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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부터 25일까지 북한의 평양, 묘향산, 백두산 등지에서 ‘6 ·15 공동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열린다. 남측의 대표단 98명은 오늘 오전 인천공항에서 북측의 고려항공 전세기 직항편을 이용해 평양으로 출발했다.
이번 남북 작가들의 만남은 어떠한 의미와 전망을 지니고 있는가.
남과 북의 문학은 지난 60여 년간 단절된 상태였다. 일제시기까지 그나마 면면히 이어오던 한국문학의 정통성이 ‘분단상황’이라는 특수하고도 어쩔 도리 없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서로가 정통성을 주장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나날들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난 80년대 후반기부터 미약하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남북 작가들에 의한 개별적인 교류 차원을 넘어서 양 측의 문인단체가 직접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남북문학의 분단극복 투쟁이 개인적인 이해와 요구에 의해 선별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면, 앞으로는 공식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다.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이 말한 바 있듯이, 문학 안에는 이성 말고도 무의식이 있고, 내면이 있고, 꿈이 있다. 문학이라는 것은 빈 광야에 우뚝 서서 진리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무차별한 사랑을 노래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떤 통일논리도 담아내지 못한 ‘그 무엇’을, 다시 말해 남과 북의 민중들이 가슴에 진득하게 들러붙을 ‘눈물의 힘’을 남과 북의 작가들은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솔직한 감성에 기반하지 않은 이성은 허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 창작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작가들이야말로 남과 북의 감성을 이어주는 훌륭한 씨줄과 날줄이 될 수 있다.
해방 이후, 남한의 문학은 일제시기의 추악한 유산인 친일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옹호하며, 젊은이들에게 적들을 위해 죽을 것을 강요하던 자들이 우리 문단의 주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고, 또 그들이 해방 이후 자신들의 생존과 호의호식을 위해 독재정권을 찬양하고 고무하며 그들을 위한 문학을 재생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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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4일 백낙청 씨를 단장으로 하는 남측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 북측 대표단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6 ·15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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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문학은 친일이라는 민족사적인 그늘로부터는 남한의 그것에 비해 매우 자유롭다. 남한에 비해 북한의 친일민족반역자 숙청은 철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문학은 국가의 통제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하에 놓여 있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따라서 북한의 작가들에게 그야말로 ‘자유로운’ 문학을 요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요구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과 북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공식적인 단체(민족작가대회 준비위원회 남측위 - 조선작가동맹)를 통해 통일과 민족, 그리고 평화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은, 남과 북의 문학을 현 단계에서 보다 풍부하게 하고 넓어지게 하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특히 체육이나 경제 등 여타의 다른 분야에 비해 교류의 폭이 좁았던 문학이라는 분야는 한 민족의 얼의 기본 얼개를 구성하는 ‘언어’를 가꾸고 다루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점에서, 점차 이질화 되어 가는 남과 북의 언어를 점진적 통일로 이끌어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회에 참가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자면, 이러한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먼저 남측의 인사들을 보도록 하자.
민족작가대회 준비위원회 남측위는 의장단 6명을 두었다. 지난 1989년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했던 대표들 중에서 고은, 신경림, 백낙청 세 명과 민족작가회의 이사장 염무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신세훈, 민예총 회장 황석영 이렇게 여섯 명으로 구성됐으며, 대회장에는 고은 시인을 위촉했다.
신경림은 시집 <농무>의 저자이다. 그의 언어는 섬세하지는 않지만, 우리네 민중들의 일상에서 만나는 감성을 진득하게 담고 있다. 고은은 그의 연작시집 <만인보>에서 알 수 있듯이, 민중이라는 거대하고도 은은한 물결을 노래한다. 백낙청은 또 어떤가. 한국문학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창작과 비평’의 발행인으로서 우리 문학의 살아있는 증언자이다.
의장단 밑에는 집행위원회가 있는데, 실제 이 대회를 준비하고, 조직하고 하는 실무책임단이다. 집행위원장은 김형수가 맡았고, 대변인단으로 시인 강태형, 이문재, 곽효환, 소설가 김훈이 있다.
그리고 집행위원회에 상황실이 있고, 상황실장이 정도상, 의전위원(행사위원)이 방현석, 교육위원이 김재용이다. 그 밖에 주요 참가자로 남정현 소설가를 비롯해서 김원일,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성석제 등이 참여한다.
집행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은 현재 한국문단에서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역량있는 작가들이다. 이들이 발표하는 작품들은 당대의 흐름과 담론을 형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시기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북측 의장단으로는 일단 가장 중요한 사람은 조선작가동맹위원장 소설가 김병훈과 부위원장인 시인 장혜명이 있다. 주요 참가자로는 시인 오영재, 소설가 홍석중, 소설가 남대현 등이 있다.
이들 중, 시인 오영재는 우리의 귀에 익은 인물이다. 그는 2000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 참가자로 서울에 와, 어머니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오영재가 쓴 시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그는 지난번에 무산된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의 북측 대표로 참가, 판문점에서 남측 대표단을 기다리다 회담이 결국 무산되자 즉석에서 ‘전해다오’라는 시를 남기도 돌아서기도 했다.
또 소설가 홍석중은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손자이다. 그는 제19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황진이’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할아버지의 문장력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현재 그는 북한문학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다. 남대현 역시 ‘청춘송가(1987)’로 남한의 문학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작가이다.
우리 문학이 처한 현 단계의 처지를 두고 많은 현장비평가와 창작자들 사이에 격론이 오가고 있다. 어떤 이는 우리 문학의 미래에 대해 우울한 전망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더 이상 ‘스타작가’가 나오지 않는 지금의 우리 문단이 오히려 ‘다양성의 문턱’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북한 문학 역시 80년대 중반의 역량 있는 작가, 예컨대 홍석중과 같이 깊이와 폭을 두루 겸비한 작가를 더 이상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의 ‘4.15 창작단’ 소속 작가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관변문학(혹은 계관문학)이 필연적으로 지니는 ‘건강한 창조성’의 빈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80년대 중반 북한 문학, 특히 소설은 중흥기를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들이 ‘자유주의적 연애경향을 초래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그리고 김일성 주석 사후에 오히려 강화된 북한사회의 경직성 등과 직면하면서 북한문학은 상상력의 빈곤과 창작물의 교조화라는 ‘언어의 변비증’에 시달리고 있다.
남한 문학의 포스트모던화와 북한 문학의 교조화라는 민족문학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6 ·15 공동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다. 이 만남은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혹은 정략적 접근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준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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