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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가발 권하는 사회
이름 유중원 이메일



가발 권하는 사회 ― 가발 쓰세요

 

 

그림 1

서초동 남부터미널 뒤쪽 먹자골목에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어떤 모텔.

이른 봄 화창한 토요일 오후이다. 긴급 출동한 파출소 젊은 경찰과 30대 초반의 여자. 경찰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고 여자는 몹시 긴장해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다.

경찰이 모텔 3층 계단 구석에 있는 방의 방문을 두드린다.

“경찰이야, 경찰. 빨리 문 열라고, 다 알고 왔으니까. 여기 당신 마누라도 함께 있지. 도망갈 곳은 없으니까, 순순히 문 열라고. 문을 열어.”

안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기다리세요, 기다리라구요. 별 꼴 다보겠네.”

방안에는 이불이 펴있고 탁자 위에는 맥주병과 땅콩 접시가 놓여있다. 여자는 속옷만 입은 채로 벽쪽을 향해 앉아있고 남자는 겨우 팬티만 걸친 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자가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해서 회사 직원과……. 나쁜 년 같으니라구. 하필 유부남하고…… 당신과는 끝장이야…… 끝장났다고…….”

형사가 말했다.

“형법 제421조 간통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경찰서로 갑시다.”

남자가 말했다.

“경찰이 할 일이 없어서…… 우리가 뭘 어쨌다고. 왠 참견이야”

“어쨌거나 경찰서에 가서 말씀하시지요.”

그날 저녁 늦게 영장이 발부되었고 남자와 여자는 구속되었다.

 

그림 2

서초동 교대역 14번 출구 근처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4층에 있는 그 변호사 사무실.

사무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했다. 리놀륨 바닥이 닳고 닳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다. 변호사 방은 따로 없고 낡은 책장에는 법률 책 몇 권과 시집들이 덩그러니 꽂혀있다. 사무장도 없이 어린 아가씨 혼자서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변호사는 50대 중반쯤으로 얼굴은 벌써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거의 다 빠져 앞부분은 번들거렸고 뒤통수에 머리칼 몇 가닥만 간신히 매달려있는 대머리이다. 삶에 지친 듯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변호사로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거드름을 피울 줄도 모르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어색하게 여자와 마주앉아 있다. 여자는 모든 걸 단단히 각오한 것처럼 새침하게 앉아있다.

변호사가 말했다.

“남편께서 무릎을 꿇고 빌겠답니다. 이쯤에서 용서하시지요. 벌써 구속 된지가 일주일이 지났지 않습니까. 많은 반성을 했겠지요. 죽을 맛이랍니다.”

여자가 비웃듯이 말했다.

“어림없는 수작이지요.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애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린 애들이……. 애들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합의를 하십시오. 그리고 용서하고 잊어버리십시오. 솔직히 말씀드려 요즘 멀쩡한 남자치고 외도 안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그럼 변호사님도 바람을 피웠다는 말씀인가요?”

“글쎄요…… 그렇지 뭐. 재산 다 넘겨주고 이혼을 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조건만 맞는다면 합의를 해야겠지요.”

“그러면…… 어떤 조건을?”

“재산을 넘겨줘야지요.”

“어떤 재산 말입니까?”

“원지동에 있는 단독 주택을 넘겨주세요.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전세인데 전세 보증금도 제 앞으로 돌려주세요.”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남자 쪽은 재산이 하나도 없는데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항상 너무 지나치지요.”

“그래야 마땅합니다. 싫으면 관두세요. 제가 아쉬울 것 하나 없습니다. 요즘 간통죄는 집행유예도 없고 1년쯤 살아야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살아야지요. 그러면 회사에서도 완전히 쫓겨나겠지요.”

“꼭 그렇게……”

변호사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어색한 듯 괜스레 머리털이 다 빠진 머리를 긁적거렸다.

 

“합의가 무사히 끝났으니까 말입니다만…… 모든 재산을 빼앗았으니 지독한 합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남자가, 정상적인 남자라면 말입니다, 하여간 허약한 남자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남자가 한 여자에게 평생을 매여 있겠어요. 그건 말이 안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치고 누가 그러겠어요. 그리고 남자가 간통을 하였다면…… 그건 여자 쪽에도 문제가 있는게 아닙니까. 여자란 그저 결혼하자마자 완전히 퍼져가지고…….

그러니까 간통죄라는 것이 웃기는 거지요.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보다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어요. 대한민국 모든 성인 남자들이 범죄자인 것이지요.

그런데…… 여자라고 왜 없겠어요. 내 이혼한 마누라도 그렇구요. 우리는 맞바람을 피운거죠. 간통죄를 기소하는 검사나 재판하는 판사나 모두……. 자기들도 여자만 보면 헐떡거리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다시 말씀드리면 지독한 위선이고 모순이라는 것이지요.”

“변호사님…… 변호사님께서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제가 어때서 그 인간이 바람을 피웠단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지요.

그런데요…… 변호사님 가발이나 쓰지 그래요. 그렇지 않나요. 요즘 하이모 선전이 한창인데요.”

