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조태일 ‘국토 서시’ 중에서〉

국토를 온몸으로 뜨겁게 노래했던 시인이 있다. 시인은 암울했던 시절 우리 땅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토대로 새날을 희원했다.

또한 시인은 국토를 매개로 낮은 자, 억눌린 자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드러냈다. 아울러 일신의 영달에만 집착하는 ‘높은 분’들을 향해서는 매서운 질타를 가하기도 했다. 대담하면서도 남성적인 그의 시는 당시 억눌려 있던 많은 이들에게 한줄기 햇빛 같은 위안을 주었다.

더욱이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작금에 그의 시는 예사로 읽히지 않는다. 우리의 국토에는 무수히 많은 ‘가지지 못한 자’와 ‘낮은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버려진 땅’일망정 그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풀잎과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따스한 눈길로 감싸안는다.

‘국토’의 시인 죽형(竹兄) 조태일(1941∼1999년)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가 설립된다. 조태일 시인과 문단활동을 함께 했던 문인들과 광주고 동문, 광주대 문예창작과 제자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기념사업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준비위원회 측은 오는 23일 광주 동구 모 식당에서 발기인 총회를 열어 이사장 등 임원진을 선출하고 정관 제정, 사업계획 및 예산 등을 예결할 예정이다. 이날 총회에서는 조태일 시인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국회의원을 지낸 박석무(74·다산연구소 이사장) 씨를 이사장으로 추대할 예정이다.

(사)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는 조태일 시인의 삶과 정신, 문학세계를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시인의 작품 및 배경이 되는 공간을 다양한 콘텐츠로 개발하고 오는 9월에는 16주기에 맞춰 조태일시문학관에서 ‘조태일문학축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시인의 대표작이기도 한 시 ‘가거도’의 배경인 신안 현지 답사, 조태일 문학상 신설, 생가 복원, 시인의 문학자료 DB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총회에는 문단 안팎의 인사 1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고은·나희덕·도종환·신경림·이시영 시인과 문순태·이명한·이호철·이화경·최남일 소설가, 구중서·백낙청·염무웅·임헌영·홍용희 평론가 등이 함께 한다. 여기에 시인의 모교인 광주고와 경희대 국문과 동문, 광주대 문예창작과 제자 등도 참여한다.

곡성 출신 조태일 시인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고 시집 ‘아침선박’, ‘식칼론’, ‘국토’,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등을 펴냈다. 특히 삼선개헌과 유신선포 암흑기에도 강직한 시 정신으로 ‘국토’ 연작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한국작가회의 모태인 자유실천문인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