭 십자가처럼 보였다. 한여름인데도 꽃이 피어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진녹색 이파리가 햇빛에 반짝였다. 이파리 사이에 둥글고 매끈한 열매 몇 개가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둥근 열매를 만져보았다. 손끝으로 싸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금속성의 칼날에 베인 듯 얼른 손을 거두었다. 나는 동백나무 아래 주저앉아 하염없이 나무만 바라보았다.
당신이 떨어졌던 자리에는 잔디만 무성했다. 왕성한 잔디의 힘은 당신의 자취를 완전히 감출 만큼 강했다. 손으로 잔디를 쓸어보았다. 당신의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오징어꽃을 만지던 당신의 손을 기억해냈다. 그때처럼 내 몸에도 생기를 전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개미 한 마리가 동백나무 그늘로 숨어들었다. 개미는 죽은 파리를 이고 개미 구멍으로 들어가려고 바동거리고 있었다. 머리가 동강난 파리의 몸뚱이가 꼭 내 몸처럼 느껴졌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동백나무 아래 누웠다. 당신이 마지막 누웠던 자리를 생각하며 몸을 뻗었다. 잔디는 축축했다. 나는 입을 헤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창문마다 환히 불 밝힌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그 중에 내 집에서 나오는 빛도 있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도 저 불빛이 아니었을까? 나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감은 눈으로 별빛이 부서졌다.
나는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몽유병 환자처럼 동백나무로 향했다. 나무를 향한 발걸음을 나도 막을 수 없었다.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누군가 내게 인사를 해올 것 같았다. 당신이 죽은지 일년이 지나고 있었다. 뒤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귓불을 스쳐지나갔다. 되돌아봐도 눈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다가 옷자락에 붙은 동백 잎 하나를 발견했다. 동백잎은 내 어깨에 손을 얹듯 그렇게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이파리에서 바다 냄새가 풍겨왔다.
당신은 멍게를 먹으면 살고 싶어진다고 했다. 나도 살고 싶다. 그러나 이제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신의 불행 없이는 어떤 활기도 갖지 못했다. 나는 미궁에 갇혀버렸다. 당신이 가둔 미궁에서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없던 애초의 삶으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당신이 죽자 당신의 불행도 사라졌고, 내 생의 활기도 사라졌다. 내 인생은 당신과 함께 사라졌다. 하나의 죽음이 또 하나의 죽음을 이끈 것이다. 죽음은 불행의 완성이라 생각했다. 당신이 내게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당신이 조금 더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달라졌을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내 속에 꿈틀댔던 시기심만큼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남자와 나는 공범이었다. 어쩌면 당신의 등을 민 것은 남자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오늘도 동백나무로 향한다. 그리고 동백나무 그늘에 앉아 당신의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언뜻 나무 뒤로 숨는 붉은 무늬의 뱀 한 마리를 본 것도 같다. 정신이 몽롱해져온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그래 당신 이제 만족한가? ■



천운영(千雲寧)서울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바늘>로 등단. 창작집 《바늘》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