남자는 할 수없이 여자가 제시한 조건대로 합의하였다. 여자는 이혼소송을 취하하고 고소도 취하했다. 간통한 남녀는 즉시 석방되었다.

 

그림 3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 전원합의체 법정.

지난밤에는 싸락눈이 내렸다. 그날은 날은 맑았지만 몹시 추웠다. 차가운 바람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막바지 겨울의 상쾌한 늦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9명의 재판관이 완고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며 주황색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있고 (그들은 활짝 또는 가볍게 웃을 수 없나, 제발 좀 웃으세요. 즐거운 날 아닌가요. 세상이 변했다는데……. 꼭 그렇게 폼 잡고 근엄해야만 하나, 권위에 금이 갈까봐. 그놈의 권위란 게?) 재판장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목청을 돋우어 또박또박 주문과 이유를 읽고 있다.

방청석에는 대부분 어중이떠중이 기자들로 꽉 채워있다. 며칠 전부터 그들은 무언가 냄새를 맡은 듯 이구동성으로 이번만은 위헌 결정이 날 것이라고 예상 기사를 쓴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421조 간통죄 처벌조항을 62년 만에 폐지하였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결혼생활이나 애정사에 개입할 수 없다. 불륜은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판장이 계속 결정문을 읽어내리고 있는 동안 그는 근엄하게 가장한 무표정한 얼굴을 씰룩거렸다. 괜시리 천장만 쳐다본다. 꽉 드러찬 방청객들을 내려다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그 기자는 생각했다.

진즉 없어져야 했는데. 만시지탄이야, 만시지탄이라고. 애시당초 그런 엉터리 법을 만들지 않았어야 했어. 그렇다 하더라도 진즉 개정했어야지. 남자건 여자건 불문하고 어떻게 법으로 막을 수가 있겠느냐 말이야. 법이 만능은 아니라고. 난들 별 수 있었겠어. 부처님은 아니거든.

 

그림 4

세상에…… 별꼴이야.

이런 일이…… 그러게 세상이 변했다니까.

뭐…… 62년 만이라고. 오늘 밤에는 총천연색 폭죽들이 방방곡곡 하늘에서 터져야할 거야.

그렇고말고.

그날 오후, 전국의 모텔에서 숨을 헐떡이며 간통질을 하고 있던 년놈들이 소리쳤다.

크고 작은 모텔들이 밀집해 있는 서초동 먹자골목에서도 건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뒤엉켰다.

 

그림 5

남자는 아내가 아내의 직장 후배와 불륜관계라는 말을 그 후배의 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른 봄 토요일 오후였다. 그들을 미행해 서초동 먹자골목의 모텔에서 나오는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고 증거를 잡아 추궁하자 아내는 냉담한 표정으로 되래 큰소리쳤다.

4월 초순이어서 화사한 벚꽃이 만개하였다.

여자와 남자는 큰길가에 있는 별다방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도했다.

이제 보니 여자는 바지를 입었고,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걸고, 짝퉁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다. 얼굴은 화사하고 팽팽하다.

“간통죄가 위헌 결정이 난 것을 알고 있겠지? 이제 간통은 죄가 아니야. 마음대로 하라고. 어디 이혼소송을 한 번 내보시지. 내가 얼마든지 응해줄 테니까.”

“그걸 말이라고……”

“오래전부터 했지…… 얼마나 짜릿한데…… 그러니까 요령껏 해야지, 왜 들키기는 들켜? 등신처럼. 이제는 들켜도 상관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반공개적으로 하는 거지.”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변했구먼…… 변했어. 옛날 사건을 돌이켜 보라고. 그러지 말고…… 우리 합의하자고. 그때도 합의했었잖아…….”

남자는 초라하고 수척해 보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20여 년 전 그 사건을 돌이켜 보았다. 온갖 쓰라린 기억과 잡념과 감정들이 뒤엉켰다. 속이 메스꺼워 온다.

“케케묵은 이야기 그만 두라고. 세상이 바뀌었어. 합의는 무슨……. 요즘 위자료가 기껏해야 2,000만원이야. 그쯤이야 언제든지 줄 테니까.”

“…… 지금 뭐라고 했어?” 남자가 약간 흥분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더 할 말 있어? 등신 같이. 내가 그때 완전히 갈라서야 했는데……. 지금까지 호적을 파지 않고 살아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지.

물론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강한 충격을 받았었지. 그래서 분노하고 원망했지만 시간이 가니까 어쩐지 그게 사라지더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해서 당하도록 하면 되니까. 세월이 벌써…… 그때 재산을 넘겨 받았으니까 속는 셈 치고 넘어가 준 측면도 있겠지.

그나저나 그때 이혼해 봤자 별수가 없었지 않았겠어.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내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당신도 대머리가 다 됐네. 보기 흉하지, 당신 인생이 송두리째 보기 흉하지. 가발을 쓰라고 가발을. 요즈음 좋은 가발 많잖아. 그런데 말이야, 그때 그 변호사 말이야…… 가발을 했던가? 간통하고 나서 재산 다 빼앗기고 이혼을 당한 그 얼간이 말이야.”

“뭐라고 했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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