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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명천 선생 불망비
-이 땅의 삶을 구원한 우리 미학의 터잡이 이문구 선생님 영전에
김 형 수
그 눈에는, 물 한 대접이 바다만큼 컸다
돌 하나가 속리산 미륵불 만하고
쌀 한 톨이 김제 벌판 벼폭들 만했다
그래도 백성들은 국밥을 말아먹고
떠들다가 취하거든 배고프다고 울었다
그 입맛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신 것도 매운 것 같고 짠 것도 싱거운 것 같고
기쁨도 슬픔도 모자 밑에 감췄다
칭찬도 욕설도 틀니 뒤에 숨겼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허기진 논바닥
목마름 타들어 쩍쩍 갈라진
입 속의 가뭄을 그 앞에 내보였다
1등도 하면 안 되고 꼴등도 하면 안 되어서
밥으로 내장을 채운 게 아니라
이른 봄 햇살 같은 간절함으로 채웠다
꿈속을 뒤시락거리며 죽은 말을 찾아내고
말라버린 냇가에도 물줄기를 대었다
휘갈기면 잔소리도 시가 되고
사람들 흉을 봐도 미학이 되었다
아, 장소를 망각한 유년의 오솔길처럼
생애에 한 번 뿐인 숙명의 노래처럼
우리들을 다녀간 보령사람이여
험한 세상 시달려서
조선 글자로는 가장 아름다운 철자들을 조합시킨 충청도 사투리여
울며 부서지는 물소리여 명천(鳴川) 선생님이여
이제 끝났구나 대지여
기러기 떼 흘리고 간 밤이슬도 그쳐라
새벽하늘 깨뜨리던 닭 울음도 멎어라
이 아침 햇발 두르고 언덕받이에 서있는
엉덩이 비뚤어진 소나무도 순교(殉敎)하라
그 위에 뜨고 지던 달덩이도 지워라
이제 여기에 그 분이 없다
**2003년 2월 28일 오전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소설가 고 이문구 선생 문인장>에서 낭송한 조시
김형수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처음 올린 날: 2003년 3월 4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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